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뮤지엄 스토리텔러’ 이은화 작가를 만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자신의 작품이 「월간미술」 두 면에 걸쳐 소개되고, 직접 집필한 예술 분야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이는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꿈꿔 보는 일이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실현해낸 사람이 있다. 바로 ‘뮤지엄 스토리텔러’ 이은화 작가다. 그의 이야기를 성남 분당의 작업실에서 들어봤다.

이은화 작가는 “순수 예술의 인프라가 탄탄해야 국가가 튼튼해진다”며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과 국가적 시스템이 뒷받침 돼야 하는 만큼 국내의 문화 예술 지원이 더 풍부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화 작가는 “순수 예술의 인프라가 탄탄해야 국가가 튼튼해진다”며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과 국가적 시스템이 뒷받침 돼야 하는 만큼 국내의 문화 예술 지원이 더 풍부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림에 대한 꿈,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이은화 작가는 진로를 ‘미술’로 정했다. 그는 대학 진학 후 미술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공부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세 곳의 대학에서 각기 다른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먼저 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 진학해 미술사를 전공했다. 이 작가는 “그러나 순수미술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런던에 가 그래픽 디자인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수 미술에 대한 사라지지 않는 열정은 그를 런던 예술대 순수 미술 석사과정으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미술품 경매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이 작가는 석사 졸업 후 영국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로 향했다. 그는 “석사과정 졸업 전시를 하던 중 내 작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런데 내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수 있을지, 미술품 매매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전혀 몰라 미술품 경매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소더비 최초의 한국 학생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학업에 집중할 뿐만 아니라 미술 시장의 동향을 꼼꼼히 살피며 미술 분야 전반과 시장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귀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은화 작가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탄탄한 미래가 보장돼 있는 길이라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선택하지 않았다. 이 작가는 “일이란 내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야 하는 것인 만큼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실 한국에는 소더비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국내 경매 회사에 비교적 쉽게 취업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고학(苦學)을 하는 학생 입장에서 하루에 수천 억이 오가는 경매 시장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고 작품의 가치를 현금으로 매기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 이와 관련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처럼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귀국 후 미술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현재 그는 미술작가를 넘어 미술 평론가, 전시 기획자, 강연자, 교육자로 자신의 활동 분야를 넓혀나가고 있다.

뮤지엄 스토리텔러, 미술을 말하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은화 작가는 스스로를 뮤지엄 스토리텔러라고 소개한다. 이 직업은 이 작가가 스스로 이름을 붙인 직업이다. 그는 “현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제일 어렵다”면서도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직업은 뮤지엄 스토리텔러”라고 웃어 보였다. 이어 그는 “뮤지엄스토리텔러는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며 경험한 것을 이야기로 전하는 이야기꾼”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2005년에 책 『21세기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을 펴낸 후 꾸준히 뮤지엄 스토리텔러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이 일은 일과 놀이, 그리고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자 했던 내게 잘 맞는다”며 “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힐 수 있고 일을 하면서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뮤지엄 스토리텔러의 매력”이라고 자신의 특별한 직업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지금까지 경험한 미술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부탁하자 이은화 작가는 독일 노이스 지방의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꼽았다. 그는 “뮤지엄 스토리텔러로서 다양한 미술관을 소개하기 위해 유럽을 보통 1~2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들른다”며 “그곳은 자연 속에 있는 미술관으로 초원을 산책하며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가는 이 미술관의 장점으로 자연광 아래에서 미술품 감상과 휴식, 명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그에게 미술관은 미술품이 전시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작가는 “미술관은 내게 휴식처이자 놀이터고 일터면서 도서관이며 교실이기도 하다”며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실이 아닌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술관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본래의 의미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작가는 “최근 미술품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전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듦에 따라 사진 찍는 것이 주가 되는 전시가 늘어나고 있다”며 “물론 이런 전시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에 목적을 둔 전시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식지 않는 열정, 삶의 원동력이 되다

이은화 작가는 직업을 통해 얻은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고자 한다. 이에 그는 ‘공공미술’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은 미술관-녹사평역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홍보자료에 설명을 다는 ‘스토리텔링’을 맡게 됐다. 이 작가는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예술가의 작품이 설치된 공공 미술관이 개장했다”며 “이곳이 국내 1호 ‘예술 지하철역’이고 평소 공공 미술 분야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공공 미술과 관련된 활동을 더 해나갈 예정이다. 이 작가는 특히 공공 미술과 도시 재생을 접목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는 “이번 여름에는 북유럽의 도시 재생이나 도시 문화를 알아보기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자신의 열정을 내비쳤다.

이은화 작가는 뮤지엄 스토리텔러기도 하지만 창작 활동을 하는 미술 작가기도 하다. 그는 200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술 작가로서 활동해 왔다. 이 작가는 “첫 개인전에서 ‘그림을 쓴다’를 주제로 잡고 이모티콘을 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며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도록이나 보도자료, 전시 전반을 직접 구상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전시는 신인 작가의 첫 개인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평을 받았다. 이 작가는 “순수 회화를 선호하던 당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LED 패널 등을 이용한 전시가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며 “한 평론가는 자신이 지금껏 본 개인전 중 최고였다는 평까지 남겨줬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에서도 꾸준히 전시를 열고 있다. 이 작가는 “작업을 할 때 캔버스와 프레임을 직접 만든다”며 “최근에는 기본적인 재료를 손수 만드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에 3D 프린팅과 같은 기술을 결합해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은화 작가는 미술 작품과 미술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저자기도 하다. 그는 ‘현대미술관’을 주제로 한 책 『21세기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을 2005년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작가로서 명성을 쌓아왔다. 이 작가는 “주로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는 미술품과 달리 불특정 다수에게 빠르게 전달되는 책의 특성상 미술 작가보다 책 작가로 먼저 알려졌다”며 “첫 책의 반응이 좋아 『그랜드 아트 투어』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등 다른 책도 연이어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교보문고’에서 미술 관련 책의 저자로는 최초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책을 펴냄으로써 저자 강연이나 대학 강의 기회를 많이 얻었다”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돼 뿌듯하다”며 웃음 지었다.

이은화 작가는 책 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과 만난다. 그는 「동아일보」에 정기적으로 ‘이은화의 미술 시간’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KBS1에서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문화 공감>에도 출연하고 있다. 이 작가는 “그동안 출간한 책과 작품을 본 기자와 PD가 연재 및 출연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중 ‘이은화의 미술 시간’은 미술 작품에 대한 이 작가의 평론으로 구성된다. 평론에 담긴 그만의 독특한 시선은 독자를 미술 작품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은화 작가가 걸어온 삶 뒤에는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이 작가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는 “모든 일은 한 번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며 “첫 개인전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 1차부터 3차에 걸쳐 홍보되는 보도 자료를 직접 작성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투쟁의 역사’라고 하기까지 한다. 이를 통해 어떤 일도 허투루 하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순수미술, 디자인, 미술사부터 예술 경영까지 미술 전반에 걸친 학업도 다채로운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작가는 “뮤지엄 스토리텔러 뿐 아니라 미술 작가, 저자 등 다양한 직업으로 활동하기 위해 최고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며 “전시를 진행할 때는 디자인, 기획부터 회계에 이르기까지 멀티플레이어가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작가가 현대 미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만큼 세상에 대한 관심도 잃지 않는다. 그는 “동시대의 예술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내가 다루고자 하는 대상이 언제 변할지 모른다”며 “그렇기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갖고 탐구한다”고 열정을 보였다.

이은화 작가는 그야말로 ‘현대미술 전도사’다. 그는 “나는 미술이 항상 즐겁고 재미있다”며 “이를 통해 얻은 기쁜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자신이 경험하는 현대 미술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즐거움을 얻는 것이 그의 삶이다. 이 작가는 “대한민국에 뮤지엄 스토리텔러는 나뿐이기 때문에 나는 최고의 뮤지엄 스토리텔러”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은화 작가만의 직업 뮤지엄 스토리텔러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길 바란다.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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