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

프랑스 계몽주의자 디드로는 1750년에 수학자 달랑베르와 새로운 백과사전을 구상했다. 그는 구체제의 교회, 절대왕정 및 귀족들의 가치를 전복하고 새로운 부르주아 가치관을 반영한 백과사전을 기획했다. 

그는 세상의 지식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그는 72,000개에 달하는 항목을 알파벳 순서로 배열했다. 이전의 사전들은 주제별 배열이 많았지만, 그는 알파벳 배열을 선택했다. 이는 일견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의도된 선택이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지식의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려했던 것이다.

시간을 오늘의 서울대로 돌려보자. 우리 대학에는 순수과 응용, 기초와 전문 직업, 인문과 자연, 기술과 예체능을 다루는 다양한 학문이 존재한다. 그런 다양한 학문을 대표하는 10여 개의 단과대학과 대학원이 모인 곳이 서울대다. 이런 서울대에 학문의 서열과 위계질서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우리 대학의 단과대학들은 정해진 순서가 있다. 아니 몇 개 단과대만 정해진 순서가 있다. 순서가 정해진 단과대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단과대에 우선한다. 한글 홈페이지는 물론 영문 홈페이지에서도 인문, 사회, 자연 대학의 순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머지 단과대학들은 때로는 가나다순으로, 때로는 a, b, c 순으로 배열된다.

디드로가 우리 대학의 기이한 배열 순서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270여 년이 지난 뒤에도 학문에 위계질서가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왜곡된 질서를 수십 년 동안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지나고,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넘보는 포스트휴먼과 4차산업혁명의 시기에도 인문, 사회, 자연의 순서로 대학을 배열한 것에 대해서 의아해 하지 않을까. 

지덕체(智德體)는 언제나 지덕체일 수 없고, 체덕지가 될 수도 있고 덕체지가 될 수도 있다. 애초에 불변의 순서가 있다는 의식부터 우리의 사고를 옥죄고 열린 사고를 방해할 수 있다. 더구나 진리를 추구하고 다양한 사고와 지식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생산되는 대학에서 지식의 질서와 위계는 지양해야 한다. 

다시 디드로로 잠시 돌아가 보면, 그는 칼을 만드는 장인의 아들이었다. 그는 백과사전을 편집하면서 지식 체계에 기술 분야를 추가했다. 예술과 과학이 당대 지식의 핵심이었다면, 기술은 장인들의 숙련된 경험과 손기술로 만들어지는 유용하지만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분야였다. 그는 11권의 『백과전서 도판집』을 통해서 기술을 지식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그것을 기술적 기예(mechanical arts)로 구분했다. 오늘날 공과대학이 이 분야의 후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그는 백과사전의 제목을 과학, 예술,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지식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뿌리와 줄기와 곁가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슐레겔은 지식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했다. 베이컨이나 디드로가 지식을 나무의 줄기와 가지로 비유했다면, 슐레겔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유기체를 상상했다. 

이제 인간이 아닌 인공의 지능이 등장한 21세기다. 대학만이 아니라 지식을 창출하는 공간은 다양해졌다. 지식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고, 위키피디아는 소수 전문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을 대체했다. 한 개인이 만들던 백과사전이 백여 명의 전문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으로 진화했고, 이젠 수십만의 집단지성이 만드는 백과사전으로 대체됐다. 이런 세상에서 지식은 어떤 체계를 갖춰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조직돼야 할까. 과연 인, 사, 자는 모든 학문의 근원이고 출발일 수 있을까. 서울대는 그런 권위와 질서를 대학의 순서를 통해서 구현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머지 단과대학들은 지식의 곁가지일 뿐이며 어떤 식으로 배열돼도 좋은 것일까. 그런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답을 찾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어렴풋이 일제강점기 유일한 4년제 제국대학의 유령이 떠오를 뿐이다. 헛된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단과대학의 순서가 4년제 제국대학과 고만고만한 2년제 전문대학의 결합에서 연유한 것이라면 이제는 바로잡을 때다. 학문의 가치는 과거의 권위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 순서로 표현될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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