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국내 보드게임 시장을 파헤치다

국내에 보드게임 문화가 정착되기 이전, 보드게임 이용자는 국내 보드게임 판매 사이트에 해외 게임이 입고되기를 기다리거나 해외 사이트를 통해 보드게임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2002년 4월 국내 최초 보드게임 카페 ‘페이퍼이야기’가 녹두에 문을 열었다. 당시 한글로 된 게임이 거의 없었지만 카페를 방문한 대학생들의 입소문을 타 보드게임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혜화나 신촌 같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곳곳에 보드게임 카페가 생겨나 보드게임 붐을 이룬 것이다. 이후 보드게임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코리아보드게임즈’와 같은 국내 보드게임 회사가 여럿 설립됐다. 현재 보드게임 업계는 게임의 수와 종류를 늘려나가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보드게임은 PC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과는 달리 여럿이 모여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7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보드게임은 최근 가족 중심 문화가 자리잡음에 따라 더욱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게임 시장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점도 우리가 보드게임이 주목해야 할 이유다.

하지만 보드게임 시장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게임 콘텐츠의 다양화, 보드게임 박람회나 공모전 확대, 보드게임 제작 기반 마련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보드게임 시장의 현황을 짚고, 보드게임 시장이 겪는 어려움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다루고자 한다.

국내·외로 발돋음 중인 보드게임

국내에 출시되고 있는 보드게임은 주로 해외 게임의 판권을 구입한 후 이를 한글화하는 방식으로 유통한다. 국내 보드게임 회사는 전 세계의 보드게임 디자이너를 찾아다니며 이들과 계약을 맺는다. 보드게임 업체 ‘게임올로지’ 최정희 대표는 “보드게임 ‘타소’에 대한 판권을 얻기 위해 프랑스 보드게임 작가인 필립 프로를 직접 만나러 가기도 했다”며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보드게임 개발사는 국내 보드게임 작가와 협력해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기도 한다. 정연민 작가의 ‘Do Eat!’ ‘돌진소녀’와 김건희 작가의 ‘아브라카..왓?’이 대표적이다.

국내 보드게임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우선 보드게임에 대한 국내 사용자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보드게임 카페 ‘스몰월드’의 운영자 이주화 씨는 “보드게임을 접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 보드게임 카페 이용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에 발맞춰 보드게임 제작 업체의 수도 늘어났다. 『2017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8년 7월 기준으로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에 등록된 보드게임 업체는 18개이며,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까지 포함하면 국내에 40여 개의 보드게임 기업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드게임 업체 ‘만두게임즈’의 김기찬 대표는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이나 대만과 비교해봐도 국내 보드게임 시장은 활성화된 편”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한국어판 보드게임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2017 대한민국 게임백서』는 2016년을 기준으로 국내에 120여 종의 새로운 보드게임이 등장했고 매년 1~20% 정도 신규 게임 출시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한다. 중앙대 보드게임 동아리 ‘BOCA’의 이주승 씨(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13)는 “과거에는 해외에서 게임이 출시돼도 한글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하지만 최근 보드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보드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렇듯 국내 보드게임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국내 게임 수출이 증가하기도 했다. 보드게임 업체 ‘행복한 바오밥’의 ‘폴드-잇’을 기점으로 한국 보드게임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됐고, 만두게임즈의 ‘슬라이드뱅뱅’,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쿠키박스’ 등의 국내 보드게임이 해외에 출시됐다. 김기찬 대표는 “어떻게 하면 국내 제품을 해외 시장에 효과적으로 노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며 “게임 초판을 국내 시장과 유럽과 미국 같은 큰 시장에 동시에 출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미숙한 보드게임 시장

보드게임이 국내·외로 주목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방해하는 시장 내 문제도 남아있다. 우선 보드게임 종류가 교육용 게임으로 획일화돼 보드게임 콘텐츠의 다양화를 가로막는 것이 문제다. 국내 소비자가 보드게임이 지닌 유희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편인 만큼 보드게임 업체는 주로 교육용 보드게임을 제작해 소비자를 공략한다. 이주화 씨는 “기업의 마케팅 포인트가 교육에 맞춰져 있어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보드게임이 잘 출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보드게임 문화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BOCA의 국형전 씨(중앙대 철학과·13)는 “사람들이 보드게임 자체를 아동의 놀이 문화로 인식한다”며 “보드게임이 ‘유치한 취미’로 소비되지 않도록 교육용 게임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보드게임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보드게임 기업은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호소한다. 국내에는 보드게임 부품을 생산하는 전문 시스템이 갖춰진 공장이 없다. 보드게임을 만들 때 주사위나 말 같은 구성품을 제작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는 국내 보드게임 생산에 걸림돌이 된다. 최정희 대표는 “국내에는 주사위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공장이 없을 정도로 보드게임 제작에 관한 제반이 없다”면서 “중국의 보드게임 전문 공장에서 게임 부품을 제작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국내 최대 보드게임사 ‘코리아보드게임즈’ 이상민 개발본부 차장은 “유럽이나 미국 보드게임 시장의 경우 보드게임 부품 생산에 축적된 비결이 있어 운송비를 절감하거나 제품의 질을 향상하는데 자국 생산이 유리하다”며 “우리나라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국내 기업과 소비자 모두 보드게임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주화 씨는 “대부분의 보드 게이머는 보드게임에 작가의 아이디어나 삽화가의 디자인과 같은 지적 재산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의 부재는 카피 제품을 출시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카피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개발비를 절감해 싼 가격에 게임을 판매할 수 있다. 소비자도 지적 재산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거리낌 없이 카피 제품을 구매해 악순환이 반복된다. 김기찬 대표는 “카피 게임으로 보드게임에 입문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보드게임 개발자를 돕는 정부의 지원도 실효성이 부족하다. 2007년 ‘보드게임산업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은 후 정부는 본격적으로 보드게임 개발자를 지원해왔다. 보드게임 아마추어 작가의 게임 시연회와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보드게임 박람회 ‘보드게임콘’과 각종 보드게임 공모전이 대표적인 지원 사례다. 하지만 정부에서 개최하는 보드게임 박람회의 횟수는 제한적이다. 정연민 작가는 “보드게임 업체의 경우 게임을 제작해도 이를 소개할 기회가 적다”며 “많은 사람이 보드게임을 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모전 사업은 기업과 개발자에게 단기적인 성과만을 요구한다. 따라서 공모전을 거쳐 출시되는 게임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 한 보드게임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최정희 대표는 “출점 팀이 공모전을 준비하는 기간은 긴 반면 상금의 액수가 적어 공모전이 개발자나 기업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며 “공모전을 통해 좋은 게임이 출시되기 힘든 이유”라고 말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보드게임을 위해

국내 보드게임이 소비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려면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콘텐츠의 수준을 높여야한다. 국내 보드게임 디자인은 아트워크나 모형을 통해 게임을 시각적·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해외 업체에 비해 미흡하다. 보드게임 개발자와 업체가 보다 실감나는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 그들이 원하는 보드게임을 디자인하고 제품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시립대학교 보드게임 동아리 ‘아발론’의 윤홍철 씨(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15)는 “국내 제작 보드게임은 질 낮은 구성물이 있거나 과대 포장돼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를 개선해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게임을 많이 제작하면 좋겠다”고 게임 콘텐츠 보완을 주장했다. 실제 보드게임 엄체는 콘텐츠의 다양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상민 차장은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지난해 출시한 보드게임 100종 중 교육을 목적으로 한 게임을 5종 미만으로 출시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보드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인력망을 조성하는 것 역시 실효성 있는 지원이 될 수 있다. 보드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개발자, 편집자, 디자이너와 제작자 등 많은 인원이 동원된다. 하지만 시장에 처음 진입한 개발자는 시장 내부에 충분한 인맥이 없어 제작부터 판매까지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전문가들은 ‘보드게임 네트워킹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의 네트워킹을 넘어 해외 보드게임 기업과 네트워킹이 진행되면 국내 보드게임의 해외 진출은 가속화될 것이다. 김건희 작가는 “지금도 해외에서 열리는 보드게임 박람회에 참가해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이 있지만, 정부에서 해외 보드게임 업체와 국내 보드게임 디자이너를 이어주면 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전망했다. 

활발한 온·오프라인 홍보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보드게임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보드게임의 주 소비자인 2~30대는 온라인 매체를 통해 보드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는 만큼 온라인 홍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실제 많은 보드게임 회사는 이를 창구 삼아 게임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아발론의 김소현 씨(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18)는 “영상을 통해 규칙을 설명해주거나 카드 뉴스 형식으로 게임을 홍보하는 등 많은 업체가 온라인 홍보에 주력하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홍보도 온라인 홍보와 함께 지속해야 한다. 이것은 보드게임 소비자가 보드게임을 직접 체험한 후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작가는 “보드게임 작가가 소비자와 대면하고 소통하는 곳은 보드게임 박람회”라며 “이곳에서는 신작 게임 시연을 하고 사인회를 하기도 한다”고 오프라인 홍보의 역할을 설명했다.

보드게임 시장은 다른 게임 시장에 비해 역사가 짧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드게임 개발자나 작가, 그리고 소비자는 “국내 시장의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긍정적인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들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남아있는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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