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로 드러난 블랙홀
그림자로 드러난 블랙홀
  • 대학신문
  • 승인 2019.05.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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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사진으로 포착된 블랙홀 그림자의 베일을 벗기다

아인슈타인도 부정했다는 블랙홀은 실제로 우주에 존재할까? 지난 2019년 4월 10일, 6개국에서 동시에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블랙홀 그림자를 최초로 확인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흔들었다.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블랙홀 주변을 담은 사진이 공개됐다. 블랙홀 그림자로 불리는 검은 원반과 그 바깥쪽으로 밝게 빛나는 고리 형태를 드러낸 영상이었다. 전 세계 약 100개 연구기관에 소속된 2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동참한 ‘사건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의 성공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미 작년부터 천문학자들 사이에 블랙홀 그림자 관측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돌았지만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됐던 블랙홀 그림자가 이날 공개돼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 세계 언론들이 앞다퉈 블랙홀 그림자 소식을 전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블랙홀 그림자. M87 은하 중심 거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가 검은 원반처럼 보인다. 블랙홀에 의해 빛이 포획된 영역이다. 블랙홀 그림자 바깥쪽에 보이는 광자 고리(photone ring)는 전파로 관측됐으며 강착원반 혹은 제트가 내는 빛이 블랙홀 주변의 중력장과 도플러 빔 효과에 의해 비대칭적인 고리 형태를 드러낸다.
블랙홀 그림자. M87 은하 중심 거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가 검은 원반처럼 보인다. 블랙홀에 의해 빛이 포획된 영역이다. 블랙홀 그림자 바깥쪽에 보이는 광자 고리(photone ring)는 전파로 관측됐으며 강착원반 혹은 제트가 내는 빛이 블랙홀 주변의 중력장과 도플러 빔 효과에 의해 비대칭적인 고리 형태를 드러낸다.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존재한다=은하들의 중심에 거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은하 중심에서 운동하는 별이나 가스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보이지는 않지만 강한 중력으로 별과 가스를 빠르게 회전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바로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역학적 증거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다. 중력을 측정해 보니 4백만 태양질량이 필요했다. 태양계 정도의 작은 공간에 태양 4백만 개를 모아둔 셈이랄까. 빛을 내지 않는 별들을 4백만 개 묶어 두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불안정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별들은 흩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은하 중심뿐만이 아니었다. M87 은하를 포함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은하들의 중심에서도 블랙홀의 증거가 발견됐다. 거대질량 블랙홀이라 불리는 이 블랙홀들의 질량은 태양질량의 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 사이에 분포한다. 2011년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M87 은하 중심의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질량의 62억 배로 측정됐다. 

블랙홀의 사건지평선을 직접 검증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사건지평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블랙홀 주변에서 상대성이론이 적용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첫 번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가장 적합한 후보는 처녀자리 은하단에 위치해 있는 메시야 카탈로그의 87번째 은하, 줄여서 M87이라고 불리는 거대 타원 은하의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질량 블랙홀이었다.

블랙홀 그림자를 확인하겠다는 목표로 ‘사건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가 2009년에 시작됐다. 여러 대륙에 퍼져있는 관측시설을 동시에 사용해서 지구 크기 망원경과 같은 효과를 만든다. 대략 20 마이크로 각초(50만 분의 1각초)를 구별하는 분해능*을 갖는다. 파리의 어느 카페에 놓여있는 신문을 뉴욕에 있는 사람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해능이다.

블랙홀 사건지평선과 블랙홀 그림자. 빛이 블랙홀에 포획되는 광자 포획 반지름은 사건지평선 반지름의 2.6배다. 이 반지름 안쪽은 빛이 블랙홀에 흡수되기 때문에 블랙홀 그림자를 만든다. 블랙홀 주변을 도는 가스는 강착원반을 형성하며 사건지평선 반지름의 3배 거리까지 안정된 원 궤도로 운동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강착원반의 최소 반지름이 결정된다.
블랙홀 사건지평선과 블랙홀 그림자. 빛이 블랙홀에 포획되는 광자 포획 반지름은 사건지평선 반지름의 2.6배다. 이 반지름 안쪽은 빛이 블랙홀에 흡수되기 때문에 블랙홀 그림자를 만든다. 블랙홀 주변을 도는 가스는 강착원반을 형성하며 사건지평선 반지름의 3배 거리까지 안정된 원 궤도로 운동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강착원반의 최소 반지름이 결정된다.

 

◇블랙홀 그림자는 왜 생길까?=블랙홀은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가면 블랙홀이 당기는 중력은 더 강해진다. 블랙홀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는 반지름을 사건지평선이라고 한다. 탈출속도가 광속보다 커지는 지점이다. 광속보다 빠르게 운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건지평선 안쪽에선 빛조차 나올 수 없다.

사건지평선 반지름은 얼마나 클까? 태양을 블랙홀로 만들면 사건지평선의 반지름은 3킬로미터다. 블랙홀 질량이 커지면 사건지평선의 크기도 비례해서 커진다. M87 블랙홀이 태양질량의 66억 배라면 사건지평선 반지름은 약 200억 킬로미터가 된다. 이는 우리 태양계 전체를 포함할 만큼 거대한 크기다.

블랙홀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블랙홀 주변에 빛을 내는 대상이 있다면 어떨까? 블랙홀은 그 빛을 포획해서 그림자를 만든다. M87 블랙홀의 그림자는 블랙홀 근처에서 나오는 빛을 가려서 만들어진 현상이다. 블랙홀의 중력은 거리가 멀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 내의 빛은 모두 블랙홀에 포획되고 블랙홀의 그림자는 검은 원반 형태로 관측된다. 블랙홀 주변에 빛을 내는 강착원반이나 제트가 있을 때 블랙홀이 그 빛을 사로잡아 만들어내는 둥근 모양이 바로 블랙홀 그림자다. 블랙홀 그림자 바깥쪽에서는 밝은 영역이 고리 형태로 나타난다. 빛이 블랙홀의 중력을 벗어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밝게 빛난다. 그래서 밝은 고리가 검은 원형의 그림자를 둘러싼 형태로 관측되는 것이다.

블랙홀로 유입되는 가스는 블랙홀 주변을 빠르게 회전한다. 사건지평선을 넘어서 블랙홀로 흡수되기 전에 빠르게 운동하는 가스는 고온으로 가열돼 강렬한 빛을 방출한다. 원반 형태로 회전하면서 블랙홀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강착원반(accretion disk)이라고 부른다. 가스는 사건지평선 반지름의 3배 거리까지는 안정된 원 궤도로 회전할 수 있다. 그래서 강착원반의 최소 반지름은 사건지평선 반지름의 3배다. 그보다 더 블랙홀에 가까이 가면 블랙홀이 강착원반을 삼키고 만다.

질량이 없는 빛은 조금 더 안쪽에서 안정된 궤도를 형성한다. 사건지평선 반지름보다 2.6배 큰 거리에서 빛의 고리가 만들어지며 이를 광자 포획 반지름(photon capture radius)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그보다 더 안쪽으로 가면 블랙홀에 먹히고 만다. 엄밀히 말하면 사건지평선까지 가지 않더라도 빛이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는 광자 포획 반지름이 결정한다. 빛 알갱이인 광자들은 블랙홀 주변의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움직이며 최소한 사건지평선 반지름보다 2.6배 멀리 있어야 블랙홀에 포획되지 않고 탈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M87 블랙홀의 그림자는 얼마나 클까? 광자 포획 반지름을 계산하면 물리적인 크기로는 수백억 킬로미터가 넘는다. 하지만 5,500만 광년이나 떨어진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매우 작게 보인다. 62억 태양질량을 갖는 블랙홀의 그림자 크기를 각도로 계산하면 약 40 마이크로 각초가 된다.(약 25만 분의 1각초라는 뜻이다.) 이렇게 작은 크기의 블랙홀 그림자를 지구에서 확인하려면 뛰어난 분해능이 필요하다. M87 블랙홀 그림자를 직접 촬영하기 위해서는 지구 크기의 거대한 망원경이 필요한 이유다.

M87 블랙홀 그림자 관측은 2017년 4월에 수행됐다. 측정된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는 42 마이크로 각초였다.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는 사건지평선 반지름의 2.6배기 때문에 사건지평선 반지름을 계산해서 블랙홀 질량을 추정할 수 있다. M87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로 보고됐다. 이 결과는 이미 2011년에 별의 운동으로 측정한 블랙홀 질량과 오차범위 내에서 일치한다.

블랙홀 그림자를 둘러싼 고리는 아래쪽이 밝고 위쪽이 어둡다. 그 이유는 도플러 빔 효과(Doppler beaming effect)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강착원반에서 가스가 회전하면서 빛을 낸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가스는 도플러 효과를 받아서 더 밝게 보이고, 반대로 멀어지는 가스는 약하게 보인다. 고리의 아래쪽이 밝다는 사실은 고리 아래쪽의 가스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고, 반면에 고리 위쪽의 가스는 멀어지는 방향으로 운동한다는 뜻이다.

회전하는 원반이 우리가 보는 시선 방향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효과가 발생한다. 마치 피자가 벽에 붙어 있듯이 원반이 시선 방향에서 수직으로 놓여있다면 도플러 빔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고리 왼쪽이 살짝 들려서 우리 쪽에 가깝고 반대로 오른쪽은 살짝 더 먼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렇게 기울어진 원반에서 가스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한다면 고리의 아래쪽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운동을 하고 위쪽은 멀어지는 방향으로 운동을 한다. 가스가 회전하는 속도가 광속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높기 때문에 원반이 조금만 기울어져 있어도 도플러 효과가 강하게 작용한다. 가까이 다가오는 가스가 더 밝게 보이기 때문에 아래쪽은 밝게 위쪽은 어둡게 관측된다.

이번 연구결과는 직접 볼 수 없는 블랙홀의 존재를 그림자를 통해 드러냈다. 특별한 조건을 갖는 블랙홀 주변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적용된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블랙홀 그림자를 직접 목격했다는 감격스러운 성취가 고무적이다. 물론 여전히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블랙홀이 어떻게 회전하고 있는지, 광자 고리의 빛의 특성은 무엇인지,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로 찍은 블랙홀 그림자의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아직 풀어내야 할 비밀은 많다.

*분해능: 망원경의 상이 얼마나 명확하고 뚜렷하게 보이는가를 나타내는 척도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

이 글은 6월 출간 예정인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에서 일부 인용·편집했습니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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