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난 지옥철을 탄다
오늘도 난 지옥철을 탄다
  • 황보진경
  • 승인 2019.04.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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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진경 사진부장
황보진경
사진부장

뭐든지 빨리 질리는 성격이지만 내가 그나마 오래 즐긴 게임이 있다면 ‘시드 마이어의 문명 Ⅴ’ ‘더 심즈 4’와 같은 시뮬레이션 장르다. 특히나 현실성이 높은 게임들은 몰입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하다 보면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나의 고3 시절을 채운 게임 중 하나가 ‘미니 메트로’다. 이 게임은 한정된 노선과 열차의 개수 등으로 가장 효율적인 지하철 노선도를 설계하는 게임이다. 승객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하철 노선도를 설계해야 하는데, 대기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승객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폭동이 일어나서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점잇기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랜덤한 위치에 새로운 역들이 생겨나고 승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5시간가량 플레이했지만 1,000점을 넘기지 못해 오기가 생겼다. 이 게임을 잘하기 위해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공부하고, 지하철역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노선도를 설계했음에도 점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공략 영상을 찾아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게임에서만 할 수 있는 엄청난 꼼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노선 하나를 임시방편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교통 체증이 일어나는 구간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 노선을 하나 만들었다가 교통 체증이 풀리면 다시 그 노선을 없앤다. 이 방식을 사용하니 점수가 두 배가량 높아졌다. 단 하나의 짧은 노선이 게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서울대 정문에 지하철역의 신설이 확정되고 서울대 캠퍼스 내 문화관까지 노선을 연장한다는 계획이 등장했다. 자가용으로는 30분 걸리는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걸려 통학하는 처지에서는 참으로 반길 일이다. 서울대 정문 앞 로터리부터 서울대입구역까지의 도로는 저녁시간만 되면 고질적으로 교통 체증이 심한 구간이다. 느린 버스의 속도를 참지 못한 학생들은 결국 서울대입구역에 도달하기 전에 내려서 걸어가기를 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울대입구역에서 자취하더라도 학교에 가는 데 30분가량이 걸리는 것이 기묘한 현실이다.

서울대 정문역의 신설은 단지 서울대 구성원만이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서울대는 학생, 교직원을 포함해 관악산을 찾아온 등산객과 다양한 목적으로 학교를 방문하는 외부인들까지 왕래가 활발한 곳이다. 이 모든 흐름을 감당하기에는 서울대를 향한 좁은 길은 너무 버거워 보인다. 어쩌면 서울대도 게임에서처럼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승객의 요구를 반영한 서부선 연장은 서울대의 교통 판도를 뒤바꿀 한 수가 될 것이다.

게임에서는 교통 체증이 생기면 임시 노선을 개설해 일시적으로 이를 해소하고, 이용자가 없으면 노선을 폐쇄할 수도 있고, 게임이 종료되면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한번 만들어지면 바꿀 수 없으므로 철저하고 효과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서부선과 신림선 계획은 장장 10여년에 걸쳐서 실행될 예정이다.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의미 있는 노선을 위해 다방면적인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지옥철과 지옥 버스를 타고 학교에 향하고 있다. 그들이 마주한 하루의 시작이 고달프지 않도록 교통 체증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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