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강사 작곡과
박지용 강사
작곡과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재즈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는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재즈는 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재즈는 어려운 음악일까? 재즈 피아니스트인 나에게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재즈 감상자의 입장에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카페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재즈 피아노 선율은 왠지 커피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재즈를 들으면 와인 한잔이 생각난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크리스마스 느낌이 든다고도 한다. 이태원이나 청담동의 유명 재즈 클럽에 가면 재즈를 들으러 방문한 감상자보다 데이트를 위해 방문한 커플이 대다수다. 재즈가 어렵다면 커피나 와인, 데이트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재즈가 어렵다고 느끼는 까닭은 사실 우리의 음악 청취 성향과 관련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행한 『2017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즐겨듣는 음악 장르 중에 발라드가 77.8%로 1위이며, 45.8%로 2위인 댄스를 뒤이어 OST(영화/드라마)가 41.5%로 3위다. OST의 메인 타이틀이 주로 발라드인 것을 고려하면 음악 청취자들의 발라드에 대한 선호도가 단연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발라드가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발라드의 선율적 특성에 주목하고 싶다. 발라드의 주요 형식은 벌스(Verse)와 코러스(Chorus)로 단순화할 수 있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후크(Hook)는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인 코러스에 등장한다. 벌스는 곡의 도입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후크라고 불리는 귀에 쏙 걸리는 듣기 좋은 선율은 코러스에 등장한다. 이렇듯 명확하고 특징이 뚜렷한 후크가 있는 코러스가 바로 발라드의 성공 비결이며 음악 청취자를 사로잡는 요소다.

이에 반해 곡의 도입부인 벌스 없이 바로 코러스가 연주되는 재즈 스탠다드 곡들은 제아무리 성질 급한 한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어색함을 주기 마련이다. 재즈에서는 잔잔히 흐르는 도입부를 지나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다가 코러스 부분에서 높은 고음으로 폭발하는 듯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발라드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잔잔함이 지속되거나 스윙 리듬에 맞춰 통통 튀는 일관된 경쾌함을 주는 재즈는 발라드와 성격을 달리한다. 익숙한 발라드의 벌스-코러스 형식과 다르게 재즈엔 벌스 없이 코러스만 나오기 때문에 곡의 길이도 짧다. 또한 클라이막스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곡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재즈에서 빠뜨릴 수 없는 특징인 즉흥연주는 어떤가? 보컬이나 트럼펫 혹은 색소폰 같은 악기 연주자가 코러스를 연주하고 나면 바로 즉흥연주가 등장하는데 이는 발라드의 간주 부분에 해당한다. 발라드에선 클라이맥스가 지나면 숨을 돌리거나 장면 전환의 방식으로 간주가 나온다. 최근 발라드 형식의 흐름은 이 간주마저도 가수가 ‘오우~워~’와 같은 멜리스마로 처리하기 때문에 악기가 길게 간주를 연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즉흥연주는 재즈 음악의 꽃이다. 한데 알아듣기 쉬운 노래 부분을 지나 연주자의 기량을 뽐내는 즉흥연주 부분은 마치 재즈 감상자의 청취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처럼 난해할 때가 있다. 성악음악과 기악음악의 기본적인 취향 차이도 즉흥연주를 어렵게 들리게 하는 요소다. 

그렇다면 재즈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나는 일단 가사가 있는 노래곡을 추천한다. 앞서 말했듯이 발라드 같은 드라마틱한 전개나 화려한 클라이맥스는 기대하지 말고 옛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흑백영화에 나올 것 같은(실제로 그렇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율에 익숙해지고 난 후, 이어지는 즉흥연주를 감상한다. 연주자들이 기량을 뽐내는 화려한 즉흥연주의 향연이 끝나면 가수는 다시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 노래를 부르고 곡을 마무리할 것이다. 자, 이제 재즈를 들어볼 준비가 되었으면 핸드폰을 열어서 보컬 재즈를 검색해 보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재즈는 짧다. 짧은 노래와 즉흥연주, 이제 좀 재즈가 쉬워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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