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과 박소정 교수
경영학과 박소정 교수

 

디지털 기술은 지난 수십 년 간 인간의 삶 속에 깊게 침투해 생산하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 그리고 계약하는 방식까지 모두 변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유독 피해왔던 것이 금융산업이었다. 금융산업은 금융위기 등에서 경험했듯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고, 규제에 의해 움직이며 즉각적인 상품의 교환이 아닌 미래에 발생할 현금 흐름에 관한 신뢰의 계약이기에 다른 산업에 비해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로보틱스, 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과 자원들이 폭발적으로 더해지면서 인간이 생활하고 거래하는 방식이 한 단계 또 새로운 도약을 하려는 시점에 드디어 금융산업에도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장의 성숙으로 발전 동력이 상실됐던 것 같은 금융산업에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은행이 아닌 토스와 카카오를 통해 계좌이체를 하고, P2P 대출업체들을 통한 대출과 투자가 이뤄진다. 거대한 매장에서 사람을 끌어모아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전자상거래로의 이동이 생겼을 때, 반즈앤노블, 베스트바이, 토이즈알어스는 경쟁력을 순간적으로 상실했다. 이처럼 은행 지점과 보험설계사를 통한 거래의 장이 필요 없어지고 위험 평가의 근거와 방식이 달라질 때 기존의 금융사들에게 경쟁우위를 가져다주던 자산들은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완전한 타인이라 여겼던 IT 기업이 디지털 거래에 있어서의 경쟁우위를 가지고 순식간에 경쟁자로 시장에 진입한다. 구글, 알리바바, 아마존이 보험을 비롯한 각종 금융업에 직간접적으로 진출하고 알리바바의 앤트 파이낸셜은 순식간에 세계 top 10 은행이 됐다. 

핀테크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필자는 요즘 “그래서, 변화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생산하기 어렵던 시절 기업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 비용을 낮추며, 생산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생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기술의 발달은 그런 것들을 성숙의 단계로 이끌었으며, 이제 거래의 다른 반쪽, 소비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쉽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시대,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생산된 것들은 경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올지 말지, 태워줄지 말지 모르는 택시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에서만 불편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는 은행이 문을 닫는 4시 전에만 금융거래를 하는 것에 불편을 느낀다. 읽을 생각도 하기 어려운 금융 상품 약관을 설명의 의무라며 아주 빠르게 읽어 내려간 후 들었음을 여기저기 사인을 할 때면 이것은 누구를 위한 설명이고 누구를 위한 서명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 그러면 10년 뒤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라는 질문에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그럼 변하지 않을 것이 뭐가 있을까요?” 빌게이츠는 “뱅킹은 필요하나 은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banking is necessary but banks are not)”라고 했다던가. 아마도 변화하지 않을 것은 한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돈을 옮기고자 하는 것, 자금이 필요한 자와 남는 자가 있을 것이라는 것, 인간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 그 위험을 싫어하는 것, 공유를 통하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 방식은 소비하는 사람의 불편을 없애는 방식으로 완전히 변화해갈 것이다. 큰 변화이기에 큰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겠으나, 현명하게 달라지지 않으면 틀 밖에서 전혀 다르게 사고하는 자들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무엇을 하면 될지 궁금한 자, 사용자의 입장에서 단순하게 어떤 상품과 어떤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는가를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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