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호자’ 없는 사회의 절망
‘옹호자’ 없는 사회의 절망
  • 대학신문
  • 승인 2019.05.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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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교수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

보건대학원

연이어 정신질환과 관련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또 비슷한 사고 소식이 들린다.) 정신과 의사가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지 채 넉 달도 되지 않았는데, 황망하고 답답하다. 다시 공포와 혐오, 차별이 번지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전보다 많이 차분하고 이성적이다. 사회가 힘을 합해 정신질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비관적인 면도 있다. 사회와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나아졌는데, 막상 여론대로 ‘제대로 치료하고 지원할’ 책임을 누가 다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정부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대책’과 ‘정책’과 ‘방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때로부터 벌써 20년이 지났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면서도 되는 것은 드물고 진전은 더디다. 이번에도 말만 하고 별 변화가 없으면?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요즘 나는 해결방안을 뻔히 알면서도 잘 안 되는 문제들에, 그리고 왜 그런 결말이 나고 실패했는지에 관심이 많다. 이론대로 되지 않고, 윤리와 도덕으로도 부족하고, 여론이 들끓어도 눈도 끔쩍하지 않는 일들. 자칫하면 이게 옳고 저게 정답인데 왜 안 될까 불평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게 생겼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그런 것을 한 가지만 고르라면, 단연 불평등 문제다. 

나는 건강 불평등을 주로 공부하지만, 이와 직접 관계된 것이 소득 불평등이다. 소득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방법이야 좀 논란이 있지만, 그것도 주로 속도를 문제라고 하지 기본방향부터 반대하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답을 알고 방법도 뻔한데, 왜 이렇게 안 되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증세를 하는 것에 이렇게 반대가 많을 줄 몰랐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도 비슷하다. 성인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보호자들이 돌봄 대상이 될 지경이다. 개인이나 가족이 다 할 수 없어서 사회가 분담하자는 데 다들 동의하고, 정부도 공무원도 돌봄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기술과 방법에 관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잘 안되고 모든 것이 부족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거친 표현이지만, 결국 ‘힘’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답을 알면서도 뭐가 잘 안 될 때는 법률이나 예산, 또는 무슨 정책이나 제도를 원리대로 바꿀 힘이 없다는 뜻이다. 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그럴 마음이 없거나 반대해서 그러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성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대다수, 하다못해 선거에서 표도 보잘것없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또 어떤가? 광화문 거리에서 몇 달씩 농성할 때는 반짝 관심이라도 생길 법하지만, 법, 예산, 정책, 제도에 힘을 쓸 방법까지는 턱도 없다. 힘은커녕 관심을 끌 방법도 막연하지 않은가.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고는 별 힘 없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기가 더 어려워진 듯하다. 전부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쁘니, 말할 수 없고 글로 쓸 수 없는 사람들은, 어디 아는 사람도 없을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높은 굴뚝에 올라가 긴긴 투쟁을 해도 신문에 한 줄 나오지도 않을 때, 그들에게 세상은 지옥이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절망한다. 아니 보이지도 않는다.

누구라도 나서 ‘보이지 않는 자’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공감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슨 진보니 도덕이니 하는 말은 미뤄놓자.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려고 분투하는 이웃에 대한 경의란, 그저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가. 타자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것, 그리해 작은 힘을 보태 좀 더 큰 힘이 되게 하는 것이 내가 져야 할 작은 의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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