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어도 개인적으론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만나고 싶었던 인물을 대신 만나보기 위해 『대학신문』이 나섰다. 지난 한 달간 『대학신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학기 『대학신문』에서는 ‘대신 만나드립니다’를 운영한다. 이번 코너에선 인터뷰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면 기사와 영상 콘텐츠를 함께 준비했다.

한 학생이 “청년으로서 어떻게 사회를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근 교수(국제대학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 교수는 그의 저서 『도발하라』에서 젊은이들이 ‘도발’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취함으로써 모순적인 사회 구조와 억압을 돌파해야 한다고 논한 바 있다. 『대학신문』은 이근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해 그가 짚어낸 사회적 모순과 해결책을 담았다.

◇정치에 스며든 반(反)지성주의=이근 교수는 정치를 비롯한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반지성주의를 포착했다. 반지성주의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생각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기존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간단히 정리했다. 이근 교수는 “한국 사회에는 통치자와 기득권층의 주장에 의문을 품지 않고 이를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경향이 권력자의 통치와 기득권 유지를 지나치게 수월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근 교수는 정치에서 반지성주의를 유지하는 기제로 권위주의를 지목했다. 그는 “경찰이 차를 세우라고 명했을 때 토를 달지 않듯 사람들은 권위에 순순히 따른다”며 “권위는 설득을 생략함으로써 거래 비용을 절감하고, 마찰을 방지해 질서를 유지하는 등 분명 순기능을 가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권위가 제공한 효율에 매몰되고 익숙해지면서 권위가 절대화된 권위주의가 등장했고, 자유, 창의, 인권, 정당한 주장 등이 희생됨에도 이성적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군부독재 당시의 이야기지만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분석이다. 이근 교수는 보수 정권이 권위주의로 국민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며 구시대적 정치 문화가 과거 독재로부터 계승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하지만 권위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진보 진영 역시 반지성주의 체제에 편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근 교수는 진보 정권이 정치적 이벤트로 지지를 결집시키는 ‘극장국가 모델’을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굳건한 보수 진영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적하기 위해 진보 세력은 논리로 설득하기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근 교수는 “극장국가는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며 민주화되고 정보화된 대한민국에서 극장국가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통탄했다. 그가 촛불집회 및 탄핵 정국을 두고 반지성주의를 몰아낼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내 실망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이근 교수는 “촛불이 바꾼 권력도 여전히 반지성주의에 매몰된 권력”이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가 통일, 반일과 같은 단순한 명제들에 기초한 채 한 두 가지 이벤트로 정국을 풀어나가고자 하는데, 이성적인 접근을 피하는 모습이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근 교수는 “결국 보수와 진보 중 누가 한국의 권력을 쥐더라도 반지성주의와 반민주적 통치는 해체되지 않았다”며 지성주의적인 사회로 이행하려는 지도층과 지식세계의 노력이 없다면 상황은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고 비관했다.

◇청년이 나서야 한다=이근 교수는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려면 청년이 ‘도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도발은 감정적 반응을 넘어선 실질적 해결 방법이다. 그는 도발이 사고를 통해 질문을 던지는 행위라며 “그저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모색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견고한 반지성주의 체제를 깨기 위해선 과거 민주화 시기처럼 시위하고 목소리 높이는 것을 넘어 새로운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근 교수는 전략적으로 도발해야 한다고 청년들에게 충고했다. 그는 “사회가 공고하게 조직됐고 권위로써 정당화되고 있다”며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부터 도발하면 거센 반발과 공격에 시달릴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부조리를 깨고 들어가라”고 말했다. 학교, 인간관계, 직장 등 일상에서 도발을 시작한다면 언젠가 핵심을 노릴 수 있는 ‘티핑 포인트’가 올 것이라는 뜻이다. 나아가 이 교수는 혼자서는 도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혁이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파이, 혜택,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세력을 형성하라”고 청년에게 조언했다. 

이근 교수는 “도발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생존에만 허우적대는 삶을 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물론 살아남는 데도 충분히 힘든 것을 이해한다”며 “하지만 죽지 못해 살고 싶지는 않지 않냐”고 청년과 학생의 도전을 종용했다. 도발을 통해 청년 세대에게 불합리하게 구성된 세계를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근 교수의 응원이다.

 

레이아웃: 황지연 기자  ellie051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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