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실습과 생명윤리의 딜레마
동물실험-실습과 생명윤리의 딜레마
  • 대학신문
  • 승인 2019.03.3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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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교수의과학과

김성준 교수

의과학과

나는 의대에서 생리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기초의학자다. 살아있는 심장의 박동이나 압력이 자극에 반응하는 양상과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한 예다. 매일 연구 과정에서 실험동물의 희생 없이는 첫발자국을 떼지 못하는 분야다 보니, 후생에 이 업보를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꿈속에서 쥐들에게 쫓기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는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들도 많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문제를 떠나서 다른 면에서 생명윤리를 생각하게 된 잊지 못할 사연이 있다.

1998년에 박사 후 연구자로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 가게 됐다. 동물실에 가서 내가 실험에 사용할 쥐를 꺼내, 가능한 한 순간적으로 기절시킨 후 고통 없이 즉사에 이르게 하는 것이 기본적 원칙인 것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원생이 나를 동물실로 안내하고서 내 행동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는지, 쥐의 꼬리를 잡고 들었다가 어이없이 바닥에 놓치고 다시 붙잡는 과정에서 살짝 실소를 터뜨렸다. 아마 창피한 마음에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무의식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지도교수가 부르더니, 내가 동물을 학대하면서 즐거워하는 성향이라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나서, 지도교수는 “이해는 하지만, 향후 조심하기 바란다. 신고한 학생은 교육받은 대로 행동한 것이니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했다. 덧붙이면서, 독일에는 “동물을 괴롭히며 좋아하다가는 사람을 태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된다”는 말이 있다며, 자신들의 저지른 유대인학살 때문에 생명 윤리에 더욱 민감하다고 말했다. 사회구성원들의 윤리의식을 기반에서부터 높이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본 계기였다. 30년 전의 개인적 일화였고, 이후 국내에서도 연구윤리와 생명윤리가 필수적으로 교육되고 있다. 

전문연구자가 아닌 학부생의 생리학과목 실습에서 이런 고민은 더욱 컸다. 새로운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생명현상을 각인시키는 과정이었기에 그랬다. 내 학부 시절에는 토끼, 쥐, 개구리, 자라 등 다양한 동물들이 해마다 다량으로 희생되는 것이 교육을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물론 처음에 동물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겸허함을 배우기는 했으나, 집단실습 특유의 분위기는 동물을 하나의 물건처럼 여기면서,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짜증 내고 다시 한 마리 달라고 하는 것조차 미안해하지 않게 만들곤 했다.

생리학실습에서 동물실험을 전적으로 중단한 지 4년째다. 다행히 그간 실험연구의 결과들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 가상의 심장, 근육, 신경세포, 그리고 가상 인체생리 시스템을 만들어놨기에, 이제 학생들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모니터에서 벌어지는 생리현상들은 이리저리 조건을 바꿀 수 있어서 학습효과도 좋고, 잘못되면 다시 시작하면 되니 생명 윤리적 고민은 전혀 없다. 첨단교육수단을 사용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기도 고민이 있다. 학생이 도식화된 이론과 ‘가상’ 생명현상으로 획일적 결과만 경험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지 모르겠다. 실제 생리반응의 다양성을 놓치는 것이 한 문제다. 더 큰 걱정은, 컴퓨터상의 가상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극한상황으로 밀어 넣으면서, 모니터로 관찰하는 것이 오히려 공감 능력을 낮추는 것이면 어떻게 할지다. 가상 인간의 고통을 실험자의 감각과 연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까? 

생명체와 관련된 연구와 실습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고민들을 더 깊이 논의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단지 절차적 의무만이 아니다. 개인적 감수성으로 동물의 희생을 미안해하면서도 학문발전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생명윤리가 아니라, 사회공동체에서 차별과 부당한 희생을 막는 최소공약수라는 원칙이 더 강조돼야 한다. 전염병만 돌면 대량으로 가축을 살처분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위선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반려동물만이 아니라 이익을 목적으로 희생되는 생명체에 대한 고민을 넓히는 것은, 그 사회의 영적 수준과 함께 보건의료의 형평성 및 의료현장의 상호배려도 높이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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