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현 편집장
박태현 편집장

 

친구가 하나 있었다. 고1까지만 해도 여느 건강한 남자아이였다. 아니 태권도 수업 시간에 대표로 나설 만큼 운동능력이 뛰어난 축이었다. 하지만 고2로 넘어가는 겨울에 희귀병이 발병하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됐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대학병원에 드나들었으며 너무 아파서 주저앉아 우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나중에 대학 입학하고 나서 그를 다시 만났는데, 그때 들었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말. 내가 아파봐서 아는데 실제로 그러기 쉽지 않아.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해도”

내 마음은 내가 아닌 사람은 알 수 없다. 네 행복과 불행에 감응해 떠오른 감정은 실제 네 마음의 티끌조차도 담지 못하는, 사건을 오롯이 자신에 비춰 걸러낸 불순물일 뿐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도 비극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난 네 편이야. 힘내’라며 불편함을 털어내기 위한 어색한 수사를 던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피해 농담과 웃음으로 채워진 삶을 살아간다. 실제로 공감(共感)이란 건 없다.

입학하자마자 입사해 대학 생활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대학신문』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딱 이랬다. 편집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부장들, 기자들 멘탈을 관리하는 것인지라 힘들어하는 기자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해결방안을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저 그들이 정상적으로 자기 일을 수행해 업무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그들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그저 문제를 해결하려고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한 거야”처럼 텅 빈 말들만 쏟아내기 바빴다.

아마 다른 누구보다 내가 제일 힘들다는 편협한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편집장이라는 자리를 맡으면서 책임져야할 궂은 일이 많았고 힘들어도 내색하거나 털어놓을 곳이 없는 상황에 지쳐갔다. 남을 들여다보기에는 나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는 것도 벅찼다. 신문사 기자로서 마지막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러 갔던 날도 그랬다. 강남에서 6시 반에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학보사 편집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연세대로 가야만 했다. 동행한 사진기자님을 챙길 여유도 없이 곧바로 역으로 뛰어가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 칸에 몸을 욱여넣고 ‘진짜 너무 힘들다’ ‘빨리 그만두고 싶다’만 뇌까렸었다. 그 사진기자님이 세상을 등진 것은 바로 이틀 뒤였다.

토요일에 출근하는 버스에서 소식을 듣고 곧바로 장례식장에 갔다. 유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를 지키다 주간 선생님 차를 타고 신문사로 돌아왔다. 사진기자님께서 인터뷰 사진을 데이터베이스에 올려놓지 않으셔서 인터뷰이에게 전화해 기사에 실을 수 있는 사진을 받아볼 수 있는지 물어야 했다. 다행히 사진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마저 다음 주 신문 발행 준비를 했다. 나는 그날을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이후로 여러 날이 지났지만, 취재를 하러 같이 갔었을 때 요즘 힘든 일은 없는지, 걱정거리가 있으면 언제든 털어놓아도 된다든지 등의 말을 했었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그저 의례적인 위선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학기 내내 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늦게나마 이렇게 잘못을 뉘우치며 진심을 전하는 글을 남긴다. 여전히 기자님의 마지막 맥박이 뛰던 순간의 그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신문사의 일원으로서 함께 빛나셨던 사진부 신하정 기자님께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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