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전시 ‘거짓말’을 요목조목 들여다보다

“예술은 거짓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그는 예술은 그림자고 눈속임이며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예술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이다. 화가가 대상을 아무리 똑같이 그렸을지라도 화폭에 담긴 그 어떤 것도 실재는 아니다. 또한 예술가는 과장, 생략 등의 수사법을 통해 사실을 변형하고 왜곡한다. 이와 같은 예술의 허구성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서로 다른 주장의 뒤엉킴 속에서 진실은 알아보기 힘들게 각색된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진실을 가리는 것이 중요해지는 한편, 사람들은 저마다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여긴다. 이런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맞아 서울대 미술관 MoA(151동)에서는 오는 26일(일)까지 전시 ‘거짓말’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거짓이 난무하는 현 세태에 대한 9명의 작가들의 시선과 그것이 반영된 예술 작품을 살펴본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인간의 경험과 믿음, 이성의 작동 방식에 대해 재고하고,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진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일반적인 거짓말과는 달리 예술적 표현에서의 거짓말은 단순히 관객을 속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에 관객이 직접 작품의 어떤 부분에 거짓말이 담겨 있는지 고민하게 함으로써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김범 작가의 ‘변신술’(1997)은 인간이 나무, 바위, 풀, 문, 에어컨, 사다리 등으로 변신할 수 있는 방법을 적어놓은 지침서다. 풀이 되려면 ‘머리를 기르고 온 몸에 발모제를 바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지침은 처음에는 실소를 터뜨리게 하지만 이윽고 이것이 정말 거짓일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실제로 해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지침의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없다. 또한 지침을 따랐지만 변신에 실패하더라도 이것이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완전한 거짓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사고의 연속을 통해 관객은 무엇이 완전한 참이고 거짓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처럼 전시 ‘거짓말’은 관객이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의 지평을 마련한다. 안규철 작가의 ‘상자 속으로 사라진 사람’(1998~2004)은 실물 크기의 상자 오브제와 함께 순간이동 장치의 이용법을 산문과 드로잉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관객은 ‘이것은 거짓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작동 원리에 묘한 신뢰를 느낀다. 더불어 이는 전혀 다른 세계로 훌쩍 떠나고 싶은 호기심과 해방감을 자극한다. 관람객 안주영 씨(25)는 “마치 동화를 읽는 것 같았다”며 “글과 그림을 읽고 난 뒤 상자 안으로 들어가 직접 장치를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러한 충동은 기존의 참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더 나아가 과학으로 대표되는 객관적인 참이 실재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거짓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진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드러나기도 한다. 이준형 작가의 회화 ‘Chapter 11’(2009~2010)은 눈에 보이는 대로만 사물을 해석하려 할 때 생기는 오류에 대해 경고한다. 이 작품은 다이빙 선수가 낙하하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작품을 얼핏 봤을 때 선수는 우아하게 연기 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얼굴은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 있다. 즉 우리는 겉모습만으로는 지금 그가 곤두박질치고 있는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작품의 메시지는 기업의 파산보호신청을 뜻하는 ‘Chapter 11’이라는 제목으로 더욱 강화된다. 관객은 기업의 추락을 의미하는 제목을 통해 이것이 단순한 다이빙의 한 장면이 아니라 아찔한 추락의 순간일 수도 있음을 짐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람객 한서연 씨(지리교육과·18)는 “뜻과 제목을 알고 그림을 보니 처음 봤을 때와 느껴지는 것이 사뭇 다르다”며 “진실을 파악하는데 있어 맥락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감상을 밝혔다.

작가는 첫눈에 이해된 의미가 실상과 다른 경우를 제시해 우리의 사고와 인식의 틀을 의심하게 한다. 더불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잘 살펴야 함을 강조한다.
작가는 첫눈에 이해된 의미가 실상과 다른 경우를 제시해 우리의 사고와 인식의 틀을 의심하게 한다. 더불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잘 살펴야 함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예술 속의 거짓말은 때때로 끝까지 관객을 속이는데 성공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쉽게 탄로 나곤 한다. 하지만 허위성이 밝혀지더라도 작품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거짓이라고 결론짓기 위해서는 반대에 있는 진실을 깨달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된 예술은 그 무엇보다 진실하다. 또한 거짓말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인식 과정을 성찰해 볼 수 있다. 복잡하게 얽힌 진실과 허구를 분리해내려면 높은 집중력과 추리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경험과 믿음에 대한 의심도 필수적이다. 이런 능력과 성찰의 태도는 화려한 수식으로, 권위와 관습의 이름으로 ‘믿음직해’ 보이는 거짓의 난사 속에서 진실을 수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즉, 전시 ‘거짓말’은 참과 거짓이 뒤엉켜 더 이상 진실이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이 시대에도 진실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 삶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진실’을 일깨워준다. 

사진: 윤희주 수습기자 yjfrog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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