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증언집, 『녹두서점의 오월』

최근 미디어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발언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발언은 민주화의 수혜를 받으며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아직까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한다. 5·18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진실을 밝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계속돼야 한다. 『녹두서점의 오월』에 묘사된 민주화운동에 대한 한 가족의 증언은 그런 의미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녹두서점의 오월』에는 광주에 위치했던 헌책방 녹두서점의 주인인 김상윤, 그의 아내 정현애, 김상윤의 남동생 김상집이 5·18 민주화운동을 겪으며 극한의 상황에서 느꼈던 인간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낮에 이곳저곳에서 ̒총 맞았다! 총 맞았다!̓ 하는 소리가 금남로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고 김상윤은 증언한다. 옆 사람이 계엄군의 발포에 쓰러질 때 주인공들이 느꼈던 절박감과 공포로 그들의 5·18은 시작됐다. 자신들을 진압하기 위해 서 있는 군인들 사이에서 옛 친구를 발견한 순간 김상윤과 김상집은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함과 씁쓸함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군인들의 무자비한 살육에 맞서 무력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끝까지 싸울 수 있습니까?”라는 윤상원의 질문에 한 목소리로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이들이 보여준 유대감과 긴장감은 당시 긴박했던 5·18 민주화운동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상윤, 김상집과 같이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었고 ‘폭도’나 ‘극렬분자’가 아니었다. 단지 자국 군인들의 무차별적 발포에 쓰러지는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자 맞서 싸우며, 필사적으로 서로를 살리려 했던 따뜻한 인간애의 소유자들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돼야만 했다.

녹두서점은 ‘서점’이라는 공간적 특성 덕분에 5·18 민주화운동의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거점으로 알려진 전남도청은 공적 공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기 어려웠다. 그러나 무너지고 불타 없어지기 쉬운 취약한 공간이었음에도 녹두서점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4년 동안 시민군의 회의실이자 상황실, 피난소로 활용됐다. 녹두서점의 주인 김상윤은 “서점에 드나드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서점’이라는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시민들의 말과 말이 쉽게 전해지고 다양한 서적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은 죽을 수 있지만 말은 쉽게 죽지 않는다. 말은 입에서 입을 통해서 옮겨가고 입을 통해서 생명력을 얻어 살아간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솔직한 증언을 통해 말과 표현의 힘을 보여준다. 이런 기록이 살아있는 한 누군가는 5·18 민주화운동을 올바르게 기억해줄 것이고, 언젠가는 이런 말들이 더 큰 힘이 돼 다가올 또 다른 고난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5·18에 대한 왜곡이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녹두서점의 오월』이 가지는 가치는 특별하다. 5·18 민주화운동을 정치적 목적에서 서술하지 않았으며, 사건 당사자의 1인칭 구술 증언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묘사하거나 운동 자체를 평면적인 사건으로 규정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이 느꼈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생생히 기록한다. 이와 더불어 『녹두서점의 오월』에는 김상윤, 정현애, 김상집 세 명의 저자 외에도 김관현, 윤상원, 김영철과 같이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일반 시민들의 이름이 작품 전반에 빈번히 등장한다. 기존의 학교 교육에서 이처럼 현장감 있는 기록을 만나기 어렵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기억해야할 이름들을 담담히 기록하며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칼과 폭력은 우리 역사 속에 언제나 존재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국민들은 촛불로 권력에 맞섰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독재와 같은 폭력, 비리, 범죄에 맞서는 말과 기록은 살아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 기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도 5·18 민주화운동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5월 18일의 숨겨진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자명한 우리의 역사며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아픔이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현대 독자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의 숨겨진 목소리를 들려주며 새롭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이들을 위해 과거를 사실 그대로 보존하고, 이를 온전히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한다. 『녹두서점의 오월』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의의를 되새기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녹두서점의 오월

김상윤, 정현애, 김상집

352쪽

16,000원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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