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40주년을 맞은 ‘서울연극제’의 현장을 들여다보다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시작돼 ‘서울연극제’로 변화하며 그 명맥을 이어온 서울연극제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4월 27일부터 6월 2일까지 37일 간 대학로 일대에서 열리는 서울연극제는 시민들이 연극을 쉽게 접할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지난 18일(토) 서울연극제에서 진행된 연극, 희곡 읽기, 학술제에 참여해 제40회 서울연극제를 살펴봤다.

다양한 연극으로 풍성해진 서울연극제

서울연극제는 시민들에게 질 좋은 연극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연극제 예술감독과 서울연극협회는 출품된 70여 편의 작품 중 극의 완성도를 고려해 10편의 공연작을 선정했다. 제40회 서울연극제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남명렬 배우(60)는 “과거에는 창작극만 출품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완성도 높은 연극 모두를 출품할 수 있도록 했다”며 “희곡의 완성도와 그 희곡이 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담아냈는지를 중심으로 공연작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평가된 공식선정작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동양예술극장 등 대학로 총 6개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공식선정작을 직접 평가해보고자 하는 관객은 관객평가단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남명렬 예술감독은 “평가단 참여를 신청한 모두를 관객평가단에 임명했다”며 “서울연극협회 측은 관객평가단을 자처한 70여 명의 관객을 위해 연극을 대신 예매해주고 연극을 관람한 관객평가단은 연극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한다”고 설명했다. 관객평가단 최은지 씨(24)는 “참신하고 재밌는 연극을 관람하고 평가할 기회가 주어져서 좋다”며 “오늘 본 ‘대한민국 난투극’도 신선한 연출이 돋보여 즐겁게 관람했다”고 말했다. 관객평가단은 평가서를 작성하고 가장 좋았던 연극에 투표할 권리를 갖게 되며 이 투표를 통해 관객 인기상을 받을 연극이 선정된다. 

이전까지의 서울연극제와 달리 이번 제40회 서울연극제에서는 공식선정작 이외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프린지: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프린지)가 서울연극제의 특별 프로그램으로 편입되면서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도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프린지를 통해 총 19개의 극단이 아카데미 룸, 다목적홀 등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남 감독은 “자체적으로 열렸던 프린지는 서울연극제에 들어오면서 홍보 효과를 얻어 규모를 키울 수 있었고 서울연극제는 프린지 덕분에 다양한 공연을 담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연극을 제공하는 프린지는 관객과 극단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남 감독은 “프린지는 제작비가 부족한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연극을 선보일 수 있도록 돕는다”며 “프린지를 통해 예술가들은 자신의 연극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되고 시민들은 관심 있는 공연을 여러 공간에서 무료로 접할 수 있다”고 프린지의 장점을 설명했다. ‘언필과 지우개’라는 작품으로 프린지에 참가한 극단 ‘공연예술창작소 호밀’의 민광숙 대표(33)는 “의욕 있는 여러 극단이 극장 밖에서 예술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극단끼리 서로의 연극을 보고 피드백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즐겁다”고 말했다.

관객의 목소리로 연극을 채우다

‘시민과 배우가 함께하는 희곡 읽기’ 참가자가 단상에 올라 연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민과 배우가 함께하는 희곡 읽기’ 참가자가 단상에 올라 연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연극을 단순히 관람하는 것에 그쳤던 기존의 관객들은 서울연극제에서 진행한 ‘시민과 배우가 함께 하는 희곡 읽기’ 행사를 통해 연극에 참여하는 능동적 주체가 되기도 했다. 관객들은 배우와 합을 맞춰 희곡을 낭독하며 무대를 꾸며나갔다. 가장 먼저 진행되는 해설자의 장면 해설이 끝나면 배우들이 그 장면에 연기를 곁들여 희곡을 낭독하고 관객은 이를 감상했다. 감상 이후 관객 중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무대에 올라 상대 배우와 함께 그 장면을 자신만의 감정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행사를 위해 ‘좋은희곡읽기모임’에서 재구성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다섯 가지 장면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진 10개의 장면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시민과 배우가 함께 하는 희곡 읽기’는 모든 연령층의 관객에게 열려 있어 그 속에 다양한 연기가 담길 수 있었다.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부터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대학로를 찾은 60세 할머니까지 여러 사람이 희곡에 새로운 목소리를 더했다. 로미오를 따라 자결하는 줄리엣을 연기한 황숙현 씨(60)는 “처음에는 나이 때문에 무대에 나서기 무서웠지만 지난 희곡 읽기 모임에서 60세 로미오가 등장했다는 것을 듣고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어려서부터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을 즐겼지만 배우의 길을 걷진 못했다”며 “사람들 앞에서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배우와 함께 희곡을 읽는 색다른 경험은 희곡의 문턱을 낮추는 한편 연기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전했다. 행사에 참여한 김철수 씨(25)는 “이전까지는 희곡을 접할 기회가 없어 희곡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글에 매료됐다”며 “오늘 당장 희곡을 찾아 읽어 볼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연극인들이 모여 매주 희곡을 읽는 좋은희곡읽기모임의 대표 장용철 배우(53)는 “셰익스피어의 좋은 대사를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어 배포용 대본을 만들었다”며 “눈으로는 대본을 따라가고 귀로는 배우의 대사를 들으며 희곡을 감상할 수 있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객석에 앉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배우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희곡을 읽는 경험, 작품 속 인물이 돼보는 경험, 그 감정을 표현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자 배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춘천교대 연극동아리 ‘극회석우’의 단원인 김지윤 씨(24)에게 희곡 읽기 무대는 배움의 장이었다. 그는 “내가 생각한 희곡에서 강조해야 할 부분과 실제 배우가 강조해서 읽은 부분이 달랐다”며 “배우의 연기 톤과 대본에 접근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말했다.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에게도 이 행사는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시민과 함께 무대를 채워나갔기 때문이다. 로미오 역할을 맡은 이진샘 배우(36)는 “4월부터 준비한 무대였지만 바로 앞에 관객이 있고 극장이 아닌 시끄러운 야외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것은 기존의 무대와 느낌이 달랐다”며 “희곡 자체를 알리는 무대기도 하지만 여러 시민과 함께 만든 무대였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를 되짚어보며 미래를 그리다

한편 18일, 서울연극제 40주년을 맞아 지난 연극제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보는 학술제&토크콘서트 ‘서울연극제, 40년을 돌아보다’가 열렸다. 남 감독은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공이모)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한 학술제의 발제자 세 명이 서울연극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서울연극제는 대한민국 연극 전반을 조망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연극의 대표성을 띤다. 학술제 발제를 맡은 공이모의 백승무 씨(47)는 “대학로를 중심으로 연극이 집중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서울연극제에서 하는 공연을 보면 대한민국 연극의 수준, 동시대인들의 문제 인식, 예술적인 감각 등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창작극만 올렸던 서울연극제는2017년을 기점으로 번역극, 재연극 등 모든 연극에 문을 열면서 대한민국 대표 연극제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 백승무 씨는 “이제 서울연극제에 선정된 작품은 서울에 있는 모든 연극 중 최고 수준을 갖춘 연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술제에서는 서울연극제가 봉착한 고질적인 한계점을 진단하기도 했다. 재정적인 지원이 부족하고 서울연극제가 꾸준한 발전을 하기 위한 토대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남 감독은 “극단이 연극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려면 연극 제작비에 준하는 지원금을 줘야 하지만 현재 지원금은 제작비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라며 “극단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승무 씨는 “연극제는 성공해도 극단은 계속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위협받고 있다”며 “서울연극제가 궁극적으로 발전하려면 대한민국 연극이 풍성해져야 하므로 극단의 미흡한 밑천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남 감독과 의견을 같이했다. 

서울연극제의 구조적 문제도 지적됐다. 백승무 씨는 “서울연극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행사의 한계와 단점을 극복해나가며 노하우와 인프라를 축적해야 하지만 서울연극협회의 회장은 3년마다, 예술감독은 2년마다 바뀐다”며 “이것이 서울연극제가 일관성과 지속성 문제에 부딪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술감독이 서울연극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연극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어야 서울연극제가 발전할 것”이라며 “예술감독의 임기를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연극의 중심지인 대학로에서 펼쳐진 제40회 서울연극제에서는 다양한 연극과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울연극제를 즐기는 사람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관객평가단 최은지 씨는 “연극을 위해 공연장을 찾아가고 연극이라는 문화를 향유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교양 있는 사람들의 특권처럼 느껴진다”며 “시민들이 축제 기간만큼은 연극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서울연극제가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으로 서울연극제가 지난 40년을 바탕으로 연극의 진입장벽을 허물어 많은 사람이 연극을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성장함으로써 대한민국 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사진: 황보진경 사진부장 hbjk030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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