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완 취재부장
이승완 취재부장

자유한국당 해산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자 수가 180만을 넘었다. 청와대 국민 청원 사이트 개설 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청원에 참여했다고 한다. 물론 행정부인 청와대에 정당의 해산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민청원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가 높다는 것은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패스트트랙 지정안에 반대하며 국회파행을 초래한 자유한국당의 행보를 비판하는 ‘민의’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민의’가 정당 해산을 향한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떤 정당을 해산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집단을 비정상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넘어선다. 해산된 정당은 더 이상 정치공간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많은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된다. 국민청원이 요구하는 것처럼 자유한국당이 해산돼, ‘5·18 망언’과 같은 극단적인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듣지 않으면 정말 그걸로 그만일까?

자유한국당이 내는 목소리는 의원들의 머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논란이 있은 뒤,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반등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의 행보에 지지를 표하는 의견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정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먹고 산다. 정당이 내는 목소리는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한 소리, 그러니까 더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맞추려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자유한국당의 지지가 오히려 반등했다는 것은, 그들이 하는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유한국당이 내는 목소리를 마냥 허튼소리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듣기 싫은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은 편하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내뱉은 생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생각은 다른 입을 통해서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그쪽은 늘 그렇듯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이쪽도 늘 그렇듯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 것이 아니라면, 오늘은 귀를 막더라도 내일은 다른 곳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들어야할 이야기들이라면 그 이야기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국민청원에 참여한 이들은 더 이상의 갈등을 바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갈등이 등나무와 갈나무가 얽혀 살아가는데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얽힘이 불편할 때가 대부분이겠지만, 불편이 없다면 그들은 더 성장하려고 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얽혀살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관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관용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힘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더불어민주당의 해산을 청구하는 청원 또한 올라와 있다. 자유한국당 해산만큼은 아니지만, 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에 참여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의견이 ‘민의’라고 주장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두 개의 ‘민의’ 앞에 서있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한다. 

그 ‘민의’들에게 묻고 싶다. 어느 순간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져 진짜로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면, 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듣지 못하게 된다면, 서로를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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