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효선 강사심리학과
허효선 강사
심리학과

개강한 지 한 달이 됐다. 신입생들에게는 아직 적응하느라 분주한 시기일 것이고 기존 학생들에게는 단순히 반복되는 또 하나의 학기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공간이 점차 익숙해지고 함께 어울리는 그룹도 어느 정도 정해지고 단지 일정에 맞춰 바삐 움직이다보면 나도 모르게 권태롭고 지루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자문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과연 지금 행복한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행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추상적으로 느끼기 쉽다. 누구나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는 모호하다. 학교에서 심리 상담을 하다 보면 일부 학생들은 행복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해놓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거창한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다고 말이다. 또는 먼 미래에 얻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것이라고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것일까?

장애를 갖고 있는 지인 댁을 부모를 따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 분은 다리가 불편해 보조기 없이는 거동을 할 수가 없었고, 최근에는 무릎 관절의 문제가 더 심해져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남편과 사별하여 혼자 사는데다 건강이 악화돼 일상에 제약도 많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실 텐데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만난 그 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라는 말씀과 함께, 수십 년간 지속해온 수영이 지금도 즐겁다는 것, 매일 아침에 성경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것, 안방 창문으로부터 비치는 석양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 등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셨다. 그 분의 표정과 말씀으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 이 분은 정말 행복을 느끼고 계시는구나.

일반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임에도 어떻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해져서 그 분의 말씀에 더 집중했다. 그로부터 알게 된 점은, 그 분이 불행한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 매몰되기보다는 현재의 익숙한 일상 속에서 사소하지만 새로운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신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수영을 하러 가면서 새로 준비한 수영모가 마음에 들며, 여러 번 읽었던 책이지만 특별히 마음에 드는 구절을 다시 접하게 돼 반갑고, 계절이 바뀌면서 유독 석양이 아름답고 따스하게 느껴져서 좋다고 하셨다.

사람은 반복되는 자극에 익숙해진다. 아무리 처음에는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더라도 그 일이 계속되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당연하게 느껴지며 심드렁해진다. 마치 신입생 때에는 모든 것이 신기했으나 대학생활이 지속될수록 지겹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고 공부하고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하교하는 일상이 반복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졸업 시기가 다가와 취업에 대한 걱정이 많아질 때면 더더욱 일상에서 기분 좋은 일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분명히 매일 다른 경험을 하고 있고 그 속에 즐거움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계절에 따라서 아침 해가 뜨는 시간이 변하고, 등하교 길 주변에 피어 있는 꽃과 나무가 시시각각 변하며, 바람의 방향과 그로부터 실려 오는 향기도 계속 변한다. 매 끼니 때마다 먹는 음식의 맛이나 냄새, 온도도 다를 것이다. 매번 만나는 친구들도 미묘하게 다른 표정을 짓고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소한 변화들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단치 않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어찌 보면 익숙함에 가려진 가장 가깝고 구체적인 행복을 붙잡지 못하고 먼 미래에 찾아올지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추상적인 행복만 바라보고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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