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통해 들여다본 J.D. 샐린저의 삶

 

소설가 J.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1950년대 미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1965년 사회를 떠나 미국 뉴햄프셔 주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 후 한 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베일에 싸인 그의 삶은 영국의 전기 작가 이안 해밀턴의 책 『샐린저를 찾아서』를 통해 대중에 소개됐다. 그리고 2017년, 『샐린저를 찾아서』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2017)가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는 샐린저의 일생을 조명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영화는 샐린저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글을 쓰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2차 대전의 참전 용사였던 샐린저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중 목격한 동료의 죽음이 반복해서 떠올라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 쓰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펜도 타자기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고 말하며 전쟁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이 되는 ‘홀든 콜필드’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전쟁이 끝난 후, 샐린저는 소설 쓰기에 더욱 매진한다. 하지만 불시에 떠오르는 전쟁의 기억은 그의 작업을 방해한다. 영화는 샐린저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그의 동료가 폭탄에 맞아 죽는 장면이나 샐린저가 동사(凍死)한 동료를 옆에 둔 채 빙판을 깨는 장면과 함께 보여준다. 샐린저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참혹함과 샐린저의 괴로움을 병치해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는 그의 고뇌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관객은 샐린저의 상처에 공감하며 그가 전쟁으로 겪게 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게 된다. 또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왜 그토록 순수함을 좇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전쟁을 경험하며 전쟁이 기성세대의 과욕과 세상의 부조리에서 비롯됐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때 묻지 않은 순수성에 매료됐던 것이다.

영화는 순수함에 대한 샐린저의 갈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관객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내용과 샐린저의 삶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예컨대,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난 샐린저는 그곳에서 체스를 두는 한 남매를 발견한다. 그는 뭔가에 이끌린 듯 아이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마주보고 앉아 체스를 두는 남매의 모습이 천천히 ‘줌 인’(zoom in)된다. 이내 샐린저는 그 자리에서 소설의 한 문장을 완성한다. “소녀의 커다란 눈은 늘 그 자체의 순수함 속에 빠질 듯한 위험에 처했다”는 게 그것이다. 이를 통해 어린아이와 그들의 순수함이 샐린저 소설의 모티프였음을 알 수 있다. 

샐린저가 퍽치기를 당한 장면과 회전목마 장면 간의 대조는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영원히 보호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연상케 한다. 캄캄한 밤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며 전쟁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샐린저는 한 남성에게 말을 건다. 그 남성은 샐린저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듯 하다가 그를 넘어트린 후 지갑을 훔쳐 달아난다. 그 과정에서 샐린저는 강도에 대항하며 “나 참전용사야”라고 소리친다. 이는 “더 이상 누구도 내게 상처를 줄 수 없어”라는 아우성으로 들린다. 영화는 만신창이가 된 샐린저의 모습을 10초가량 비춘다. 장면이 바뀌고 샐린저의 시선은 신나게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샐린저의 눈길에는 안타까움이 녹아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채 회전목마를 타는 아이들도 언젠가는 퍽치기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천 명의 아이들뿐 어른은 나밖에 없다. 내가 할 일은 절벽으로 내달리려는 애들을 잡아주는 것이다. 애들이 앞도 보지 않고 달리면 내가 어딘가에서 나와 그 아이들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내가 종일 하는 일이다.”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샐린저의 바람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콜필드의 대사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대사가 숲을 거니는 샐린저와 함께 등장하는 것을 통해 샐린저가 콜필드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바람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샐린저는 소설을 술회의 창구로 삼아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했다. 샐린저는 “사실 난 이 망할 세상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며 소설을 통해 자신의 응어리를 해소했다.

샐린저는 소설을 자신의 유일한 소통 창구로 삼으며 세상과 고립된 삶을 산 작가였다. 영화는 한 기자가 샐린저를 인터뷰하는 장면을 통해 콜필드가 샐린저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이라는 것과 그가 순수함을 좇은 이유를 명쾌하게 밝힌다. 인터뷰 중 『호밀밭의 파수꾼』이 자전적 소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샐린저는 “그런 셈”이라며 “내 어린 시절도 콜필드와 비슷했다”고 말한다. 왜 소설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냐는 질문에는 “애들은 순수하니까. 아직 세상에 의해 망쳐지지 않았고. 나도 여전히 순수하기를 바라지만 난 못 볼 것들을 봤기에 결코 다시 순수해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관객의 추측으로 그쳤을 수 있는 부분을 직접 제시하는 것이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의 중요한 특징이다.

“전 남편이 되는 법도 몰라요. 아버지, 심지어 친구가 되는 법도요. 아는 거라곤 글쓰기밖에 없어요. 제가 만약 아무 보상이 없어도 글쓰기에 삶을 바칠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샐린저가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지 않고 혼자만의 글쓰기에 몰두하겠다는 의사를 전하는 장면이다. ‘순수하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다’고, 다른 하나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다. 샐린저는 삶에서 이 두 가지 의미의 순수함을 추구하며 기성사회에 저항한 ‘호밀밭의 반항아’였다.

호밀밭의 반항아대니 스트롱 감독2018. 10. 1812세 관람가109분
호밀밭의 반항아
대니 스트롱감독
2018. 10. 18
12세 관람가
1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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