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김연경 소설가를 만나다

소설 쓰기는 인생을 어떻게 읽어낼지 질문하는 일이다. 김연경 소설가의 작품은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진부한 일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탐구를 보여준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에게는 자신이 직면한 삶의 조건을 인식하고 스스로의 서사를 마주해가는 태도가 어려 있다. 거기에는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실존의 무게에 대한 한탄이 서려있다. 동시에 그런 삶의 한가운데서 모순을 끌어안고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김연경 소설가가 매일 아침 방문해 글을 쓰는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속된 것’에 대해 잘 쓰고 싶다

김연경 작가는 “나는 나에 대해 쓰는 소설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가 어렸을 적부터 품었던 가장 내밀한 욕망이다. 그는 “막연히 내 얘기, 가족 얘기, 고향인 거창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내 본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대학에서 노문학을 강의하고 작품 번역도 하지만 여전히 “내 이야기를 하는 소설가 김연경”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이야기는 ‘경계’에 놓인 채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다. ‘경계’는 출신, 직업, 재산 등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들과 관련이 있다. 김연경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지방에서 서울로, 초등학교만 졸업한 부모의 장녀에서 이른바 지식인으로” 경계를 넘으면서 품었던 야망이 현실에 부딪히는 일을 경험한다. 생활고에 시달려 갖은 문제를 일으키던 가족을 영도(島)에 두고 행정공무원이 돼 떠난 「섬」(2013)의 주인공 동수, 친척 집에 얹혀살면서도 집안 분위기와는 다르게 엘리엇에서 셰익스피어로 주제를 바꿔가며 학위 논문을 쓰는 데 매달렸던 「우연론과 인과론」(2013)의 용태 삼촌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렇다. 

김연경 작가는 “경계성에서 나오는 소외와 고독은 그들에게 불가피한 것”이며 “내가 경계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 문제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경남 거창 산골에서 태어났고, 부산의 달동네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한글을 배웠다. 김연경 작가는 “부산 집을 떠나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93학번으로 입학해 노문학을 공부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부산’과 ‘서울’의 경계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소설을 쓰며 그런 고민들을 풀어냈다. 

 

단층짜리 주택에 방 두 칸을 빌려 쓰는 우리 집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향긋한 비누 냄새를 풍기는 미남의 영문학도. (...) 몇 년이 지나도록 논문이 쓰이지 않자 삼촌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놈의 박사, 그놈의 교수는 남한테 주고 영어 강사로 살자, 그렇게 자본금을 모아 마흔다섯이 되기 전에 학원을 하나 세우자. 

- 「우연론과 인과론」 중

 

김연경 작가의 인물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경계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꿈꾸지만 어느 순간 다시 삶의 진부함 속으로 내려앉는다. 「우연론과 인과론」에서 ‘책상 위에 여봐란 듯 펼쳐져 있는’ 원서들을 공부하던 ‘미남 영문학도’ 삼촌은 결국 거창 일대의 산간벽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생활인으로 전락한다. 

김 작가는 “내가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방식은 매순간 가난, 결핍과 함께 호흡하고 살았던 내 과거와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척박한 삶과 자존심, 현실의 이야기는 통속적이고 때로는 서럽기까지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정말로 ‘솔직한 문제들’이다. 김 작가는 “그런 속된 것에 대해 잘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그려내는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속(俗)의 세계를 보여준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역설

작품 속 인물들의 평범하고 속된 인생은 현실 속에서 그들이 짊어진 온갖 무거운 가치들로 드러난다. 그래서 작가의 고민은 삶을 범속하게 만드는 것들, 우리를 내리누르는 ‘무거움’의 요소에 대한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는 “우리를 불편하고 얽매이게 만드는 것, 몸에 추를 달아서 무겁게 축축 늘어지도록 만드는 것”을 인간의 실존으로 정의했다. 인생을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념이나 지성, 고귀한 가치라기보다 그 사람이 처한 당장의 현실적인 상황, ‘실존’의 무게다. 김연경 작가는 가난, 장애, 불평등, 소외, 가족의 무게 등 문제적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 앞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자리가 자신의 것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 소식을 막 접한 이 순간만큼은 짧은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한편, 최승휴는 또 그 나름으로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생활인의 자리에서 철학자의 자리로 옮겨온 것 같은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2012) 중

 

희뿌연 증기가 의식의 흐름처럼 자욱이 드리워진 가운데,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칠순의 촌부와 초로의 영문학도와 유칼립투스를 갈아타는 코알라와 커피콩을 고르는 남자는 온데간데없다. (...) 누적된 피로와 수면 부족 때문에 시뻘겋게 충혈된 그의 눈에 문자 몇 개가 제멋대로 찍힌다. “여기가 묵시록이다” 혹은 “Welcome to the real world.” 

- 「우연론과 인과론」 중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의 최승휴는 대학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철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지만 시간 강사의 현실적 고뇌를 벗어던질 수 없다.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보지만 육아와 직장생활로 인해 매일매일 쌓여가는 책임과 부담 속에서 허우적대는 「우연론과 인과론」의 주인공 부부 역시 그렇다. 때때로 그들은 초로의 영문학도, 철학인의 자리에서 삶을 관조하거나 고고한 가치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무거운 짐들로 둘러싸인 삶의 진상, ‘묵시록’ ‘real world’를 견뎌내야 하는 생활인의 태도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김연경 작가는 “생의 무거움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서 그 괴리는 결국 현기증, 구토 등의 이상증세로 나타난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면 그녀도 스러진다. 어떨 때는 목구멍 안에서 맴돌다가 그냥 뱃속으로 사라진다. 그동안 뱃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몇 번씩이나 집어삼킨다. 

- 『다시, 스침들』(2018) 중

 

어느 순간 그들을 삶 한가운데로 강하게 내리 끄는 손길이 뻗치면, 사람들은 아찔한 실존적 감각을 느끼며 현실로 끌려 들어간다. 김연경 작가는 “이런 진행이 너무 무겁고 우울하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난 가볍기가 힘들다”며, “나에게 가벼움이란 농담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경 작가는 실존적 삶을 『구토』(1938)로 형상화한 사르트르, 『농담』(1967)을 통해 생의 가벼움을 역설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고 밝혔다. 두 작가는 작품에서 인생의 무의미와 인간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 고뇌하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김 작가는 “쿤데라는 끊임없이 가벼움을 역설하지만 사실 그 바닥에는 무거운 삶의 덩어리가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 조국을 떠난 쿤데라는 끝내 모국어인 체코어를 버리고 불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무거운 조건들에 묶여있었다”고 말했다. 김연경 작가는 쿤데라가 그려내는 “농담이지만 정말 불편한 진담의 무게”에 공감한다. 가볍고 무의미해 붕 뜨는 듯 보이는 삶은 현실을 규정하는 무거움의 요소에 힘없이 휘둘리기 때문에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김연경 작가의 주인공들 역시 무거운 실존 속에서 역설적으로 보잘 것 없어지는 생의 가벼움에 ‘구토’하며 괴리를 느낀다.

 

삶을 그려낸다는 것,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약간의 수줍음, 약간의 흐뭇함, 약간의 미안함, 약간의 경이로움, 약간의 기쁨 등이 복잡하게 뒤섞인 웃음이었다. (...) 눈이 스르르 감겼다. 죽음 저편과 이편의 경계 어디에서 나오는 꺼-억 소리처럼 없음과 있음의 경계 어디에서 뭔가가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지랑이」(2009) 중

 

김연경 작가의 소설은 등장인물이 삶의 무게에 신음하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음에도 대부분 명랑한 결말을 맺는다. 인생은 살면 살수록 아쉽고 두려우며 때로는 화도 나지만, 주인공들은 무겁고 벅찬 현실의 벽 아래서 우스꽝스럽게 ‘꼼지락거리는’ 존재들을 발견하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김 작가는 “나는 아이러니를 즐긴다”며 “유머 감각이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주인공들이 길을 나섰을 때 품었던 기대는 현실을 살아가며 어긋나고 일그러진 잔해로만 남는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삶의 이모저모를 흩어내며, 이들은 작고 나약한 인생에도 어딘가 희극적인 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서사의 막을 내린다. 김 작가는 “사실 이런 결말의 소설은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직접적으로 내놓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그런 실존적 문제의 존재와 그걸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은 소설”이라고 이야기했다. 

김연경 작가는 소설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새롭게 바뀌어가는 소설 쓰기에 대한 생각을 함께 전했다. 노문학 강의와 소설 창작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그는 “시대가 달라지면서 소설의 주제의식과 감수성의 코드도 달라졌음을 느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예를 들면 요즘 세대는 대가족의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책임감, 부채의식을 갖고 전개되는 대규모의 가족 서사를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순수문학에 대한 강박이 줄어 학생들이 다양한 장르문학, 환상 소설을 많이 읽고 쓴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동시대 문학의 흐름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늘날에는 소설의 정체성과 독자의 요구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요즘에는 내가 좋아하는 묵직한 문제의식이 담긴 장편소설보다는 좀 더 가볍고 개인적인 소설이 호응을 얻는 것 같다”며 “글을 읽고 쓰는 활동을 통해 위로나 처방을 받는 식으로, 소설의 역할이 ‘치료’에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주제들과 자신이 쓸 수 있는 소설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 김 작가는 자신의 글이 읽히지 않는다는 생각에 외로울 때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김연경 작가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는 소설가로 죽기로 했으니, 내 일에 가치를 두고서 뭔가를 쫓기보단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을 쓸 뿐이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김연경 작가는 “소설가는 자신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이를 새로운 서사로 창작해낸다는 점에서 소설 내에서는 창조의 주체인 ‘신(神)’”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손으로 쓴 소설을 책으로 묶어낼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김 작가는 “이상을 품은 큰 삶보다는 내가 쓸 수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여기 이 삶이 진정한 나”라며 소설가로서의 자신을 정의했다. 솔직하고 적나라한 우리의 실존을 고백하는 그의 소설은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도 각자의 진부한 삶을 껴안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준다.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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