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몫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여행의 몫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 이민주 기자
  • 승인 2019.05.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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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공정 여행사 ‘트래블러스맵’(Traveler’s MAP) 변형석 대표를 만나다

여태까지의 여행 산업은 여행자의 즐거움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최근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으로 폐쇄된 보라카이, 그리고 여러 개의 가방을 메고 맨발로 히말라야를 오르는 포터와 같은 관광 산업의 이면은 여행자가 윤리적 여행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이에 현지에도 여행의 수익을 나눠주는 동시에 여행자에게는 일상적인 현지 체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정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2일(수), 10년 넘게 공정 여행에 대해 고민하는 사회적 기업인 공정 여행사 ‘트래블러스맵’(Traveler’s MAP)의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트래블러스맵’ 변형석 대표는 “어느 나라든 현지 주민은 그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발굴하는 것이 공정 여행사가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트래블러스맵’ 변형석 대표는 “어느 나라든 현지 주민은 그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발굴하는 것이 공정 여행사가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여행’과 ‘공정’이 만나

트래블러스맵은 ‘Travelers Make an Amazing Planet’의 약자다. ‘여행자의 지도’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트래블러스맵은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여행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정 여행의 ‘공정’이라는 단어는 국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던 ‘공정 무역’에서 비롯됐다. 2000년대 초반에도 제3세계 국가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대기업 위주의 기성 패키지여행은 현지 경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공정 여행을 통해 관광객은 마을을 최대한 많이 둘러보고 현지 주민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다.

2008년 한국에서 공정 여행이라는 개념은 기존 여행에 대한 반성적 목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더해져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상당했다. 변형석 대표는 “한국에도 공정 여행 사업이 시장성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래블러스맵을 만들기 전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여행의 교육적 가치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며 “공정 여행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인 여행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트래블러스맵을 만든 계기”라고 덧붙였다.

트래블러스맵의 시작은 특별했다. 현재 트래블러스맵은 여행사 경험을 가진 직원이 대다수다. 그러나 창업 초기에는 영화 제작자나 잡지 편집장과 같이 제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은 여행과 무관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든 기업”이라며 “모두 여행사 경험이 없다 보니 항공권 예매가 제때 되지 않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고 미소지었다.

 

공정 여행이 만드는 사회적 경제

트래블러스맵은 관광객과 사회적 경제 기업을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한다. 이에 공정 여행자는 환경친화적인 숙소나 지역 특산물을 식자재로 사용하는 식당 같은 사회적 기업을 이용하게 된다. 변형석 대표는 “여행사의 역할은 잠을 자는 공간을 직접 만들지 못하더라도 방문객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직접 여행의 모든 일정을 계획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 여행의 취지에 공감하는 현지 여행사가 마을 주민의 의사가 반영된 상품을 제작하고, 트래블러스맵은 이를 채택해 여행 상품 기획에 반영한다. 변 대표는 “현지 여행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최대한 그대로 수용하되 언어적 문제는 조율하고 한국인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선정한다”며 여행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트래블러스맵은 관광지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여행자가 현지를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인 가이드가 아니라 현지인 가이드가 관광객과 동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변 대표는 “지역 청년을 훈련시켜 현지인 가이드로 고용하면 해당 지역의 일자리가 생겨난다”며 “동시에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관광객은 그 나라의 역사나 정체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인의 집에서 머무르는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저소득 청소년의 직업 훈련이 이뤄지는 음식점에 방문하는 것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변 대표는 “이 과정에서 관광객은 마을에서 환대받는 경험을 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를 체험했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공정 여행은 환경에 대한 고려도 빼놓지 않는다. 여행 중 이동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이에 공정 여행은 한 국가에서 오래 머무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트래블러스맵은 관광객이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해 별도로 이동할 필요가 없도록 시내 중심에 있는 숙소나 에너지 자립률이 높은 숙소를 선정한다. 변 대표는 “현지를 훼손하거나 쓰레기를 남기는 것과 같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트래블러스맵, 윤리적 여행을 만들기 위해서

공정 여행은 국내에서도 이뤄진다. 부산의 감천 문화 마을이나 통영의 동피랑 마을이 대표적인 국내 공정 여행지다.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이 직접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거나 식당을 차리는 등의 도시 재생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변형석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정 여행지로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해외를 떠올리지만 국내에도 이에 못지않게 잘 개발된 공정 여행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여행에 익숙한 관광객은 새로운 형태의 여행을 낯설어하기도 한다. 공정 여행 과정에서 관광객은 전용 차량이 아닌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변 대표는 “이동 수단에 불편함을 토로하던 이들도 결국 공정 여행에 매력을 느껴 이동 과정까지 즐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존 여행 상품의 가격에 익숙한 이들은 공정 여행 상품의 가격이 일반 패키지여행보다 훨씬 비싸다고 느낄 수 있다. 변 대표는 “공정 여행사는 옵션과 쇼핑, 팁을 여행 상품에 포함하지 않는 3무(無) 원칙을 따른다”며 “이 원칙을 지키다 보면 가격 차이는 발생하지만, 공정 여행을 경험한 소비자는 대부분 이 가격이 공정 여행에 걸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지역에는 최선의 기여, 환경에는 최소의 영향,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기회를 목표로 한다. 변 씨는 “셋 중에서도 여행자에게 최고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정 여행의 모범이 되는 교본을 만들고 소비자들의 윤리적 판단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트래블러스맵은 여행 산업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빈곤, 실업,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공정 여행은 관광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동시에 관광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앞으로도 트래블러스맵이 여행 여정의 곳곳에서 발생하는 소비자의 윤리적 판단을 도와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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