정치외교학부 <br>안도경 교수
안도경 교수
정치외교학부

일 년 이상의 우여곡절 끝에 제27대 오세정 총장이 취임해 이제 서울대가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는 듯하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우려스러운 점은 지난한 선출과정을 거치면서 서울대 구성원들이 공감했던 총장선출제도의 개혁이 과연 이뤄질 것인가다. 오세정 총장은 발전계획 및 소견서에서 총장선출제도 개선을 통해 시대를 선도할 리더십을 갖는 대학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필자는 이 시평에서 서울대 총장선출 방식을 숙의적 선임제로 바꾸기 위한 논의가 시급히 시작돼야 함을 제안하고자 한다. 

대학의 총장을 선출하는 방식은 직선제형, 선임제형, 그리고 이 두 방식의 혼합형으로 나눌 수 있다. 직선제는 교수, 학생, 교직원 등 구성원들의 투표를 통해 총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선임제는 이사회나 추천위원회 등의 선임기구가 후보자들을 물색하고 추천을 받아 그 중에서 선출하는 방식이다. 혼합형에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다 들어있다. 

현재 서울대의 총장선출 방식은 절충적 혼합형이다. 이 제도하에서 세 번의 선출과정이 진행됐다. 처음 두 번의 선출과정은 분명한 실패였다. 총장선출제도만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제도는 여러 문제가 반복되거나 새로운 문제들을 초래해 서울대를 위기로 몰아갈 소지가 다분하다. 

현재 제도의 문제점들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대학 구성원들의 총의를 상향식으로 모으고자 하는 직선제적 요소는 정책평가라는 방식으로 구현돼 있지만, 현실은 그런 명분과는 동떨어져 있다. 정책평가단에서 교수, 학생, 교직원의 지분, 그리고 교수 평가단 중에서 단과대학(원)의 비중을 둘러싼 이해 다툼이 반복된다. 대학의 각 이해당사자 집단들, 단과대학(원), 학과(부), 연구소들은 총장후보자들에게 표와 혜택의 거래를 제안한다. 높은 거래비용과 이익집단 지대추구 행태는 국가 차원의 정치과정에서보다 덜하지 않다. 

40-40-20의 비중을 가지는 세 항목에 대해서 1, 2 또는 3점을 부여하는 투표방식, 그리고 무작위 추출된 교수 중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평가단 구성 방식은 소위 ‘전략적 투표’ 행태의 온상이 된다. 정보와 선호를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지하고 있는 후보자가 당선될 확률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참여와 투표 행태가 만연하게 된다. 

복잡한 선출 방식은 선출의 과정이나 그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사회는 무조건적인 동의만을 표하는 고무도장(rubber stamp)의 역할을 강요받는다. 검증문제가 불거져도 총장추천위원회에 딱히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서울대의 발전을 위해서는 총장선출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 방향은 숙의적 선임제여야 한다. 선임제라고 해서 이사회나 총추위가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 학생, 직원, 동문의 견해를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사회와 평의원회를 중심으로 하고, 학생대표, 직원대표, 동문대표가 참여해 실질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15인 정도의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총장추천을 위한 학생자문위원회, 직원위원회 등을 자발적으로 구성해 상향식의 의사전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현재와 같이 숙의는 최소화되고 정치만이 난무하는 과정이 아니라 진지한 담론이 조직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1년 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서울대가 직면한 위기와 기회를 진단해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필요한 리더십의 내용을 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후보자들을 추천받고 그들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은 현재의 절충적인 혼합형 선출제도보다 훨씬 덜 갈등적이면서도 구성원들이 지닌 정보와 선호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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