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가장자리에 지어진 아지트
예술의 가장자리에 지어진 아지트
  • 장한이 기자
  • 승인 2019.09.0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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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201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현장을 다녀오다

가장자리를 뜻하는 ‘프린지’(fringe)를 이름으로 내세운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22년째 주류와 비주류, 프로와 아마추어 예술 모두를 아우르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진행된 201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참가를 희망하는 예술인이 경쟁 없이 자유롭게 꾸민 신선한 예술이 가득했다.

누구나 참가해 어디서든 즐겨라

‘자유로움’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주제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1998년 ‘독립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후 자유 참가 원칙을 고수해왔다. 아카이브 전시 해설을 맡은 김송요 씨(29)는 “다른 축제의 경우 아티스트가 작품을 공모하면 축제를 관리하는 심사위원이 작품을 심사하고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그렇지 않다”라며 “아티스트가 참가 의사만 밝히면 모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프린지는 연출가를 팀의 대표로 여기는 여타 플랫폼과 다르다. 공연팀 ‘콜렉티브 뒹굴’의 연출가 성지수 씨(29)는 “대부분의 플랫폼에서는 공연팀을 섭외할 때 각 팀의 연출가에게만 모든 인건비를 지불한다”라며 “하지만 우리 팀은 공연하는 퍼포머와 연출가 사이에 동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공동창작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기존의 시스템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프린지에서는 이런 기존의 시스템을 거부할 수 있어 공동창작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라고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렇듯 자유로운 분위기를 기반으로 하는 프린지는 아티스트들이 도전적인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사용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공연은 평범한 무대가 아닌 곳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극단 ‘52Hz’는 문화비축기지 초입에 있는 놀이터에 쓰레기를 배치해 쓰레기와 유골이 가득한 ‘옥탑무덤’을 표현했다. 그들은 모래가 가득 쌓인 무대가 마치 집인 양 무대 위를 맨발로 누볐다. 52Hz의 장효정 씨(32)는 “프린지는 새로운 장소를 발굴하고 실험하기에 가장 좋은 페스티벌”이라며 “주어진 무대 환경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표현에 한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것도 예술인가요? 다양한 예술의 향연

1인 낭독극 ‘헤어지다’를 공연한 박혜랑 씨는 “관객들에게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소중한 경험이됐다”라고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소감을 밝혔다.
1인 낭독극 ‘헤어지다’를 공연한 박혜랑 씨는 “관객들에게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소중한 경험이됐다”라고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 소감을 밝혔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작품의 장르와 형식에 제한이 없어 곳곳에서 여러 종류의 예술이 펼쳐진다. 관객은 조용한 실내에서 사진전과 연극을 관람할 수도 있고, 매미 소리가 들리는 야외에서 무용과 음악회 등을 즐길 수도 있다. 참가 아티스트이자 관객인 김은한 씨(32)는 “프린지에서는 아마추어가 준비한 공연과 프로가 준비한 공연을 모두 감상할 수 있으며 여러 장르의 작품이 준비돼있다”라며 “관객은 가야금 연주를 듣거나 연극을 보고, 전시를 구경하는 등 하루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장르를 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프린지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 이가인 씨(20)는 “다양한 장르의 독립예술가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경험이었다”라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 

이번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말하기의 예술을 관객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창작 동화를 관객에게 읽어주는 1인 낭독극과 스피치 교실이 그 예다. 1인 낭독극과 스피치 교실을 연 박혜랑 씨(33)는 “연극 전공자로서 극단 생활을 했었는데 최근 극단을 그만두고 오디오클립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다 보니 관객을 만날 일이 없었다”라며 “관객과 만나고 싶어 올해 처음으로 프린지에 참가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혜랑 씨는 직접 준비한 영상을 재생하고 연령별로 다른 헤어짐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각 연령대의 목소리로 연기했다. 그는 “내년 프린지 페스티벌에도 참가하고 싶다”라며 “내년에는 관객과 더욱 소통하는 작품을 창작해 들고 올 예정”이라고 미소지었다.

공간성을 이용한 참여형 프로젝트도 프린지에 다양성과 신선함을 더했다. 콜렉티브 뒹굴은 관객이 화성 탐사 로버 ‘스피릿’이 돼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관객은 카카오톡으로 지령을 받은 후 특정 장소에 가 임무를 수행하고 임무를 완수하면 암호와 함께 보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연출가 성지수 씨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라며 “그 과정에서 관객이 열등감, 답답함, 목표 상실 등의 다양한 감정을 직접 겪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프로그램을 마친 후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까지가 프로그램의 일부”라고 덧붙였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소통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예술가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장이다. 문화정책 연구자 모임 ‘후레쉬’는 마이크로포럼을 주최해 예술가의 지위와 창작환경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다. 마이크로포럼에서는 ‘2018 예술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예술인의 창작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논의했다. 후레쉬의 김재상 씨(34)는 “현재 청년예술인의 창작환경은 열악하지만 문화 지원 제도나 정책은 실수혜자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현장에 있는 예술인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포럼을 준비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마이크로포럼에서는 문화 지원 정책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하며 예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다. 포럼에 참여한 사람들은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적힌 인용 구절을 읽어보고 가장 와닿는 구절을 설명하거나 스스로 정의 내린 예술의 가치를 발표하며 의견을 나눴다. 

축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마이크로포럼과 같은 공식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축제 전반에 걸쳐 매 순간 교류하고 연대했다. 특히 자원활동가인 ‘인디스트’와 스태프는 수평적 관계를 맺고 소통하기 위해 별명을 사용했다. 스태프 김민수 씨(28)는 “이곳에서 나는 엠케이라고 불린다”라며 “15살 인디스트 친구들이 45살 스태프를 별명으로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된다면 수평적인 조직을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명을 사용한다”라고 설명했다. 친근한 교류 방식 덕분에 그들의 네트워크는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다. 과거 인디스트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김송요 씨는 “보통 축제 자원활동가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연락이 끊기기 마련인데 이곳에서의 연은 지속됐다”라며 “끊기지 않은 인연 덕분에 인디스트로 참여했던 내가 이번 프린지에서는 전시해설자를 맡게 됐다”라고 말했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예술인의 집합 장소인 만큼 그들은 작품활동을 통해 소통하기도 했다. 김은한 씨는 “프린지에서는 일반 극장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인상적인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다”라며 “단순한 만남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공연을 보고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 프린지 페스티벌의 묘미”라고 말했다. 또한 관객들은 아카이브 전시에서 인디스트와 스태프의 작업활동을 볼 수 있었다. 김송요 씨는 “이번 프린지 아카이브 전시에는 ‘인디스트의 작업실’이라는 구역이 있다”라며 “프린지를 준비해가는 과정을 조명한 전시는 관객이 페스티벌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예술 아지트’라는 말로 축제를 표현한다. 김민수 씨는 “아지트는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작당모의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그 안에서만큼은 자유로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라며 “아지트라는 표현에는 프린지라는 플랫폼이 예술가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안전한 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라고 설명했다. 자유롭고 다양한 예술을 지지하는 마음이 모인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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