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성 교수정치외교학부
전재성 교수
정치외교학부

숨 가쁘게 진행되던 북한 비핵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협상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벽에 부딪혔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위해 명백한 한 걸음을 내딛기를 바랐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의 선제조치에 충분히 보상하지 않았고, 핵을 내려놨을 때 미국이 체제와 정권을 보장할지 확신치 못하고 있다. 미국은 빅딜을, 북한은 단계적 조치에 집착하는 가운데 협상은 정체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를 살려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외교성과가 필요하므로 협상 동력은 살아 있고 당분간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이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북미 양측은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폐쇄했던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을 복구했고, 평화적 우주개발을 명목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해 그간 진전된 미사일 기술을 과시할 수도 있다. 미국은 경제제재의 로드맵을 보여주고, 북한의 미본토 공격에 대한 억지 및 방어능력이 충분함을 암암리에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 배후를 든든히 해 외교적 우회로를 마련하고, 한국의 대북 지원을 촉구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힘의 균형에서 미국이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미국과의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개인적 신뢰를 넘어 미국과 북한 간 제도적 신뢰를 쌓아 최종 합의에 이를 수 있는가다. 최근 최선희 외무부상은 북한 내부에 비핵화를 반대하는 군부 세력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비핵화 이후 북한의 운명에 대해 우려하고 미국을 믿지 못하는 군과 보수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내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강력한 주류 담론이 존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미간 협상이 재개돼도 북한의 핵무기 완전 폐기와 미국의 완전한 대북 체제보장의 최종 단계에 이르면 협상은 진실의 순간에 직면하고, 양측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인가를 묻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가 26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데는 신뢰 부족 못지않은 중요한 원인이 있다. 비핵화된 북한과 평화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들의 지정학 경쟁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과연 비핵화된 북한은 북중 동맹을 지속하며 미중 경쟁에서 중국 편에 설 것인가, 개혁 개방을 추구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할 것인가, 자본주의 바람이 부는 북한이 한국 주도 통일에 다가설 가능성이 있는가, 비핵화 이후에도 북한은 한국과 본격적 경쟁을 하며 미중 등거리 외교를 해나갈 것인가 등 질문이 꼬리를 문다. 주변 강대국들은 비핵화 이후의 한반도가 자국의 지정학 이익에 손해가 된다면 북핵 문제 해결보다 현상유지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한국은 물론 주변국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어낼 때, 모두가 북핵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핵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 방향을 잡는가가 그래서 중요하다. 미국 단극체제에서 북한의 생존문제였던 북핵 문제가 이제는 미중관계 속에서 미중 간 협력, 혹은 경쟁의 문제로 대두했다.

한국의 역할이 북핵 문제 해결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비핵화되고 평화가 정착한 한반도가 동아시아 안정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개발하고 구체적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의 동아시아 지역 전략은 물론, 비핵화 이후 북한의 대외전략 방향까지 명백해야 한다. 웬만한 강대국들은 한국이 미중경쟁을 원치 않고 강대국 간 협력 촉진의 중견국이 되고자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미중 양국은 격렬한 경쟁으로 진입하고 있고 한국의 한가한 중견국 외교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 등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사령부를 차리고 있고,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지원과 포섭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인프라 건설을 넘어 지정학적 함의를 가진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한국이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노력에 치중해 지역 전략에 힘을 쏟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아시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북한 역시 자국의 경제발전만을 외치면서 핵무기를 활용하는 약소국 전략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더 크게 보고 더 전략적으로 사고하도록 한국이 이끌어야 한다. 패러다임 변화를 보이는 국제정세 속에 한국의 외교대전략이 북한 비핵화 전략과 한반도 평화전략, 미중관계 전략과 동아시아 안보 질서 전략을 포괄할 때 북핵 협상의 구체적 이슈도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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