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2일 아직 미비준 상태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4개 중 3개에 대한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1991년 ILO에, 1996년 OECD에 가입하며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차별금지와 아동노동금지 등에 관한 4개 협약만을 비준하고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강제노동 금지 등에 관한 4개 협약은 비준을 미뤄 왔다. 이번에 정부가 국내외의 지속된 요구를 의식해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향후 비준 절차는 수월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자측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가 우려를 표하고 나섰으며, 일부 야당이 노동계의 요구에 떠밀린 성급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와 일부 야당 및 언론은 이번 결정이 일방적인 ‘노조 편들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핵심협약의 본질은 그렇지 않다. 핵심협약은 ILO가 회원국에 의무사항으로 지정한 기본적인 노동권 보호 법제 8개를 일컫는다. 현재 총 143개국이 8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했고, 16개국이 7개 협약을, 11개국이 6개 협약을 비준했지만, 한국은 중국, 오만과 함께 4개 협약만을 비준한 상태이다. 핵심협약의 내용을 살펴봐도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사회 일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관련 2개 협약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파업권 보호 및 관련된 국가의 보장 의무를 담은 원칙적인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비준은 우리 헌법이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것을 재확인하고, 지금껏 이러한 헌법적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현실의 교정을 촉구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경총 등 반대측에서는 이번 비준의 반대급부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을 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핵심협약의 근본 취지를 무너뜨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대체근로는 파업 중 사용자가 조업 재개를 위해 다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사실상 단체행동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공익위원 역시 다수의견으로 이와 같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단체행동권을 보호하는 내용의 핵심협약을 도입하면서 도리어 이를 무력화하는 입법을 시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한편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자의 노동 3권을 침해하는 사용자의 행위를 이르는데, 경영계는 이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형사조치를 규정하는 현행법이 지나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측이 노동자들의 쟁의에 업무방해 등의 명목으로 민형사상 고소·제소를 남용해 손쉽게 대응하고, 부당노동행위의 관행이 여전히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또한 핵심협약의 근본정신에 반하는 요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산업구조 속에서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비준 절차는 우리가 국제적으로 이미 약속한 바 있고 헌법적으로도 보장된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를 재천명하는 의미가 크다. 핵심협약의 비준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협약의 근본적인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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