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일본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
  • 박재우 기자
  • 승인 2019.09.01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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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책 | 일본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록 우리가 한국인이거나 서울대 학생이라 하더라도, 한국 혹은 서울대에 대해 완벽히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완벽히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며 아무 말도 안 한 채 앉아만 있을 수도 없다. 그 대상이 일본과 같이 우리와 엮인 일이 많은 국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지금 한국과 일본은 역사 분쟁뿐 아니라 경제 갈등까지 겪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가?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은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여섯 명이 각자의 분야(대중문화, 사상, 미디어, 역사, 정치, 문학)를 렌즈 삼아 일본인과 일본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말하자면 한국인을 위한 ‘일본 사회 기초 가이드’다. 그러나 책 제목과 머리말에 드러나 있듯이, 일본을 알기란 ‘난감한’ 일이다. 일본 정치가 우경화나 일당 독재에 치우쳐 있다는 우리의 일반적 인식과 달리 일본의 시민사회는 뉴미디어를 활용해 NHK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는 등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어제까지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시민운동가가 급작스럽게 혐한 활동을 이끌기도 한다. 한편 우리에게 혐한파로 알려진 한 만화가는 정작 일본 내 한류 유입을 수용함은 물론 긍정하기까지 한다. ‘난감하다’라는 뜻 그대로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어려움(難)을 견뎌야(堪)’ 한다. 일본이라는 객체를 혐한, 우익, 군국주의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에 앞서 실제 일본인과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다층적인 문제의식과 복잡한 사회현실을 읽어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을 논하며 식민지 경험, 분단과 전쟁, 경제성장 등에 관해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현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문화적 맥락 안에서 일본의 위치를 살펴야 한다. 역사 편에서 저자가 정리하듯 일본의 근대사는 세계화를 향한 역주(力走)인 동시에 인류 보편의 가치에 반하고 패망한 역주(逆走)기도 하다. 일본은 탈아론(脫亞論)을 울부짖으며 서구화를 추구한 ‘아시아의 우등생’이면서도 결코 완전한 서구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한 ‘아시아의 일본’이었다. 그리고 일본 근대사 100년의 역주는 현대 일본에 패전국이라는 트라우마와 ‘군대 없는 국가’라는 유산을 남겼다. 이를 반증하듯 일본인은 1945년 이후의 현대사를 전후사(戰後史)로 명명한다. 

전통과 근대, 평화와 전쟁은 일본의 각 영역을 씨줄과 날줄처럼 오고 가며 역사에 각종 흔적을 남겼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일본적 탐미의 극치인 동시에, 그 이면에는 아름답지 않은 일본의 모습을 어떻게든 잊고자 한 몸부림이 숨어있다. 전통적인 ‘일본미(美)’는 인생이 본래 공허하고, 운명을 거스르고자 하는 의지도 결국 허무할 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일본미의 관점에서 정치나 전쟁은 가장 인위적인 행위며 당연히 기피돼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와바타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일본미는 군국주의 시기에 서구와 구분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됐다. 반면 냉전 시기에 접어들자 『설국』은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서구라는 ‘남성’에게 철저히 순응하는 일본의 ‘여성성’(『설국』의 게이샤 가마코)으로 해석됐다. 마치 미국을 순순히 따르는 냉전 시기 일본의 모습처럼.

이런 모습은 오타쿠, 넷우익 등 일본 사회의 여러 단면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컨대 오타쿠 콘텐츠의 성공 원인을 논할 때, 일부 일본인은 에도시대 우키요에*를 거론한다. 이런 주장은 오타쿠 문화 형성에 스며든 미국 문화의 영향력과 나아가 패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일본 사회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소위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는 1970-80년대생이 넷우익으로 발전한 배경에는 1990년대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발아한 냉소주의가 있다. 어려운 현실에 대한 방황과 1960-70년대의 격렬한 학생운동을 통해서도 사회를 바꾸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내셔널리즘과 결합해 분노를 자아낸다. 이 분노는 한국, 중국과 같은 주변국뿐만 아니라 전후 사회 체제를 구성한 친미보수와 리버럴 좌파 모두를 향한다. 따라서 넷우익과 넷우익의 한 부류라 할 수 있는 혐한파는 극우파만을 표상하지 않는다. 이들은 평화헌법, 전쟁 책임, ‘미국에 의해 이식된’ 민주주의 등을 포괄한 모든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추구한다. 

아베 정권이 끊임없이 개헌을 주장하는 이유도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추구하는 일본 사회의 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전후 체제는 반군, 반전, 천황주의가 융합해 만들어진 평화헌법과 미일안보조약이라는 두 개의 결과물로 상징된다. 당시 보수(자민당)와 혁신(사회당)의 전선은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아닌 미일안보조약을 둘러싼 찬반 논의를 통해 형성됐다. 평화헌법이 보수인지 혁신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 지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안보는 전적으로 미국에 맡긴 채 경제성장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동구권 붕괴 이후 일본 사회는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특히 군사적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걸프전이다. 일본은 전쟁 비용 600억 달러 중 130억 달러를 지불했지만,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 돈만 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로부터 되려 비판을 받았다. 이는 잠재돼 있던 평화헌법 개정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켰다. ‘보통국가론’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였으며 또한 미국 의존 일변도의 동맹 구도를 탈피하려는 전략이다. 한반도에서의 탈냉전 움직임에 이어 발생한 북핵 위기는 일본 사회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헌법 개정은 미일동맹 내 일본의 비중을 늘려 지역 안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이정표로 작용한다. 이 부분에서 남기정 HK교수(일본연구소)는 일본 사회 내 여론의 무게 중심이 평화헌법이 상징하는 ‘평화의 이상’에서 일본의 재무장 필요성을 강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로 점차 움직이고 있다고 해석한다. 역사는 군국주의 확산을 뜻하는 ‘우경화’와 국제정치 내 현실주의적 고려가 강화되는 ‘보수화’를 구분해 볼 것을 우리에게 주문한다. 

끝으로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보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태도다. 물론 그들은 연구자로서 사실을 파악하고 잘못을 지적하며 학문적 냉정함을 발휘한다. 넷우익이 패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역사까지 왜곡하던 모습을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들의 날카로움은 양국의 국민이 상호 간 증오와 불필요한 오해를 거둬들이기 바라는 희망에서 유래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난감함을 난감(難堪)’하는 태도가 아닐까.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긴 채 갈등만 키우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저 난감한 이웃이라 여겼던 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산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우키요에(浮世絵): 미인이나 풍경 등을 그린 일본 에도시대의 풍속화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김효진, 남기정, 서동주, 이은경, 정지희, 조관자

288쪽

위즈덤하우스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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