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부 석사과정오서정
경제학부 석사과정오서정

학-석-박사의 의식 구조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농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학사: 이제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석사: 자기는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

박사: 남들도 다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현재의 저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을 깨달은 석사 단계입니다. 석사를 마치면 적어도 제 전공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게 논리적인 주장을 술술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통렬히 실감한 지금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것’을 오히려 더욱 부담스럽게 느끼게 됐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떠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찾아내는 데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된 것과 제 이름을 걸고 어떤 주장을 펼치는 행위의 무게를 깨달은 데서 기인합니다.

특히 제가 공부하고 있는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 분과들과 같이 변덕스럽고 변칙적인 인간과 사회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논문을 쓰고자 끙끙대다 보면 간혹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체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진실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뭔가가 만져지는 것 같기는 한데, 주위가 온통 캄캄하기 때문에 저는 그저 손이 더듬고 있는 무언가가 코끼리라고 하릴없이 주장하고 마는 것입니다. 코끼리라는 진리를 더 효율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기 위해 경제학은 수와 언어라는 두 가지 도구를 제공하지만, 고백하건대 현재의 저는 아직 청동기 수준의 기구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어둠 속에서 반달 돌칼을 휘두르는 제 모습이 너무나도 나약해 보여서 논문에 한 문장 한 문장을 덧붙일 때마다 겁이 나기 일쑤입니다.

시사 이슈나 사회 문제 등에 대해 남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답이 없는 주제(예컨대 술자리 3대 금기라는 정치, 종교, 성(性)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나 상대방에게 똑똑해 보이고 싶을 때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어설프게 말을 꺼냈을 때 호된 비판(혹은 비난)을 당하기 쉬운 주제들이고, 그 과정에서 저의 밑천이 드러나 제 멍청함을 만천하에 떨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럴 땐 어디선가 읽은 누군가의 그럴듯한 주장을 답습하거나 그저 입을 다물고 똑똑해 보일 법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그럼 비판을 받을 일도, 멍청해 보일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어떠한 주장을 한다는 행위에는 남들의 비판에 직면하거나 본인의 무지가 드러날 위험이 수반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 부담을 지기 싫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겁쟁이가 될 것이고, 남의 말을 답습하기만 한다면 결국 멍텅구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우기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바보 취급한다면 그는 독선자일 따름입니다.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학자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닌 이들에게는 겁쟁이와 멍텅구리, 독선자라는 선택지가 줄 수 있는 안락함을 포기할 용기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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