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패스트트랙 정국을 해설하다

 

정국이 흉흉하다. 국회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114석을 보유한 제1야당은 국면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자 일체의 의정활동을 거부하고 국회를 떠났다. 꼴사나운 ‘동물국회’와 지지부진한 ‘식물국회’의 재현에 국민의 불만은 높아만 간다. 야당이 발목잡기로 국정이 멈췄다는 분노로 자유한국당 해산을 주장한 청원은 180만을 훌쩍 넘는 동의를 받았고, 여당이 당리당략에 매몰돼 분란을 조장했다는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에는 약 30만이 동의했다. 혼란스러운 시국 가운데 『대학신문』에서는 이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의 배경과 지금까지의 흐름을 짚고, 앞으로의 정세를 전망해 독자의 답답함을 덜고자 한다.

 

패스트트랙이 무엇이길래

패스트트랙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큰 혼란을 빚은 것일까. 패스트트랙은 ‘국회법’ 제85조의 2(안건의 신속 처리)에 의거해 지정된 신속처리대상안건을 일컫는 말이다. 패스트트랙은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60% 이상의 찬성으로 지정되며,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안건은 최대 180일의 소관 위원회 심사, 최대 90일의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최대 60일의 본회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각 단계에 규정된 기한을 넘기면 해당 안건은 자동으로 다음 심사로 이관된다. 즉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최대 33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한다. 한정훈 교수(국제대학원)는 “패스트트랙은 중요한 이슈를 두고 의원들이 일부러 시간을 끌어 논의를 회피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안건은 선거제 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위 안건들은 지난해부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상당 기간 논의됐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정개특위 소속의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발목잡기로 인한 국회 공전으로 시간 내 합의에 이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지난해 7월 출범을 계획했지만 자유한국당이 특위에 참여할 의원 명단을 3개월간 제출하지 않아 구성이 늦어졌고, 구성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해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동민 의원은 특히나 “선거법상 국회에서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1년 전인 4월 15일까지 확정해야 했다”며 선거제 개혁이 시급한 실정에서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편에 관한 당론 제시를 미루다가 뒤늦게 비례성 증진을 추구하는 기존 방향과 완전히 배치되는 안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논의가 지연되자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지난달 22일 위 세 가지 안건을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합의했다. 정개특위 소속 이용주 의원(민주평화당)은 패스트트랙 합의를 두고 “자유한국당을 일방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며 “자유한국당에 협상에 임할 것을 줄곧 요구했음에도 요지부동이었기에 여야 4당이 부득이하게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여야 4당의 합의 다음 날인 23일 “군소정당에 몇 석의 의석을 던져주고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호위하는 사법장악의 대못을 박겠다는 것이 이번 야합의 본질이고 패스트트랙의 최종 목적지”라는 강도 높은 논평을 내고 패스트트랙을 철저히 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자유한국당은 국회사무처를 점거해 여야 4당의 의안 제출을 저지했고, 의안이 접수된 뒤엔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회의장 앞에서 농성해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29일 밤 사개특위가 공수처 설치법안과 공직선거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고, 그 직후인 30일 새벽에 정개특위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지정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보이콧할 것을 선언하고 장외투쟁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동상이몽, 또는 이상이몽

패스트트랙을 두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용주 의원은 “각 당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이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며 여야 4당이 큰 노력을 기울여 합의를 이뤘다고 전했다. 원내 5당이 심중에 각기 다른 생각을 품었지만 여야 4당은 합의를 이뤘고 자유한국당은 의견을 함께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각 정당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제 개편으로 인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공수처 설치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원내대표(자유한국당)는 서울역 광장 집회에서 “좌파가 의회를 점거하는 선거법”이라며 이번 선거제 개편이 범여권 또는 범좌파에 유리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이 비례대표 수를 현행 47석에서 75석으로 증원하고 연동률 50%를 적용한다는 점을 가리킨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는 선거제 개편이 득보단 실일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정훈 교수는 “정의당 의석이 확대되더라도 더불어민주당과 항상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거대정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연동률을 포함한 선거제도가 오히려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포함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거듭 공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제 개편 논의 초반 선거제 개편에 따른 의석 축소를 우려해 미온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정권 및 여당의 핵심 정책인 공수처 설치를 두고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선거제 개편에 합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을 위한 의석이 부족해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정당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정훈 교수 역시 “선거제의 비례성 확대를 주장하는 사회적 요구가 강한 상황에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압력에 저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선거제 개편을 거래의 카드로 이용해 군소정당과 타협한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자유한국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자유한국당은 당장의 선거 유불리의 문제로 패스트트랙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반대하고 나선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이용주 의원은 “자유한국당이 여러 이유로 공수처 설치법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을 반대했지만, 그건 표면적 이유일 뿐”이라며 핵심은 선거제 개편에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됐을 때 잃게 될 의석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군소정당의 의석이 확대됐을 때 자신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한다는 해석이다. 한편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반대’ 자체를 하나의 정략으로 삼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원택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자유한국당이 지지층을 결집하고 대안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패스트트랙에 반대했다”고 헤아렸다. 한정훈 교수 또한 “현재 유권자의 관심을 끌 국정 이슈가 많지 않다”며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공수처 등과 같이 중요하고 관심받는 법안에 반대함으로써 반정부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했다.

 

동·식물 국회,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향후 정국은 어디로=한정훈 교수는 패스트트랙 지정에 따라 330일 후에는 표결이 강제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투쟁을 이어가는 자유한국당이 곧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해당 안건이 표결에 부쳐질 경우 여야 4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기에 자유한국당이 참여하든 불참하든 법안은 통과될 공산이 크다”며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도 장외투쟁을 지속하는 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자유한국당도 법안 논의에 참여해 공로를 세우거나 법안에 자신의 입장을 반영하고자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에 덧붙여 한정훈 교수는 “국민 여론의 힘에 의해 자유한국당은 회의에 복귀할 것”이라며 최근 국민청원 등에서 비춰진 민심이 자유한국당에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 예측했다. 강원택 교수는 여당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선거가 1년 남았는데 야당이 내내 국회 밖에 있을 수는 없다”며 “자유한국당이 제도적 공간으로 복귀하도록 여당이 명분과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 논의 기간 동안 자유한국당과 성실히 협의하고 합의안을 도출하겠다는 입장 아래서 자유한국당이 논의에 참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외양간 고칠 방법은=패스트트랙 국면은 지금껏 수없이 반복된 소모적 정쟁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선 상이한 의견이 제시됐다. 강원택 교수는 “국회선진화법은 소수당에게 권한을 주는 합의제적 방식을 지향한다”며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에도 야만적 정쟁이 해결되지 않은 것을 보면 기존의 다수결제로 회귀하는 방향 또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정훈 교수는 한국 사회가 진정 협치를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다면 “협치를 약화시켰던 다수결 중심의 제도를 하나씩 재검토하고 합의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정부와 여당, 야당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여야정 협의체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야의 사전 논의 없이 정부 발의안이 국회에 부의되면 야당은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여야 간에 논의할 시간 역시 여유롭지 않다. 한정훈 교수는 “야당이 법안에 대해 잘 모르니 일단 반대하게 된다”며, 그렇기에 정부가 발의안을 내놓기 전 여야 모두와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해 거래 성사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정훈 교수는 “자유한국당이 논의를 거부한 것도 문제지만 여야 4당이 해당 법안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국민들이 패스트트랙 기간 내 진행되는 논의와 법안 내용의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의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들은 하나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법안이 졸속으로 통과되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과 올바른 방향으로의 압박이 필요한 시점이다.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ac.kr 

인포그래픽: 강지형 사회부장 remember069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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