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집회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 사건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대학가는 끝없이 터져 나온 만행에 경악했고 사건이 ‘제 식구 감싸기’로 종결되는 데 분노했다. 더는 부정을 참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난 7일(일) 대학생 700명(주최 측 추산)이 거리에 모였다. 그들은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길을 행진하며 국회와 교육부가 제도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 △가해 교수 징계위원회에 학생 참가를 의무화하고 △가해 교수 징계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대학 내 인권센터가 내실화돼야 한다는 주장을 학생들은 불볕 아래서 외쳐야만 했다.  

국회의사당 맞은편에서 집회가 진행됐다.
국회의사당 맞은편에서 집회가 진행됐다.

 

◇안중에 피해자는 없었다=연사들은 가해 교수를 징계하는 과정이 상식을 벗어났다고 성토했다. 가해자의 동료일지 모르는 교수를 징계위원으로 선임하고 징계위원회의 구성과 징계 과정이 비밀에 부쳐지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피해자조차 징계 결과의 사유 혹은 징계 절차를 알지 못한다. 성신여대 김정윤 부총학생회장은 “징계위원회에 학생 없이 교수가 참여하는 것 또한 교수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는 모습”이라며 “체계적 기준 없이 높은 직위의 남자 교수를 선임하다 보니 책임감과 윤리 의식이 결여됐다”라고 꼬집었다. 한국교원대 이은지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한국교원대의 사례를 들어 “피해 당사자도 알지 못하는 가해자 징계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했어야 할 인권센터는 제 기능을 못 했다. 전문성이 떨어져 피해자가 2차 가해를 겪어야 했고, 심지어 인권센터 혹은 성평등센터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선유민 총학생회장이 자교의 문제를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인권센터가 본부 산하에 설치돼 독립성의 의심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동덕여대 문아영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장’은 “왜 대학이 인권센터를 설립하지 못하는지, 인권센터가 있어도 피해 학생이 인권센터가 아닌 페미니즘 동아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지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도도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고발 이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원인으로 집회는 제도의 허점을 가리켰다. 성신여대 전다현 총학생회 교육국장은 교원징계위원회의 구성을 규정하는 사립학교법 제62조에 관해 “징계위원회 구성원으로 교원, 총장, 법조 경력자, 공무 경력자, 교육학·행정학·법학 교수 등 수많은 이들이 언급되는데 어디에도 학생은 없다”라며 “이러고도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분한 심정을 드러냈다. 동덕여대 박주현 총학생회장은 교육부가 올해 초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한 징계 가능 시효를 늘리고 성 관련 비위에 대한 징계위원회의 운영 기한을 30일로 정하는 등 성과가 일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징계위원회에 학생이 참가하지 못해 피해자와 학생의 입장이 묵살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논했다.  

◇우리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학생들은 가해 교수의 연구실을 점거하거나 장외로 나서는 방법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은지 비상대책위원장은 “학생이 문제 해결을 요구할 때 학교는 상위법을 운운했고 국가는 책임을 회피했다”라며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학생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명을 하고 단식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서울대학교 A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A특위)의 연구실 점거에 서어서문학과 교수진이 비판한 것을 두고 공명반 신귀혜 학생회장(국사학과·17)은 “누군가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칙을 논하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라며 학생들은 불가피하게 점거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집회는 학생이 점거나 장외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학교 당국과 국회가 학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요구했다.

집회 이후의 계획을 묻자 김정윤 부총학생회장은 “개별 학교에서 진행되는 징계 절차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주시하겠다”라고 답했고 A특위 윤민정 공동대표(정치외교학부·15)는 “집회를 통해 얻은 언론과 사회의 관심을 바탕으로 국회와 교육부에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겠다”라고 밝혔다. 숙명여대 황지수 총학생회장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으로부터 해결 방향을 함께 의논하자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변화와 노력이 대학에 뿌리내린 부조리의 근간을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길을 행진했다.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길을 행진하고 있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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