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대학신문』이 묻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답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엇갈린 패, 그리고 중재자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회담의 실패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문 특보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패가 엇갈렸다”며 양국이 제시한 비핵화 로드맵이 서로 너무 달랐던 것이 결렬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문 특보는 미국이 주장한 ‘빅딜’(Big Deal)은 선해체 후보상을 원칙으로 하며, 일괄타결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를 전제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핵·생화학무기·미사일 등의 대량살상무기를 선제적으로 완전히 폐기하면 정치적·경제적 보상을 비롯한 북한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런 미국의 ‘빅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문 특보는 ‘너희를 어떻게 믿느냐’는 생각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2003년 핵 포기 이후에도 체제를 보장받지 못해 결국 2011년 비참한 최후를 맞은 리비아의 카다피와 같은 전철을 밟진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5월 조선중앙통신에 낸 담화에서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두고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며 비판했다. 문 특보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이 제시한 패는 미국의 ‘빅딜’과 상반되는 ‘스몰딜’(Small Deal)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기초한 점진적 동시교환이다.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할 테니 제재를 일부 풀어달라는 북한의 요구는 ‘스몰딜’에 해당한다. 

이처럼 미국과 북한의 패가 서로 안 맞을 때 우리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중재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자, 문 특보는 우리 정부가 제시한 ‘굿이너프딜’(Good Enough Deal)을 강조하며 이를 현실성 있고 적절한 절충안이라고 주장했다. ‘굿이너프딜’은 말 그대로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일괄타결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이행은 점진적으로 하는, 양측 모두 수용 가능한 로드맵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문 특보는 “이런 로드맵의 현실화를 위해선 마중물 역할을 해줄 첫 수확(Early Harvest)이 필요하다”며 “북한이 영변 핵시설 등을 선제적으로 폐기할 경우 남북 간 교류를 허용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라 주장했다. 남북 간 교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묻자 그는 “안보리 제재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인도적 지원, 개인 단위의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재상봉 사업과 같은 남북한 경제 교류 및 협력 등이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문 특보는 북한이 “우리민족끼리” 등을 통해 한미공조 자체를 비판하는 것을 두고 “외세에 구애받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교류를 재개하자는 북한의 희망사항의 표현일 뿐”이라며 “우리도 우리의 입장이 있는 만큼,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강경하게 말하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 상황이 어떤지는 북한도 인지하고 있을 터란 것이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이번에는 다르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이미 준비돼 있던 기초적 수준의 실무 협의안조차도 채택되지 않았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의 ‘스몰딜’에 대해 계속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는 까닭은 미국이 경제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으므로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를 두고 문 특보는 “만약에 그게 미국의 입장이라면 북한을 상당히 잘못 파악한 것”이라며 북한이 제재에 못 이겨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 제재로 북한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는 했겠지만 제재의 영향으로 인해 북한 체제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며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은 김정은이 젊은 지도자로서 장기적 집권에 대한 욕망이 강하고,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일 체제와 김정은 체제의 대표적인 차이로 김정일 체제의 ‘선군정치’(先軍政治)와 김정은 체제의 ‘선경정치’(先經政治)를 대조하며 “김정은 입장에서 핵과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힘들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이라고 추측했다. 

문 특보는 이전 북한 지도자들과 김정은의 차별점을 잘 드러내는 사례로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하노이 회담 후 교시를 들며, 이는 북한의 폐쇄적 수령 체제 하에서 매우 파격적인 행보라고 평했다. 이와 같이 과거의 지도자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인 김정은의 태도를 근거로 그는 “조건이 맞으면 김정은은 핵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미국의 적대적 정책과 제재가 강화된다면 북한은 북미 협상 대신 북·중 관계, 북·러 관계의 강화를 시도하는 등 더욱 반항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런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제재 철회는 “대화의 창을 열어놓는 조치인 동시에 북한에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했다. 

한편 문 특보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대로 불가하다”며 일축했다. 그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된다면 비핵화 협상 자체의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인지’(Awareness)와 ‘인정’(Recognition)의 차이를 강조했다. 문 특보는 “북한이 현재 핵을 만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지하고 그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지만, 북을 아홉 번째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며 “현실적으로 알고는 있되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픈 과거는 잊지 않고, 관계는 미래를 지향하고

북한의 과거사 문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끊임없이 장애물이 돼 왔다.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이 자행한 도발에 대해 아직 사과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없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2년간 연평해전 전사자를 추모하는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연속으로 불참하자, 이런 비판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국민적 자존심을 어루만지는 데 미흡하지 않냐는 지적에 문 특보는 “과거의 일을 기억은 하되 그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입을 뗐다. 

그는 우선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사과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북한이 피살 사건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제안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경우 재발 방지 확약이 동반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문 특보는 “금강산 관광 사업을 재개한다면 북한은 우리의 안전 보장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천안함 도발과 연평도 포격의 경우, 북한에서 각각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과 남측의 선제 도발에 대응했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당장 명시적 사과를 받아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특보는 오히려 사과를 받아내고 무력 충돌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비롯한 교류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당장 사과를 받기는 힘들겠지만 신뢰를 회복한다면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열려 있다”며 대화 없이 평행선만 달리는 소모적 상태에서 벗어나 현실적 활로를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그는 북한에 대한 불신이 깊은 국민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대북 정책의 기조를 충분히 설명해야 할 필요에 공감하면서도, 충분한 설명 없이 대북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고 나간다는 일부 언론의 비판은 과장된 부분이 있다며 “언론 환경이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은 현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더 많은 대국민 공공외교를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어가야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대북 강경론’에 대해 의견을 묻자, 문 특보는 “보수 정부 9년 동안 강경책을 실시한 결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나”며 반문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평창올림픽, 북미회담 등을 통해 남북관계가 해빙 분위기로 선회한 점을 언급하며 “단기적 관점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 등 최근에 잘 안 풀리고 있는 과(過)에만 주목하지 말고, 전쟁 직전의 상황을 반전시킨 공(功) 등 장기적 평화 프로세스 차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현재의 해빙 분위기가 참여정부 당시의 데자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에도 남북 관계에 상당한 진전이 있는 듯 보였으나, 보수정권의 집권과 북한의 도발로 관계가 갑자기 경색됐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패배하거나 다음 대선에서 보수 정권이 들어설 경우 과거에 그랬듯 정책 기조가 급격히 변하지 않겠냐고 묻자, 문정인 특보는 “남북관계의 가시적 진전을 통해 긍정적인 판을 짜 놓을 필요가 있다”며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누가 봐도 성과를 부정할 수 없을 정도의 불가역적 단계까지 남북 관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대북정책의 기조를 이어 나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인정하면서도, 총선 전에 유의미한 진전을 만들어 낸다면 야당도 정책 기조나 기존의 판을 뒤엎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문 특보는 “총선에서 패배하더라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고유 권한은 여전히 건재하다”며 총선 결과 대화 동력 상실이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잘하는 일이 있으면 지지하고,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비판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긍정적인 회담 결과를 얻어낸다면 여론도 함께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대선에서 보수 정권으로의 교체 이후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아무리 보수정권이 집권한다고 해도 이미 만들어 놓은 평화 프로세스를 거스르면서까지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 정권에서 긍정적인 판을 짜 놓는다면 설령 다른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이 판을 엎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 대선 때까지 그런 판이 짜일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강지형 사회부장 remember0698@snu.ac.kr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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