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에 즈음해: 제 역할 찾기
퇴임에 즈음해: 제 역할 찾기
  • 대학신문
  • 승인 2019.05.1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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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장학복지과 선임행정관
정용철 장학복지과 선임행정관

올해 6월 말 퇴직을 앞둔 상태에서 『대학신문』 ‘자하연’ 코너에 기고를 제안받았다.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바를 소개한다면 구성원에게 조금이나마 참고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본다. 

나는 1992년에 서울대로 전입해 왔고 첫 근무부서인 학생과에서 6년 이상 근무했다. 학생과에서 근무하기 시작할 때에는 ‘컴맹’이라는 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글 타자를 1분에 500타까지 칠 정도로 연습했다. 당시 내 업무는 온갖 학생 관련 행사를 실시간으로 정리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학내외를 막론하고 가두 투쟁과 교문 앞 투쟁으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할 정도로 학생운동과 노학연대 활동이 치열했다. 정부에서 불허한 범민족대회, 한총련 집회, 노학연대 집회와 같은 대규모 집회는 지리적 여건상 서울대에서 대부분 강행됐다. 그래서 밤샘 근무는 다반사고 며칠 동안 집에 못 간 적도 있다. 심지어 본부점거 때는 마스크와 쇠파이프로 무장한, 정체도 모르는 학생들에 의해 일하다 말고 들려나가기도 했다. 이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기분이 나빴다. 혼란한 정국이 계속됐던 당시, 말단 직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편에 서서 경찰 간부와 협상해 가두 투쟁으로 지치고 다친 지방 학생 수천 명을 무사 귀가시킨 일, 검문을 따돌리고 다친 타교 학생을 심야 응급실로 데려가 사비로 치료해주고 트렁크 가득 빵을 사서 나눠준 일, 평일 밤 학교에 진입해 파업 집회를 열며 노숙하던 수천 명의 공기업 노조원과 담판을 지어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흔적도 없이 철수시킨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돌이켜보면 말단 개인이 어떻게 이런 대처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법인화가 논의되던 시기에는 공무원 노조위원장으로서 교수, 직원, 총학생회와 함께 수많은 학내외 집회와 대국회·대국민 활동으로 거의 매일을 집회현장에 나섰다. 한겨울에 200여 일 동안 본부 앞에서 천막농성과 집회를 했고 급기야는 본부 점거까지도 했다. 그 시기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신의 에너지 소모가 컸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집회에 동참했다. 

이후 행정관 시험에 합격하고 중간관리자로서 자칭 ‘OSOS’(One Step One Okay Service)시스템을 만들어 고객(교수, 학생, 학부모)이 한 번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바로 만족할 수 있도록 직원의 직무역량 향상과 친절서비스 마인드 함양, 그리고 직원 간의 팀워크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2014년에는 ‘직원합창단’을 만들어 정년퇴임식장에서 장기간 근속하고 떠나는 선배들을 위한 합창 공연을 펼쳤다. 당사자와 참석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좋은 반응에 힘입어 올 2월 말에는 교수합창단도 교수 정년퇴임식에서 같은 맥락의 공연을 했다고 한다. 선임행정관 때는 장학복지과장으로서 직원과 함께 전력투구해 국가 장학금이 줄어들었는데도 외부단체 장학금 유치를 확대했고 그 결과 성과 목표치를 넘어섰다. 그 결과 장학복지과가 2019년에 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듯 나는 늘 내 역할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이를 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역할 찾기를 잘 해온 것 같다. 그래서 퇴직을 한 달여 앞둔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법인화된 지가 벌써 7년이 지났다. 제대로 된 논의과정도 없이 날치기로 통과된 법이지만 지금 와서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 모두 똘똘 뭉쳐야 한다.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면서 우리 학교가 목표로 하는 세계적인 대학에 도달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국회를 향해, 국민을 향해, 동문을 향해, 구성원들을 향해, 겨레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서울대가 나서야 한다. 또 곳곳에 서울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을 떠들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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