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대 일본연구소 주최로 ‘관정일본연구 제1회 학술회의’가 열렸다. 인문한국지원사업(HK사업)의 지원을 받던 일본연구소가 해당 사업이 종료되면서 재원 부족으로 학술 연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기사가 모 일간지에 나자 관정재단이 지원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뤄진 행사였다. 이와 같은 상황은 서울대의 인문사회계 분야 연구소들이 겪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 등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인문사회 및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소들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HK사업이나 두뇌한국21사업(BK21사업)과 같은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사업들이 종료되거나 지원이 중단됐을 경우 자생력을 갖출 수 없는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연구를 중단하거나 심지어 연구소를 폐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일본연구소의 경우는 다행히도 기사가 실릴 기회를 얻었고 그를 통해 일시적인 지원을 받게 됐을 뿐이다. 

서울대의 법인화 추진 당시 법인화가 되면 수익성 확보와 경쟁력 강화라는 논리에 따라 기초학문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 있었다. 이와 같은 우려에 따른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제31조(국립대학의 사회적 책무 및 국가의 지원) ①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는 기초학문 등 필요한 분야의 지원·육성에 관한 4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공표하고, 매년 실행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②국가는 제1항에 따른 연도별 실행계획의 시행을 위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재정 지원 등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와 같은 매우 특수한 조항을 두게 됐다.

이 조항에 따라 2016년 11월에 「기초학문 등 지원육성을 위한 4개년(2016~2019년) 계획」이 공포됐으나 이 계획은 5쪽에 불과하며 매우 개략적이고 선언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법에서는 “매년 실행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지만 매년 어떤 계획이 수립되고 어떻게 시행됐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법인화 초기, 기초학문 육성을 위해 학문후속세대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는 학내 요구에 따라 기초학문분야 학문후속세대 지원 사업을 시작해 잘 정착시킨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후속세대 양성과 함께 기초학문 연구의 진흥 정책이 병행됐어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관심과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았다. 

올해는 법에서 규정한 4년 단위 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하는 시점이다. 더 이상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형식적 계획에 그치지 말고 기초학문의 진흥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매년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확실한 실행 계획을 세우고 법에서 규정한 대로 실행에 필요한 예산을 국가에 신청해야 할 것이다. 기초학문 진흥을 위한 획기적인 제도와 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기대도 하기 어렵지만 기존에 있는 규정만이라도 충실히 이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