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그 후 ① 권역외상센터 지원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야심차게 내놓은 공약으로, 국민과 청와대의 직접적인 소통창구이자 여론이 형성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해 왔다. 그간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많은 청원이 올라왔고, 일부는 ‘20만 명 동의’라는 조건을 충족해 청와대의 답변을 받았다. 이에 『대학신문』은 그중 전 국민의 관심을 받은 청원 세 개를 선정해 기사로 다룬다. 청원의 배경과 청와대의 답변을 분석하고 청원으로 촉발된 변화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짚었다.

이국종 교수의 절규로 알려진 구멍

2017년 11월 17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권역외상센터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 지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2017년 판문점 귀순 총격사건의 담당의를 맡은 이국종 교수(아주대학교 의학과)가 브리핑 과정에서 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을 절박하게 알린 결과였다. 많은 국민은 외상센터의 실상에 안타까워하며 청원에 반응했다. 청원에 참여한 본교 학생 A씨(화학생물공학부·17)는 “내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니 지원의 필요를 실감했다”라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권역외상센터 청원은 정부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고 지적받은 여타 청원과 달리 정부가 실질적으로 개선을 꾀할 수 있는 영역이었기에 정부의 책임성이 더욱 부각됐다. 권역외상센터 지원 청원은 결국 28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어 현장을 직접 방문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답변을 받았다. 박 장관은 권역외상센터 업무의 고충과 열악한 처우에 공감하면서 “의료진이 마음 놓고 치료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소방헬기 지원, 중증외상센터 근무의료진의 확충, 인건비 인상을 실시하겠다”라며 행정부의 지원과 관리, 예산 인상을 약속했다.

답변 이후 보건복지부가 외상센터를 확충하고 지자체 차원의 시스템 개선이 시행되는 등 제도적 변화가 이뤄졌다. 보건복지부 윤태호 공공보건정책관은 “청원 이후 정부가 발표한 중증외상 진료체계 개선대책에 따라 경북대병원과 의정부성모병원에 권역외상센터를 추가 개소했다”라며 진료 여건 개선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는 지난 6월 응급의료헬기(닥터헬기)가 학교 운동장을 이착륙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여전히 힘겨운 현실

열악한 현실이 일부분 개선됐지만 문제가 완벽히 해결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센터장이 지난 2월 과로사하면서 외상전문의의 과도한 업무강도가 다시금 드러난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작년 10월 24일 국정감사에서 이국종 교수는 청원 이후 10개월이 지났음에도 연한이 오래돼 정상적 기능이 어려운 무전기가 교체되지 않았다고 항의한 바 있다.

더불어 지난 19일 국회가 진행한 회계 결산에서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이 실제로 집행되지 못하는 현실이 밝혀졌다. ‘이국종 예산’이라고 알려진 ‘권역외상센터 중증외상 전문치료 체계 구축 예산’이 2017년 439억 원에서 2018년 531억 원으로 청원 이후 급격히 증가했음에도 실제 집행률이 약 86.2% 수준에 불과해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그 까닭은 의료인력이 충분히 충원되지 못한 데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산이 증원된다 한들 의학도의 외상외과 기피로 인한 의료진 부족으로 그 예산이 쓰이지 못하는 것이다. 분당 서울대병원의 외과의 한호성 교수(의학과)는 “외상외과는 업무강도가 가장 높은 과 중 하나”라며“강도는 높지만 처우는 열악하기에 의학도가 기피한다”라고 의료인력이 부족한 실정을 설명했다. 이어 한 교수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의료인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병원 역시 충분하지 않다”라고 호소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어디에

구조상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권역외상센터 문제에 대해 의료수가 체계 개선이 해결책으로 논해진다. 한호성 교수는 “권역외상센터는 일반 병원과는 다르게 한 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구조”라며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상 외상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할수록 손해를 보기에 대형병원이 외상센터 설치를 기피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한 교수는 “예산의 지원만으로 재정자립이 어려우니 합리적인 수가 개선을 통해 외상센터가 진료만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외상 진료에 대한 수가를 3배가량 인상해야 의료진의 외상센터 기피 경향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 또한 “권역외상센터 의료 과정에서 진료비가 과도하게 삭감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라며 “중증외상환자 진료비 수가에 대한 별도의 기준이 필요한 항목을 검토하는 등 의료수가 체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로서 국가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가치다. 한호성 교수는 “권역외상센터는 국가의 안전판이라고 볼 수 있다”라면서 “국민들이 어떠한 위급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역외상센터 청원은 국민의 안전이 충분히 보호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청원 이후 여러 개선이 이뤄졌지만 아직 국민의 안전이 완벽히 보장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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