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 문화부장
홍지윤 문화부장

프루스트 효과.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는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는 능력이 있다. 

다른 감각보다도 후각이 나를 과거의 깊은 곳까지 데려다준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를 맡고 있던 순간의 풍경과 정서, 그리고 무의식에 내려앉아 있던 것까지 함께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는 비 오는 날 풀이 뿜어내는 특유의 향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해준다. 

초등학교 시절의 비 오는 날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비를 맞으며 그네 타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일수록 선 채로 그네를 탈 때의 기분이 매우 짜릿했다. 다른 친구들도 그 기분이 좋았는지, 비 오는 날이면 항상 그네 자리를 맡기 위한 경쟁이 붙었다. 그네를 빨리 타기 위해서는 담임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우산을 내던지고 달려야 했다. 교실에서 놀이터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은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비 오는 날 풀 향기는 그 시절 나의 천진함과 순수함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세월의 무색함도 느끼게 한다.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초등학생 시절의 비오는 날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을 느끼지만 22살 대학생은 비를 맞으며 그네를 탈 만한 마음의 여유도, 용기도 없다. 지금의 내게 누군가가 비 오는 날에 그네를 타보라고 권하면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할 것이다. “비를 맞으면 옷이 젖어서 다시 갈아입어야한다” “요즘 비는 산성비라 맞으면 안 된다” 또 “다 큰 대학생이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건 좀 아니다”는 등의 핑계 말이다. 

22살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일을 저지르고 보기보다 예방하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먼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위험부담이 커” “이건 너무 부끄러운 걸”과 같은 말이 입버릇처럼 됐다. 이런 입버릇은 자주 나 스스로 나의 한계를 단정짓게 한다. 충분히 도전해봄직한 일도 그냥 넘어가게끔 한다. 더 쉬운 것, 더 빠른 것을 찾기 바쁘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변해버린 나는 어린 시절보다 더 성숙해졌고 내 일에 확실한 책임을 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잃은 것도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됐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게 됐다. 

이런 ‘어른의 태도’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의 태도에는 엄청난 관성이 존재하나 보다. 본래 가지고 있던 도전정신과 용기를 집어삼킬 정도로 말이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 이 관성의 힘을 새삼 느낀다. 진정으로 하고 싶지만, 청사진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 일보다 뾰족히 흥미는 없지만, 남들이 걸어온 안정적인 길로만 자꾸 내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이윽고 내가 무엇을 가장 좋아했고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 잊어버린 채 세상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춰보려 한다.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라도 비 오는 날의 풀 향기를 떠올릴 것이다. “옷이 젖으면 뭐 어때, 집에 가서 갈아입으면 되지” “산성비, 그게 뭐야?”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야성(野性)과 순수성, 그리고 무모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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