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73회 후기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지난 『대학신문』에도 졸업을 축하하는 글과 졸업생 인터뷰가 실렸다. 그런데 졸업생이나 입학생 외에도 자신의 학적 상태에 약간의 변동이 생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제 막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이다. 서울대의 구성원 가운데 대학원생의 비율이 낮지 않으니 수료생의 비율 또한 낮지 않을 것이다. 

수료한 지 몇 학기째에 접어든 나의 예를 들어보자.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것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축하할 일이기도 했지만, 마냥 축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처음 몇 달은 수업을 안 들어도 되고, 과제도 없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가시적인 큰 성과도 없었다. 그래서 졸업이라는 끝이 언제 올지, 과연 그 끝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긴 터널을 혼자서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선배들은 졸업이 고난의 끝일 것 같겠지만 그 이후에는 또 다른 고난이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발길을 되돌릴 수도 없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나 교수님은 격려 차원에서 요즘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근황을 묻곤 하는데, 이만한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의 시간이 또 없다. 어떤 책도 읽었고, 나름의 고민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가. 

이처럼 수료생에게 ‘근황 토크’란 하나의 금기가 될 수도 있지만, 지면을 빌려 나의 근황 토크를 좀 해본다. 내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가령, 얼마 전에는 꽤 여러 잔의 커피를 사 마신 결과 예쁜 비치 타월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몇 개 사 먹고 예쁜 열쇠고리를 획득했다. 또 다른 카페에서는 얼마 이상의 음료를 마시니 적은 비용만 내고 휴대용 선풍기를 살 수 있었다. 그 선풍기는 예쁘긴 하지만 아쉽게도 강한 모터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한 후배는 그 선풍기에서 오히려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며 악평을 퍼부었다. 

이러한 소비행태 및 취미가 경제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니,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공짜로 혹은 저렴하게 선물을 얻은 듯하지만, 이를 위해 불필요한 소비가 동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사치는 아니며, 기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허용할 수 있는 정도의 사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몇 번의 출근 도장을 찍고 과업을 달성해 무언가를 얻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별것 아닌 성취감도 내 삶을 지탱해주는 작은 기둥이 될 수 있다. (물론, 현재 나는 일정에 따라 꼬박꼬박 나오는 『대학신문』의 발행과정에 참여하는 덕분에 어느 정도의 성취감을 얻고 있다.)

이번에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이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야 할지,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잠시라도 몰입할 수 있고 성취감을 얻을 만한 자신만의 취미 하나쯤은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수료생의 일상을 잘 모르는 이들이나 다른 수료생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이런 고민을 하고,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된 어느 수료생 한 명이 있다고.

 

유예현 간사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