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탈원전 찬반 논쟁

원자핵공학과 학부생들이 지난달 21일부터 농생대 앞, 학생회관, 신공학관 등지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보다 앞선 2월 9일부터는 원자핵공학과의 대학원생들과 교수들이 매주 토요일에 서울역과 관악산 입구로 나가, 시민들에게 원자력의 친환경성과 안전성에 대해 홍보하며 서명을 받고 있다. 이 ‘원자력 살리기’ 거리 서명운동은 전국 13개 대학 원자력전공 학생들로 결성된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전국 원자력전공 대학원생과 대학교수 150여 명이 참여해 KTX역과 관악산 입구, 전주 한옥마을, 대전 수통골 입구 등에서 전국 단위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학생들의 거리 서명운동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진행되고 있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의 일환이다. 해당 서명에는 ‘okatom.org’를 통한 온라인 서명자 21만여 명과 거리 자필 서명자 22만여 명이 동참했다. 총 서명자 수는 현재 기준으로 43만여 명으로, 2017년 대선기간에 탈핵운동 진영이 진행한 ‘잘 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의 서명자 수인 33만여 명을 훌쩍 넘겼다.

지난 2017년 6월 고리원전 1호기 퇴역식에서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 이래, 원자력 산업계는 도산 위기에, 원자력전공 학생들은 취업기회 축소와 미래 상실 위협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한국원자력학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탈원전 정책의 부당함을 알리고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 왔다. 작년에는 원자력 유관 학과 학생회가 모인 ‘전국원자력대학생연합’에서 탈원전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유일의 원전 운영사인 주식회사 한국수력원자력이 공기업이라는 한계로 인해 탈원전 정책 시정을 요구하는 산업계의 목소리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대학교육의 관점에서 현 탈원전 정책의 위험성은 원자력공학의 학문 후속세대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공학기술 발전의 최종단계는 산업화를 통한 사회 기여와 부의 창출일 것이다. 1959년 창설 이래 60년 동안 우리 원자핵공학과 출신의 공학자들이 주축이 돼 오랜 기간 축적해온 국내 원자력공학 기술은 200억 달러 규모의 UAE 원전 수출을 달성할 만큼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국산화 개발에 성공한 원전 산업과 최신 기술들이 탈원전 정책에 의해 하루 아침에 시한부 기술로 낙인되고 진취적인 미래가 암울해진 상황을 무고한 원자핵공학과 학생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심형진 교수(원자핵공학과)
심형진 교수(원자핵공학과)

필자는 원자핵공학과장으로서 작년 학부 입학생 32명 중 6명이 자퇴 후에 다른 대학 혹은 다른 학과로 재입학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자퇴의 원인은 주로 원자핵공학이 본인이 원하는 학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었으나, 부분적으로는 탈원전 정책에 의해 높아진 미래 불확실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퇴생 중 한 학생은 면담 과정에서 “원자핵공학이 정부 정책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필자는 공학이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나, 원자력공학에 대한 몰이해로 빚어진 탈원전 정책과 이에 따른 불신과 불안감 때문에 거리 서명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상황을 우려한다.

이제 탈원전은 원자력 전공자와 반핵론자 사이의 논쟁을 넘어 사회적 담론으로 발전한 듯하다.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논하는 공론화위원회가 운영됐었다. 이를 두고 중요한 에너지정책의 결정을 시민참여단에 맡긴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숙의를 하면 할수록 건설재개 측의 지지가 늘어나는 현상이 관측됐다. 논란 초기에는 공학자들이 수치를 기반으로 주장하는 안전성과 일반 대중의 정서적 안심과의 괴리가 논쟁의 중심이었다면, 최근 거리 서명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은 탈원전 반대 서명 요청에 대해 원전의 안전성보다는 정치, 경제, 외교 등 다양한 이유로 원자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국원자력학회에서 실시한 세 차례의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를 보면, 원전의 유지 및 확대 의견이 축소에 비해 약 7:3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이념성향 및 연령별 특성이 조사 결과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짐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탈원전 정책은 단순히 후쿠시마 사고의 기억 혹은 원자력 마피아라는 프레임에 의한 고정관념으로 찬반을 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사회적 담론에 주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에서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그리고 친환경성을 따로 거론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학적 관점에서 원전, 석탄화력, LNG, 신재생 등 각 전원별 발전 비중을 결정하는 전원믹스 정책은 미래 전력수요 예측을 포함한 매우 어려운 최적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각 발전원은 경제성, 안전성, 에너지 안보성, 환경성 측면에서 일장일단이 있다. 한 가지 측면의 경향성만으로 최적 믹스를 결정할 수는 없다. 또한 미래 예측의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 현재 매 2년마다 수립되는 전력수급계획이 향후 15년간의 전원 정책만을 계획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필자에게 전원 최적화 문제와 관련한 원전의 미래 정책 방향을 묻는다면 “미래 기술발전 상황에 따라 시장이 점진적으로 결정해가도록 맡기겠다”고 답하겠다.

현재의 탈원전 논쟁은 단기간에 해답을 끌어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정답이 앞으로도 정답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지금은 탈원전 정책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놓고 맞서고 있으나, 이후에도 한·미 원자력 협력협정 개정,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 건설, 신규 원전 건설 여부 등으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조그만 지진에 의한 원전 불시 정지도 사회면 주요 기사로 다뤄질 것이다. 필자는 원전 기술이 발전하듯 사회적 지성도 발전함을 믿는다. 지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숙의 과정에서, 그리고 2년 가까이 이어지는 탈원전 정책 이행 과정에서 시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이해도는 놀랍도록 늘었다.

많은 학문 분야들이 그렇듯 원자핵공학도 환경여건에 따라 부침(浮沈)을 겪는다. 원자핵공학은 수소경제의 중심에 수소 생산 에너지원으로, 심우주 탐험의 중심에 우주선 엔진으로, 극지 개발의 중심에 전력원으로, 핵융합 발전소의 구현으로 인류 공헌을 위한 발전을 거듭해나갈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탈원전 논쟁이 공학에 대한 이해도 상승과 함께 과학기술 전반에 대한 사회적 담론으로 이어져, 공학도들이 자부심을 갖고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