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이 기자 문화부

장한이 기자

문화부

지난겨울, 『대학신문』에서 방학일정을 보내며 이번 학기에 실릴 기획 기사를 구상했다. 7개의 새로운 기획안을 냈고 4번의 기획 회의를 거치는 동안 다시 기획안을 쓰라는 이야기만 7번을 들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기획안에 들일 힘도 없어져 지쳐가던 중 마침내 통과된 8번째 기획안의 주제가 바로 ‘1920-30년대 경성부민의 여가문화’였다. 최근 경성 스타일의 옷을 입고 경성에 있었을 법한 소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경성 사진관, 롯데월드 개화기 컨셉 등이 인기를 끌었으니 100여 년 전 경성의 문화를 다뤄보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런 생각도 잠시, 이 주제는 내게 무겁게 다가왔다. 기사의 내용에 대해 고민할 즈음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를 봤다. 차마 보기 힘든 고문 장면이 이어졌고 고문에 맞서며 의지를 꺾지 않는 유관순 열사가 보였다. 이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마주하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감히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를 표방했고 이로 인해 상업이 발달했다”며 당시 경성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노라 이야기해도 될까. 너무 쉽고 예쁘게 압축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이 자리 잡았다.

반짝이는 백화점의 조명 뒤에 굶어 죽는 아이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던 시대. 그 시대를 밝게만 조명하는 것 같아 괴로워하는 동안 『경성 탐정 이상』을 쓴 김재희 작가님을 만났다. 인터뷰가 끝나고 어떤 기사를 쓸 예정이냐고 묻는 작가님의 질문에 나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기사를 쓰게 됐으며 암울했던 그 시기를 밝게 다루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고 초면에 고민을 말했다. 감사하게도 작가님은 이 투정을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러고는 “너는 그저 그들이 살았던 삶을 그려낼 뿐”이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제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울한 시대였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은 뒤섞여 살며 서로에게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고. 때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제되기도 하고 계층적 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당시 사람들도 그 삶 속에서 행복과 휴식을 찾아야 했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세뇌하며 글을 끝마쳤다. 기사 ‘모던걸, 모던보이 경성을 즐겨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평소대로라면 완성된 기사를 보고 뿌듯해하며 기사를 쓰기 위해 들였던 노력을 스스로 칭찬했겠지만 이번 기사를 완성하고서는 쉽사리 그럴 수 없었다. 2면을 꽉 채운 첫 기획 기사, 글을 쓰기 위해 뒤적였던 책과 논문과 속기록을 보면서도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다. 이런 기사를 쓰며 죄책감을 덜기 위해 경성부민의 인생을 담았다고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지 시간에 쫓겨 취재수첩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저 거짓을 적지 않기 위해 들인 노력이 마냥 헛된 시간은 아니길, ‘그때 경성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구나’ 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기사가 되기를 감히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