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서(철학과 학사졸업)
“한국 대학은 입학하기가 어렵지 졸업은 쉽다”라는 망언(?)을 순진하게 믿어버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새내기였던 저는 ‘일단 입학은 했으니 어떻게든 졸업은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결국 그 ‘어떻게든’의 시간과 방법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는 건 금방 밝혀졌습니다. 이십 대 초반의 몇 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행운과 주변 사람들의 지원이 필요하던지요!
저도 이제는 서울살이를 한 지 4년이 넘어갑니다만, ‘서울에서 혼자 살기’와 ‘대학 생활’과 ‘어른의 삶’을 동시에 시작하는 것은 꽤나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독한 길치인 제가 서울의 복잡한 버스와 지하철 체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지도 앱이 알려주는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발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디 가서 촌티 내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지만, 한밤중에도 번쩍거리는 거리에 놀라고, “10시면 잘 시간인데도 아이스크림 가게가 열었어요?”라고 묻던 어린 날의 어리둥절함을 아직 생생하게 지니고 있던 제게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어리바리한 친구를 녹두에, 낙성대에, 한강에, 이태원에, 북촌 한옥마을에, 강남에 데리고 다녀 준 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부모님이 차려 주신 밥이나, 급식실 어머님이 챙겨 주시는 밥만 먹고 살다가 혼자서 뭘 해 먹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달은 야심 차게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한때는 아예 냉장고 전원을 뽑아 놓고 산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에 경악하고 저를 구박하면서도 녹두의 높은 계단을 함께 오르내리며 반찬이며 간식을 챙겨준 친구들에게는 정말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인문대 신양관 앞의 옆으로 긴 플라타너스 줄기, 자하연의 오리, 학교 곳곳의 고양이들, 셔틀 탑승장의 등꽃에는 또 얼마나 위로를 많이 받았던지요.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새벽, 자하연에 비친 아른아른한 불빛과 ‘걷고 싶은 길’에서 풍겨 나오는 달큰한 꽃냄새, 언제 봐도 꺼지지 않는 도서관 불빛에 씩씩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학교가 산이라며 불평도 많이 했지만, 힘겹게 올라간 오르막에서 뒤돌면 펼쳐지는 탁 트인 하늘과 노을에는 정을 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며, 제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됐다면, 공부가 어렵고, 연구가 힘들다며 징징거리는 학생을 성심성의껏 상담, 지도해주신 지성미와 인간미 넘치시는 선생님들, 대학 생활의 보람과 재미를 책임져 준 동아리 선후배 동기 여러분, 우연한 만남이 제게는 더없는 행운으로 밝혀진 수많은 인연들 덕분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큰딸을 믿고 아끼고 지원해주신 부모님, 가족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습니다.
누가 물어볼 때면 자기는 아니라며 발뺌하지만 서울대에서의 치열한 삶을 살아 나갈 여러분, 응원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 나가는 방법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