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나는 경상남도 창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은 대체로 즐거웠다. 덕분에 아직도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몇 있다. 그런가 하면 반대편에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기억도 동시에 떠오른다. 특히 기억에 남는 끔찍한 ‘매질’도 몇 차례 있었지만,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적이었던 두발 단속과 체벌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더 많다. 그 순간들이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남겼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 폭력이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화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더 놀라게 한다. 

내가 대학생이 된 2010년은 학생인권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점차 활발해지기 시작했던 때다. 2010년에는 경기도가,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 전북과 서울이 잇따라 학생인권조례를 제정·공포했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시도했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경남지역 역시 경남교육연대가 2008년과 2012년에 두 차례 제정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마 사범대생이라 더 그랬겠지만, 2011~2012년에는 전공이나 교양 수업에서 체벌이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찬반 논쟁을 수차례 다뤘다. 토론을 준비하거나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상대해야 했던 학생인권조례 반대 논리는 다양했지만, 핵심은 결국 ‘현재 학교의 관습과 규범을 통해 유지하고 있는 질서가 있는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그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렇기에 학생인권조례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마땅히 존재해야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이 시기지만 두발 자유화, 체벌 금지 등은 사실 90년대 말부터 꾸준히 논의돼왔다.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경상남도 교육조례(안)’(경남학생인권조례)가 이번에 다시 경남도의회에 제출됐고, 이번 달 14일 도의회 임시회에서 제정 여부를 심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례안은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그 배경에는 관련 시민단체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갈 길이 순탄치는 않은 듯하다. 경기나 서울, 전북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때, 그러니까 학부생 시절 봤던 것과 비슷한 논쟁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경남도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조례 제정’ 당론을 포기했다.

거의 10년이 지났는데도 비슷한 논쟁을 또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교가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 경기, 서울, 전북의 학교들이 ‘학생의 권리만을 강조’해 ‘책임 없는 자유’가 넘치는 무법천지가 됐는가? 그렇지 않다. 이 지역의 학교와 그 구성원들은 학생인권조례에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라고 해봐야 사실상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보장하는 인권의 가치와 원칙을 구체적으로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들이야말로 헌법적 가치를 경시하는 태도와 우리 사회의 오랜 적폐인 권위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우려하게 된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는 시기상조가 아니라 너무 늦어지고 있어 문제다.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한 친구에 따르면 체벌은 일상적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체벌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스쿨미투’ 제보들을 보면 ‘인권친화적 학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제 철 지난 논쟁을 멈추고 학생인권조례 이후 청소년인권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2019년에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글을 써야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그 ‘이후’를 이야기하고 싶다. 

 

신중휘 간사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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