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감사의 글
[교문을 나서며] 감사의 글
  • 대학신문
  • 승인 2019.08.2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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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서(철학과 학사졸업)
천영서철학과 학사졸업
천영서
철학과 학사졸업

“한국 대학은 입학하기가 어렵지 졸업은 쉽다”라는 망언(?)을 순진하게 믿어버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새내기였던 저는 ‘일단 입학은 했으니 어떻게든 졸업은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결국 그 ‘어떻게든’의 시간과 방법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는 건 금방 밝혀졌습니다. 이십 대 초반의 몇 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행운과 주변 사람들의 지원이 필요하던지요!

저도 이제는 서울살이를 한 지 4년이 넘어갑니다만, ‘서울에서 혼자 살기’와 ‘대학 생활’과 ‘어른의 삶’을 동시에 시작하는 것은 꽤나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독한 길치인 제가 서울의 복잡한 버스와 지하철 체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지도 앱이 알려주는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발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디 가서 촌티 내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지만, 한밤중에도 번쩍거리는 거리에 놀라고, “10시면 잘 시간인데도 아이스크림 가게가 열었어요?”라고 묻던 어린 날의 어리둥절함을 아직 생생하게 지니고 있던 제게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어리바리한 친구를 녹두에, 낙성대에, 한강에, 이태원에, 북촌 한옥마을에, 강남에 데리고 다녀 준 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부모님이 차려 주신 밥이나, 급식실 어머님이 챙겨 주시는 밥만 먹고 살다가 혼자서 뭘 해 먹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달은 야심 차게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한때는 아예 냉장고 전원을 뽑아 놓고 산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에 경악하고 저를 구박하면서도 녹두의 높은 계단을 함께 오르내리며 반찬이며 간식을 챙겨준 친구들에게는 정말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인문대 신양관 앞의 옆으로 긴 플라타너스 줄기, 자하연의 오리, 학교 곳곳의 고양이들, 셔틀 탑승장의 등꽃에는 또 얼마나 위로를 많이 받았던지요.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새벽, 자하연에 비친 아른아른한 불빛과 ‘걷고 싶은 길’에서 풍겨 나오는 달큰한 꽃냄새, 언제 봐도 꺼지지 않는 도서관 불빛에 씩씩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학교가 산이라며 불평도 많이 했지만, 힘겹게 올라간 오르막에서 뒤돌면 펼쳐지는 탁 트인 하늘과 노을에는 정을 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며, 제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됐다면, 공부가 어렵고, 연구가 힘들다며 징징거리는 학생을 성심성의껏 상담, 지도해주신 지성미와 인간미 넘치시는 선생님들, 대학 생활의 보람과 재미를 책임져 준 동아리 선후배 동기 여러분, 우연한 만남이 제게는 더없는 행운으로 밝혀진 수많은 인연들 덕분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큰딸을 믿고 아끼고 지원해주신 부모님, 가족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습니다. 

누가 물어볼 때면 자기는 아니라며 발뺌하지만 서울대에서의 치열한 삶을 살아 나갈 여러분, 응원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 나가는 방법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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