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 소설가 신작 연재 소설 ②

*편집자 주

이번 학기 『대학신문』에서는 임현 소설가의 신작 소설을 다섯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다음 내용은 1985호(5월 6일 자)에서이어집니다.

3.언젠가 나는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있는데, 사람은 남들의 불행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자기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만큼은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자주 되새겼으나 생각해 보면, 아주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한번은 유희가 내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뭔가 잘못한 걸까. 그때 말렸어야 했던 거 아닐까.”

특별히 수경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게 다른 무엇을 가리키는 거라고 전혀 의심할 수 없었다. 그 무렵의 우리는 늘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을 때, 수경의 남편은 우리를 쳐다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수경과도 이혼했는데, 그게 우리 내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수경의 불행에 정말 어떤 원인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내 앞의 수경을 대하고 있는 나는 다시 그 불행에 대한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수경은 근래 키우고 있다는 그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수경의 입장에서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거라고 여겼다. 따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것이 있을 텐데도 마음대로 두부나 백설기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털이 하얗고 복슬거리는 품종을 상상했다. 혼자 그런 것을 키우는 것이 지금의 수경에는 어딘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것도 있었다. 수경은마치 이 집 안 어딘가에 그 개가 함께 있기라도 한 듯이 아주 가깝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부자연스러운 태도마저, 나는 수경이 겪은 불행한 일들과 이어보면 자연스러운 행동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나는 수경과 함께 잠든 유희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수경이 진짜 만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보았다. 그러니까 근래 들어 키우기 시작한 반려견의 몸을 쓰다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습관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금은 없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둘 중 무엇이 됐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나는 유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 식의 위로라면 누구보다 수경에게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 맡길 데가 있었던 거야?”

나는 수경의 개를 염두에 두고 물었다. 그 순간, 아주 잠든 줄 알았던 유희가 식탁 아래로 내 무릎을 가볍게 쥐는 것이 느껴졌다. 곧이어 고개를 들고는 유희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전혀 의외의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언니, 이 사람 불쌍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걸 모른다. 자기가 얼마나 불쌍한지 전혀 몰라. 당신이 한번 말해 봐.”

“왜 그래?”

당황한 나는 윤주를 말렸으나 전혀 들으려 않았다.

“아니야? 당신 거기서 진짜 고생 많이했었잖아.”

그러고는 윤주는 결혼 전에 내가 살던집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좋은 조건에 속하는 곳이었다.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했는데, 거기에 비해 낡거나 불편한 것은 그런대로 참고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물론, 나쁜것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좋고 나쁜 것은 대부분 상대적인 문제니까. 말하자면 당시의 내게는 그만하면 괜찮은 조건이라고 여겼던 반면, 유희에게는 그것 모두 불우한 환경에 속했을 뿐이었다. 윤주가 그 집을 직접 본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이사를 나가던 날일손을 돕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인데, 포장된 짐으로 어수선한 집안을 둘러보던 당시의 윤주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좋네.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좋아.”

오히려 그렇게 말해주는 유희가 나는 고마웠다. 그럼에도 왜 이제 와서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것인지 나는 전혀 이해할수 없었다. 대신 유희는 그날 이사를 하면서 보았던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골목이 좁아서 차를 댈 데도 마땅하지가 않더라. 이삿짐을 실으러 트럭이 도착하고 한참 짐을 나르고 있는데, 누가 그러는 거야. 거기에 주차를 하면 안 된다고. 몸이 작은 할머니였거든.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 있으니까 화가 나잖아. 야박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당장 실어야할 짐이 있고, 지금 이사를 나가야 하는데, 그럼 이걸 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도 모르게 화를 내 버렸어. 그런데 그할머니는 뭐라고 대꾸하는 말도 없이 자기 집 문을 열고 들어가버리는 거야. 거기 문이 있는 줄도 모르는 곳이었어. 그러니까 트럭 때문에 막혀 있는 아주 좁은 공간으로 몸을 겨우 집어 넣더라.”

이사를 하는 동안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으나, 그 골목의 풍경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4년을 살았다. 4년 동안 늘어난 세간이 많아서 버려야 할 것도 많았는데, 그중 무언가를 살피고 주워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노인 중에 한 명이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유희는 내가 살던 곳이 그런 곳이었다고 수경에게 말해주었다. 그걸 듣는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시의 윤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믿고만 있었던 게 조금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나를 더 민망하게 만든 것은 수경의 태도 때문이었다. 우는 유희의 손을 잡아주며 “알지,그럼”하고 달래주었다. 그게 나는 조금 무안했다.

“이 사람이 그런 집에서 고생을 많이했거든.”

그런 집이라니... 그런 곳에서 내가 살았다니... 어딘가 이 자리에서 내가 가장 불쌍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경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이 되었다.

“무슨 그런 말을 해.”

나는 유희의 주정이 더 길어지기 전에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유희는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언가를 참았다가 억누를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게 나를 좀 참을 수 없게만들었다.

“그런데 언니. 이 사람은 몰라. 자기가얼마나 불쌍한지도 몰라. 모르면서 자꾸다른 사람 이야기만 쓰잖아. 당신이 말해 봐, 요즘 당신이 뭘 쓰고 있는지 한번 말해보라고.”

4.취한 윤주를 부축하고 안방으로 옮기는 사이, 수경은 식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윤주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거실로 나가 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윤주는 내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않았다. 그러고는 좀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내게 속삭였다.

“언니가 조금 이상해.”

이상한 것은 오히려 당신이지 않으냐고 나는 따져 묻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이 아픈 것 같아.”

나는 유희의 베개를 정리해주고 안방의 불을 꺼 주었다. 그러자 유희가 허공에서 손을 휘저으며 나를 찾았다. 내 얼굴을 끌어당기더니 귀 가까이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언니가 이상한 말을 하더라도 그냥모른 척 해줘.”

거실로 나왔을 땐, 설거지거리가 개수대로 모두 옮겨진 뒤였다. 고무장갑을 찾는 수경을 말리며 나는 다음날을 걱정해주었다. 준비할 것이 많을 텐데, 그만 들어가서 쉬라는 내 말에 수경은 별다른 대답도 없이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식탁 앞에 앉아 설거지를 하는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정확히는 내 뒷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경이 내게 무어라 말했다.

“뭐라고?”

쏟아지는 물소리 때문에 수경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나는 다시 되물었다.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마른 음식물이 묻은 그릇들은 잘 닦이지 않았다. 그런 것들만 따로 골라 더운물에 담가 놓은 뒤, 나는 다시 수경 쪽을 돌아보았다.

“자기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그런 뒤에 무언가 더 이어질 말이 있을텐데, 수경은 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아무것도 없는 빈 컵에 실은 뭐가 들어있기라도 한 듯이 오래 바라볼 뿐이었다.■

 

임현 소설가

»2014년 「현대문학」 등단

»단편집 『그 개와 같은 말』

»제8회 젊은작가상 대상(2017) 수상

»제9회 젊은작가상 본상(2018)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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