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K리그 시·도민구단, 그 이면을 파헤쳐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활약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문선민 선수(전북 현대 모터스)가 올해 초 ‘인천 유나이티드’의 방만한 운영을 지적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인천 유나이티드를 떠나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에 관해 설명하며 인천 유나이티드의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이에 한국 프로축구리그인 K리그와 K리그 내 시·도민구단의 현황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K리그 내 존재하는 11개의 시·도민구단은 시·도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시·도민구단이 공적인 자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해 연일 논란을 낳고 있다. 이에 더해 K리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도민구단은 오랜 기간 재정난, 성적 부진, 정치 도구화 등과 같은 문제를 지적 받아왔다. 『대학신문』에서는 K리그 내에 존재하는 시·도민구단의 현황과 이들의 문제점을 살펴본 후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시·도민구단, 그 시도는 좋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이후 국내에는 축구 열풍이 불었다. 또한 월드컵 경기를 치르기 위해 만들어진 10곳의 월드컵 경기장을 활용할 방안이 필요해 구단 창단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기업은 구단 창단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시·도민구단의 형태로 새로운 구단이 만들어졌다. 시·도민구단은 시장이나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지자체장)이 구단주가 돼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예산으로 운영하는 구단이다. 현재는 총 11개 시·도민구단(대전 시티즌, 대구 FC, 수원 FC, 인천 유나이티드, 경남 FC, 부천 FC, 강원 FC, 광주 FC, FC 안양, 성남 FC, 안산 그리너스 FC)이 1부 리그인 ‘K리그1’과 2부 리그인 ‘K리그2’에 참가하고 있다. 

이렇게 창단한 시·도민구단은 K리그의 규모가 확대되는 데 이바지 했다. 시·도민구단은 시·도민의 세금으로 구단을 운영하므로 그 세금을 재원으로 해 지자체 차원에서 구단을 창단할 수 있다. 후원을 자처하는 기업이 등장할 때까지 구단을 만들지 못하는 기업 구단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K리그는 한국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가장 많은 팀을 보유한 리그가 됐다. 전용배 교수(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는 “시·도민구단은 시장이나 도지사의 개인적 흥미, 축구인의 일자리 확대와 같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많이 창단될 수 있었다”며 “이에 따라 구단이 늘어나면서 K리그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고 12개 팀으로 구성된 K리그1과 10개 팀이 참가하는 K리그2로 나뉘어 승강제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창단 초기 시·도민구단은 지역 주민의 유대감 형성과 대한민국 축구 발전 측면에 있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됐다. 시·도민구단이 시·도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면 지역민의 소속감을 고취하고 건전한 공동체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준서 교수(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는 “스포츠 행사 개최와 구단 창단은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지역민의 자부심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도민구단이 운영하는 유소년 축구 클럽은 젊은 인재를 육성하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다.

‘미운우리새끼’ 시·도민구단

이와 같은 기대를 받으며 창단한 시·도민구단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시·도민구단은 현재 K리그 부실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정난이다. 시·도민구단은 모기업이 있는 기업구단과 달리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만큼 재정난을 피해갈 수 없다. 국가적인 축구 열풍과 시·도민의 지지를 얻고자 했던 정치적 의도가 맞물렸던 창단 초기에는 비교적 재정적 자원이 풍부했지만 현재 사정은 다르다. 시·도민구단은 대부분 지자체 예산과 지자체장이 유치한 준조세 성격의 스폰서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지자체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어 재정 사정이 불안정하다. 전용배 교수는 “시·도민구단은 세금으로 운영되고 예산을 배정받기 위해서는 시·도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의회에서는 구단의 성적과 흥행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예산을 배정하기 때문에 구단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정난은 소속 선수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광주 FC는 지난 2016년 광주광역시의 지원금과 스폰서 부족으로 재정난을 맞아 선수단 임금체불 문제를 겪었다. 결국에는 구단 대표가 대출을 받아 선수단의 월급을 지급해야 했다. 이처럼 지자체의 지원 여부에 따라 구단 전체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 시·도민구단의 현실이다.

구단의 성적에도 재정적인 상황이 영향을 미친다. 구단이 유료 관중이나 광고 수익 등으로 자금을 확보하려면 좋은 성적을 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시 자금이 필요하다. 자금이 충분히 마련돼 있으면 우수한 선수를 영입할 수 있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구단의 경우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뛰어난 선수를 이적시켜야 하기 때문에 실력이 좋은 선수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전용배 교수는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구단은 몸값이 높은 선수를 영입해 좋은 성적을 내기 유리한 반면 재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시·도민구단은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기 어렵다”며 “성적을 내지 못하면 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만한 수익을 얻기도 힘들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지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시·도민구단의 특성상 정치적인 의도가 구단 운영에 개입하기도 한다. 실제 구단 운영을 축구나 스포츠와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 맡는 경우가 빈번하다. 시장이나 도지사의 정치적 보은으로 구단 사장이 결정됨에 따라 사장 교체가 자주 일어나 제대로 된 행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최준서 교수는 “시·도민구단은 지자체장의 소속 정당이 변화하면 행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구단의 운영이 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전시티즌은 2006년 시민 구단으로 전환된 이후 사장직이 12번이나 바뀌었다. 대전 시장의 정치적 측근이 구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한편 시·도민구단은 시와 도의 예산이 투입되는 구단인 만큼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지만 시민이 구단의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중요 사안에 대한 의사 결정은 시장이나 도지사와 같은 소수의 정치 세력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시민이 구단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제대로 없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시민조합인 ‘소시오’의 투표로 구단 회장이 결정되고 팀 운영의 주요 결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FC바르셀로나’와 같은 해외 시민구단과 달리 K리그의 시·도민구단의 운영에는 시·도민이 참여할 기회가 적다. 전용배 교수는 “현재 시·도민구단은 해외 리그의 구단과 같이 시민이 주주가 되는 주식회사 체제로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시·도민구단이 구단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도민은 자신의 세금이 투입되는 일에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늘진 곳에 햇빛이 드리우길

K리그와 한국 스포츠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시·도민구단이 이런 어려움을 딛고 바로 서야 한다. 우선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민구단의 자체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시·도민구단은 지자체의 예산에 의존하기보다 구단이 재정적 자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대구 FC 김홍범 직원은 “축구전용구장에 마련된 상가 임대를 통해 수입을 창출하거나 경기장 명칭사용권을 판매하는 등 구단 운영을 위한 수익을 직접 창출해내고 있다”며 “시·도민구단은 장기적으로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시민구단의 발전 전략을 설명했다. 실제 대구 FC는 K리그 최초로 새 전용구장의 명칭사용권을 ‘DGB 대구은행’에 판매해 수익을 얻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후원 기업이 없어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탄한 육성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재정적 한계로 어려움을 겪은 시·도민구단 중 높은 성적을 거둔 구단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이번 시즌에는 시·도민구단인 ‘대구 FC’와 ‘경남 FC’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김홍범 직원은 “시·도민구단은 비싼 비용을 지출하면서 좋은 선수를 기용할 재정적 여유가 없다”며 “대구 FC의 경우 어리지만 가능성 있는 선수를 영입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시·도민구단이 선수 발굴과 육성에 힘써야 함을 강조했다. 

지자체의 정치적 입김이 구단의 운영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도민구단이 시민구단과 기업구단이 혼합된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전용배 교수는 “기업이 구단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지자체는 지역의 이름을 구단에 제공해 시·도민구단으로서 구단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라며 “이를 도입하면 시·도민구단이 재정적인 안정을 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도민의 관심과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일석삼조의 효과를 불러오는 대안을 제시했다. 최준서 교수 역시 “정치 상황에 따라 구단 운영이 크게 영향을 받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정치 성향과 구단 운영을 분리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전 교수는 “최근 지자체장의 겸직 금지법이 통과됨에 따라 지자체장이 체육회장을 맡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이는 구단 운영과 지자체장의 정치 성향을 분리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장의 성향과 다른 사람이 체육회장을 맡게 될 경우 지자체의 체육 분야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시·도민구단의 정치 도구화 현상 개선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도민구단의 자체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시·도민이 먼저 관심을 갖고 구단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K리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발표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K리그1 2019의 1, 2라운드 평균 시청률이 지난해보다 2배가량 증가했고 ‘네이버’ 인터넷 중계의 평균 접속자 수 역시 작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K리그에 전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자연스럽게 시·도민구단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면서 재정을 확보하기도 유리해지고, 정계와 구단 간의 유착도 점차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축구는 ‘개인 플레이’가 아닌 ‘팀 플레이’다. 시·도민구단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유명한 선수를 영입하지 못할지라도 선수 한 명 한 명, 그리고 시·도민까지 하나가 돼 강한 조직력과 맞춤형 전술로 승부한다면 기업구단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출 수 있다. K리그의 성장은 한국 축구의 성장과도 직결된다. 스포츠의 발전은 건강한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하나의 원동력이다. 시·도민구단의 활발한 참여와 탄탄한 인프라로 자리 잡은 시·도민구단은 지역을 넘어 한국 축구계를 단단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지역민과 축구계가 함께 나아가는 K리그에서 축구 꿈나무들이 꿈을 펼치고, 시·도민이 웃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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