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빈 기자 (사진부)
손유빈 기자 (사진부)

어릴 때부터 난 역사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영화도 역사 영화, 좋아하는 드라마 장르도 사극이다. 중학생 때 가장 좋아하던 과목 역시 역사였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역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고등학생 때 역사 동아리를 하면서 대전 산내 골령골에 답사를 갔다. 기사에도 썼듯,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그곳은 여러모로 내게 큰 인상을 남겼고, 난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자기소개서를 써서 서양사학과에 입학했다. 골령골에 대한 기억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잊을 수 없어 그곳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획 기사를 쓰게 됐다. 

민간인 학살사건 현장에 다녀오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기도 했고 동굴 안에 직접 들어가보기도 했다. 그런 활동들을 하면서 ‘이 정도면 진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족들과 관계자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이 주제를 감히 다뤄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민간인 학살사건은 이번 학기 기획 기사 주제였지만, 그분들에게 70년간 풀지 못한 한(恨)이자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아주 커다란 문제였다.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유족들과 생존자들의 인터뷰 질문지에 꼭 들어있던 질문이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국가와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 특별법 제정을 원한다고 대답하셨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어깨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 분은 나를 붙잡으시며 “기자님이 국회에 가서 법 좀 통과시켜달라”고 말씀하셨다.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난 그저 대학교 학보사의 2학기 사진기자일 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사를 쓰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께 ‘그럴 수 없다’라 대답할 수가 없어 노력해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난 힘 없는 기자다. 내가 쓰는 기획기사를 몇 명이나 봐줄지 모르겠다. 열 명, 아니 스무 명만 봐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 나는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을 통과시킬 힘도, 민간인 학살사건을 공론화할 힘도 없다.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산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기사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 3개월을 돌아보니 이제야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내가 쓰는 기사는 중요하다. 나는 특별법을 통과시킬 수는 없지만, 이 기사를 씀으로써 적어도 신문사 사람들과 이 신문을 읽을 몇 안 되는 나의 친구들에게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릴 수 있다. 어쩌면 이번 호를 읽을 사람들이 내 기획 기사를 읽고 민간인 학살사건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기억 속 저편으로 잊히고 있는 민간인 학살사건을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이렇게 조금씩 민간인 학살사건을 알린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점점 커지지 않을까. 

나는 감히, 취재원 중 한 분이셨던 노용석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 내 기사가 “지배층에게 억눌려 있던 피지배계층의 기억이 사회 속으로 떠오르는 기억 투쟁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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