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1년 전 나는 이 마로니에 코너에 새 원룸으로 이사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적었다. 요약하면 어버이날도 가까웠던 5월 초 이사할 돈이 없어서 어머니께 손을 벌렸다는 참으로 부끄럽고 별것 없는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그 덕에 나는 지난 1년 동안 전에 살던 방보단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사했던 방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사한 직후에는 방 꾸미기에 열을 올렸다. 방 구석구석 무엇을 채워 넣으면 좋을까 고민하며 틈만 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전제품이나 인테리어 관련 상품들을 찾아봤다. 새로운 물건이 올 때마다 가구 등의 자리 배치도 몇 번을 다시 했는지 모른다. 이사하고 한두 달 정도 방 꾸미기에 공을 들인 후 이 정도면 이제 완벽하다고 생각해 의기양양하게 찍어놓은 방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번 본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어딘가 어수선한 방의 모습이다. 그때의 모습과 비교해 봐도 물건이랑 가구 배치 같은 것들은 거의 비슷한데 대체 왜 이렇게 어수선해졌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다. 답은 뻔히 안다. 그때 비해서 압도적으로 정리정돈이 안 된 것이 방이 어수선해진 가장 큰 원인이다. 처음 방에 이사를 왔을 땐 마치 이등병이 관물대를 정리하듯 방 안의 모든 소품을 제자리에 각 잡아 정리하던 것이 지금은 그냥 방바닥을 청소기로 대충 미는 것으로 방 청소가 모두 끝나버린다. 당연히 책상이나 선반에는 책, 프린트물, 필기구, 대충 벗어 던진 옷, 일회용 젓가락, 치킨 쿠폰, 건조기 섬유유연제 등등의 물건이 쌓이게 됐고 이것이 내 방을 어수선하게 만든 주범인 것이다. 쌓여있는 물건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결국 내가 내 방을 관리하는 데 관심이 없어진 것이 잘못이다. 처음엔 방에 가득 차 있던 새로운 것들은 1년간 살면서 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 돼버렸다.

글을 쓰는 11일 토요일 언론들은 이른바 실세 뒷담화 발언으로 뜨겁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사담 도중 정부 관료들의 복지부동에 대해 발언한 내용이 그대로 녹음돼버린 것이다. 발언의 적절성을 떠나 나는 발언 내용 중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라는 말이 머리에 남았다. 물론 이 말은 관료들을 향한 것이지만 나는 조금 뜨끔했다. 생각해보면 그 난리를 겪은 뒤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며 새 정부 출범을 지켜보던 때가 불과 2년 전이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해 내가 정부 정책이나 정치권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는 하늘과 땅 차이가 돼버렸다. 당시 국정농단 사태로 이 나라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지만, 우리에게는 비어버린 그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문제들은 점점 쌓여갔고 당최 정리가 안 되는 나라 상황을 보며 점점 실망도 함께 쌓여만 갔다. 그렇게 누적되는 문제들에 대해 처음에는 관심도 가져보고 비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방 책상에 쌓인 잡동사니를 보듯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문제는 결국 내 문제라는 것은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다. 지금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한 집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이듯 말이다.

일단 내일 당장 방 정리부터 해야겠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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