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학생운동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김용훈 기자
  • 승인 2019.03.31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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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학생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1975년 4월 11일, 서울대 축산과 김상진은 선언문 몇 줄을 남기고 자신의 배에 칼을 밀어 넣었다. 그를 비롯한 수많은 학생이 군부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산화했다. 이 밖에도 노동자의 인권, 민족의 통일, 실현되지 않은 정의가 학생들로 하여금 펜을 놓게 했다. 역사의 그늘진 모퉁이마다 학생들은 혈루를 흘리며 근현대사를 견인했다. 하지만 2019년 지금의 학생운동은 어떤가. 파편화된 대학가는 학생의 문제를 적절히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신문』은 대학가 학생운동이 난관에 봉착한 과정을 조명하고 그 해결방안을 고민했다.

 

 

학생운동, 한국 사회를 견인하다

 

『서울대학교 70년사』는 학생운동을 “학생들이 학내외 문제에 대해 집단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이를 관철하려는 움직임”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학생운동은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사회운동 전반을 이끌어왔다. 정근식 교수(사회학과)는 “한국전쟁 이후 민주주의가 이행되는 1980년대까지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며 학생이 국가권력에 맞서 사회 개혁을 주도해야 했던 사회상을 설명했다. 정권이 시민을 압제할 때 먼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한 주체는 주로 학생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째서 이런 막중한 사명을 순순히 짊어졌을까. 학생운동을 연구한 정숭교 강사(국사학과)는 “자신이 민족의 앞날을 책임질 엘리트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70, 80년대 학생운동의 대자보와 3·1운동 때의 격문은 유사한 정서를 지닌다”며 “마치 가난한 집을 일으키려는 큰아들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라도 조국을 살려보겠다는 마음이 두 시기에 모두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990년대 이전 한국에서 대학생은 시대를 이끄는 엘리트로 여겨졌다. 당시 40%를 밑돌았던 대학 진학률은 대학생들에게 지식인의 지위를 부여했고, 급속한 경제 성장은 대학생들에게 양질의 직장과 윤택한 미래를 약속했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대학생은 ‘허가된 백수’로서 취직 걱정 없이 책을 읽고 학생운동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고, 82학번 박태호 교수(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양학부) 또한 “그 시절 대학생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자신이 정의라 믿는 것을 좇아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이런 배경하에 학생운동은 20세기 대학가를 지배했다. 학생운동의 광범위한 영향력은 대학생 전반이 공유한 죄책감에서 비롯됐다. 학생운동가의 사상에 동의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학생 대부분은 운동가의 희생에 부채감을 느꼈다. 정숭교 강사는 “술자리에서 후배는 옥살이하는 선배들을 추억하고, 운동하지 않았던 선배들은 나서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일종의 푸닥거리가 항상 벌어졌다”며 학생사회에서 죄책감과 부채감이 일상적으로 드러났다고 회고했다. 정권의 잔학한 탄압이 학생을 흩뜨리기는커녕 도리어 운동가와 일반 학생을 정서적으로 결속시킨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1980년대에는 정서적 연대를 넘어 구체적인 이념 공동체가 성립됐다. 정숭교 강사는 “1980년대 들어서는 학생운동이 학과라는 기층 단위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며 “신입생에게 이념을 전수하고 그들을 조직하는 기존 언더서클의 역할은 점차 학과 학생회의 공식적인 일로 편입됐다”고 설명했다. 이 시점부터 대학가 전반이 학생운동의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소위 ‘진보적 컨센서스’가 학생사회 내에 구성됐다. 정숭교 강사는 “대학생의 삼 분의 일은 활동가로서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나머지 삼 분의 이는 그들에게 심정적·이념적으로 동조했다”고 묘사했다. 박태호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운동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가 모호한” 분위기가 펼쳐진 것이다.

대학사회의 헤게모니를 획득한 학생운동은 ‘사상의 해방구’로도 기능했다. 체제의 틀 내에서 헌법의 보장을 요구했던 학생운동이 1980년대 들어 체제의 틀 자체를 바꾸자는 급진적 지향점을 설정한 것이다. 정숭교 강사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학생운동권이 급진적 목소리를 내게 된 기폭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꼽았다. 박태호 교수가 “5·18의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동기와 선배들이 울면서 광주를 아냐고 물었다”고 회상했듯, 당시 대학가가 느낀 충격은 쉬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자극은 곧 현 체제의 해체와 혁명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박태호 교수는 “결국 민주주의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가 문제로 부상했다”며 “민중, 노동자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를 구상한 학생운동은 자연스레 맑시즘으로 흘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생운동의 한 축을 구성한 PD 세력은 노동운동에 나서, 야학·위장 취업 등을 통해 노동권 보호와 노동조합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한편 NL이라 불리는 또 다른 분파는 현 사회모순의 근본을 남북 분단에서 찾아, 반제국주의를 기치로 통일운동을 전개해나갔다.

 

 

 

학생운동, 주도권을 상실하다

 

지금의 시각에서 20세기 그 시절의 학생운동은 낯선 모습이 됐다. 급진적 사상에 대한 이념 공동체는 물론 운동에 대한 정서적 유대가 무너졌고, 학생운동이 다수의 학생을 동원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대학가는 어째서=학생운동의 변화를 이끈 구조적 요인으로는 주로 △6월 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1990년을 전후한 사회주의권 붕괴 △1997년의 IMF 외환위기가 꼽힌다. 각각의 요인은 학생의 의식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학생운동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학생운동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정숭교 강사는 “민주화 이후 국민의 정치적 욕구가 제도권 정치로 흡수되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는 등 시민사회계가 성장했다”며 “국민의 불만을 먹고 사는 학생운동의 호소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근식 교수 역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시작으로 성립된 민주 정권이 학생운동의 구심력을 약화시켰다고 말했다. 정근식 교수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할 때에야 혁명이 거론되는 것”이라며 “민주화 이후에는 급진적 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론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가 겹쳤다. 학생운동권이 자본주의의 대안적 전망으로 삼은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체제 변혁을 요구할 정당성도 함께 약화된 것이다. 

하지만 학생운동 쇠퇴의 결정적 기점은 IMF 외환위기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정숭교 강사는 민주화와 사회주의권 붕괴를 겪은 90년대에 들어 학생운동의 열기가 꺾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생의 정치의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0년대까지는 여전히 ‘진보적 컨센서스’가 유지됐다고 밝혔다. 이런 의식은 IMF 외환위기가 부른 대학생의 지위 변화와 함께 해체됐다. 최갑수 교수는 “IMF 외환위기 이후 서울대생조차 취직을 걱정하게 됐다”며 대학생이 엘리트에서 정책의 구제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묘사했다. 이에 더해 대학 진학률이 90년대를 기점으로 급속히 올라가 2000년 초 70%에 다다르며, 대학생은 더는 엘리트, 지식인이 아니라 그저 20대 청년이 보편적으로 지나는 과정이 됐다. 

◇그래서 대학가는=이런 배경에서 21세기의 대학가는 새로이 재편됐다. 가장 큰 변화로는 만연해진 학생의 무관심과 소극성을 들 수 있다. 오랫동안 학생운동에 몸담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대표 윤민정 씨(정치외교학부·15)는 “사회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할 때 가장 큰 고민이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 방법이었다”며 “과거와 달리 요즘은 학생 총회나 동맹 휴업이 성사되기조차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덧붙여 “이제는 일반 학생들이 운동가를 낯설게 여기곤 한다”며 운동가와 일반 학생이 분리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대학생 전반의 가치관 또한 다양해졌다. 윤민정 씨는 “대학교육의 대중화가 대학생들의 정치적 선호를 다변화시켰다”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의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요즘 대학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는 사회적 이슈는 드물다. 과거 학생운동이 주력했던 노동, 통일 의제는 이미 학생의 공감대를 잃었다. 최근 서울대에서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지부가 파업한 것을 두고도, 일부 단체와 단과대는 지지하고 연대한 반면 ‘스누라이프’와 같은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도서관 난방 중단을 문제시한 글이 인기글로 게재되며 의견 대립이 빚어졌다. 또한 통일운동 단체 ‘대학생겨레하나’의 방슬기찬 씨(컴퓨터공학부·16)에 따르면 4·27 판문점 선언으로 통일에 대한 대학가의 인식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환영하는 ‘대학생겨레하나’의 활동이 서울 소재 한 대학 커뮤니티에서 거센 비난을 맞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로 부상한 페미니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여성주의단체가 성장하고 활동이 활발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총여) 폐지 흐름이 이어졌다. 동국대학교에서 총여가 폐지될 당시 총여학생회장이었던 윤원정 씨(동국대 영여영문학과·16)는 “2017년 동국대에서 총여가 3년만에 재건됐을 때부터 반대 여론이 존재했다”며 “총여는 총학생회와 달리 학생 사회 외부가 아닌 내부로 공략해야 하는 어려움과 마주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학생운동, 새로운 모습을 띠다

 

분명 학생 사회의 성향 변화에 따라 학생운동이 점차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각에서는 세가 줄어든 것보다 학생운동의 성격이 변화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사회 및 대학가의 변화에 발맞춘 21세기 학생운동의 경향을 짚어봤다. 

◇학생은 학생에게 관심을=총학생회를 두고 소위 ‘권’과 ‘비권’ 선거운동본부(선본)가 경쟁한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총학생회 선거는 운동권 조직 혹은 정파 간의 경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운동권 총학생회는 학생사회 내부에서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정치 투쟁을 벌이고, 학생 복지를 등한시하는 등 실책을 거듭하며 학생의 지지를 잃어갔다. 결국 2000년대 들어서는 비운동권을 자처한 선본이 학생 복지를 주된 공약으로 내세우며 운동권 선본과 비등하게 경쟁하기에 이르렀다. 서울대의 경우에도 1999년 ‘광란의 10월’ 선본이 학생회의 정치성을 부정하며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 여러 비운동권 선본이 집권에 성공한 바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7년에 발족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전대넷)의 성격은 주목할 만하다. 전대넷은 28개 총학생회 단위가 참여해 개별 학교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대학 전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전대넷은 △청년 일자리 확충 △입학금 폐지, 반값등록금 실현을 통한 대학 공공성 강화 △주거, 생활비 문제 해결 △사학비리 및 대학적폐 청산 등 학생들의 생활에 밀접한 문제를 단체의 주요 의제로 설정했다. 이는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정치 투쟁의 선봉으로 나섰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전대넷의 이해지 대외협력국장은 “현재 학생들의 정치적 요구와 흐름에 맞는 학생회 네트워크를 추진하다 보니 과거의 연합체들과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대넷은 300여 명의 학생회 대표자, 집행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기초해 정책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과거 학생회 연대체들이 수직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지녔던 것과도 차이를 보였다. 

◇운동권은 싫다=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가 과거 운동권 중심의 학생운동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에 반대한 본관 점거에서 “미래라이프 반대 시위는 어떠한 정치색을 띤 외부세력과도 무관하다”는 슬로건하에 학내외 단체의 참여 및 연대를 거부했다. 

이런 일들이 반운동권이라는 공통된 공감대하에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연대 이대모임 회원으로 당시 본관 점거를 직접 경험한 양효연 씨(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18졸)는 “처음부터 다른 단체와의 연대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는 않았다”며 “실제 학생들의 중론이 그랬다면 본관 점거에 뒤이은 운동권 주도의 박근혜 퇴진 운동은 그토록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본관 점거의 운영 방식이 학생 전반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며, 소위 ‘헤비 참여자’의 성격을 지녔던 일부 주도자들의 영향력이 행사된 결과였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대 본관 점거 사건의 배경에는 대학가의 반운동권 흐름도 분명 혼재하고 있다.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 중 일부가 운동권 조직 소속 학생의 발언을 저지하고 본관에 입장하는 것을 막은 것뿐 아니라, 과거 운동권이 주도한 시위의 모습에서 탈피한 것이 그러하다. 이들은 지도부와 일반 학생으로 나뉘는 기존 운영 방식 대신 모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내걸었다. 또한 운동권의 상징과도 같은 민중가요 대신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시위가로 채택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기존 운동권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당시 상황을 취재했던 「마르크스 21」의 정선영 편집원은 “이대에서 추진된 대학 구조 조정으로 인해 학생들이 고통받을 동안, 운동권 성향의 총학생회는 학생의 요구를 제대로 관철하지 못했다”며 “학생들의 실망이 운동권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윤민정 씨도 “여태 운동권이 독단적으로 운동을 이끈 전력이 업보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논했다. 남동진 씨는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에서 작성한 자신의 석사 논문 「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탈동원화’에 관한 연구」에서 “중앙집권적인 운동권 문화가 21세기의 개인주의화 된 학생들, 심지어 진보적 성격의 학생들에게까지 반감을 산 경향이 있다”며 운동권의 비민주성에 대한 역설는 1990년대 중반부터 문제시돼 왔다고 밝혔다.

 

학생운동,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학생운동의 규모가 축소되고 학생 개인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은, 과거 학생운동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언뜻 퇴보하고 망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요즘 학생들은 이기적’이라는 소위 ‘꼰대’ 같은 발언이 기성세대에서 나오고, 삭막한 현실에 지친 학생들은 억울해하기도 한다. 

과거 학생운동에 몸담거나 학생운동을 목격한 사람들은 학생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김명환 교수(영어영문학과)는 “과거에 대학생들이 떠맡으라고 요구받았던 일들이 오히려 젊은 학생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며 “사회가 정상화된 지금 그런 역할을 내려놓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최갑수 교수 역시 “학내 이슈가 학생 복지에 집중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최갑수 교수는 다만 “학내 문제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얕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학생 복지도 중요하지만, 법인화나 대학 거버넌스 등과 같이 학생들의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안에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의당 서울대 학생모임의 이재현 씨(서양사학과·18)는 나아가 “학생의 권익은 항상 사회 전체 구조와 연관돼 있다”며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주체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서울대 일반노조 파업을 예로 들며 “당시 학생 학습권 보호를 위한 효율적 전략은 난방을 켜달라고 노조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 대한 정당한 임금 지급을 본부에 요구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윤민정 씨는 이런 활동에 학생의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학생운동의 실패를 두고 개인의 도덕성이나 무관심을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학생들 삶에 밀접한 의제를 제시해 자연스레 사회에 대한 관심이 촉발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현 씨는 “정당의 학생위원회는 학교라는 현장에서 학생과 함께해야 한다”고 논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민정 씨는 “운동권과 비운동권, 각각으로 칭해지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가들은 그저 어느 순간 대학과 사회의 문제를 당사자로서 느꼈을 뿐”이라며 “이분법적인 구분이 일반 학생들로 하여금 선입관을 갖도록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숭교 강사는 이에 덧붙여 “운동권에 신경질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념과 성향을 핑계로 기피하기보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 변화는 대학가가 마주한 현실도 함께 바꿔놓았다. 하지만 기존의 학생운동은 관성으로 인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실패했고, 대학가는 기존의 학생운동에 실망 내지는 불신을 표하고 있다. 이제 대학가가 고민할 질문은 운동권과 비운동권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대학가는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청년 문제를 직시하고 학생들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학생들의 다변화된 가치관을 만족시키고 그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 논의의 장에 담아내야만, 대학가는 활로로 나서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ac.kr

레이아웃: 황지연 기자 ellie051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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