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관악 길고양이보호협회’ 서유진 회장

“길에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이웃입니다.” 최근 관악구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문구다. 그 옆에 실린 고양이 사진은 시민들의 발을 붙잡고 광고를 한 번씩 들여다보게 만든다. ‘관악 길고양이보호협회’(관악길보협)가 진행하는 인식개선 사업의 일부다. 『대학신문』은 지난달 26일 관악길보협 서유진 회장을 만나 길고양이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 회장은 2014년 네 명의 ‘캣맘’*과 함께 관악길보협을 만든 이래 관악구 길고양이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길고양이를 ‘길 아이들’이라 부르며 그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드러냈다.

◇새로운 길고양이 돌봄 모델을 구상하다=“과거 캣맘들은 길에서 고양이를 구조하면 사비를 들여 치료하고 보호하다 입양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어요.” 관악구청과 의료기관의 긴밀한 협력을 중시하는 관악길보협의 운영 모델은 기존 길고양이 돌봄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기존 방식은 캣맘에게 큰 부담을 지워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게 했고 길고양이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도 못했다. 서 회장은 길고양이의 삶을 개선하는 데 개인의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보다 공적 자금과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사람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그는 주민단체와 관악구청, 의료 기관이 힘을 합쳐 길고양이를 돌보는 ‘민·관·의 모델’을 구상했다.

서 회장은 “관악길보협의 모든 활동은 이 모델에서 파생된다”라고 말한다. 관악구 주민단체로서 관악길보협은 관악구청, 구내 의료 기관과 긴밀하게 연계하며 인식개선 활동과 군집 단위의 중성화 수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관악길보협이 2017년에 제안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이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구청의 지원을 받아 관악구에 21개의 급식소가 설치됐다. 이처럼 지자체 예산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든 사례는 전국에서도 손에 꼽힌다. 서 회장은 “1호 급식소가 인헌동 주민센터에 설치될 때는 정말 눈물이 났다”라며 사람들이 다니는 시간을 피해 몰래 밥을 주던 캣맘에게 구청 예산으로 급식소를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길고양이 돌봄의 민·관·의 모델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급식소 사업이 이듬해 연장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첫해 설치된 21개 급식소는 관악구 전체 길고양이에게 안정적으로 사료를 공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라고 밝히며 그 정도 수로는 ‘전시용’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결국 관악길보협은 회원들의 후원금을 모아 자체적으로 급식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매달 대여섯 명의 회원에게 신청을 받아 급식소를 설치해 온 것이 하나씩 쌓여 지금은 160개를 넘는다. 그러나 서 회장은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구 사업’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민간단체의 힘만으로는 급식소 사업이 장기적,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악길보협이 설치한 급식소에서 고양이가 밥을 먹고 있다. (사진 제공: 관악 길고양이보호협회)
관악길보협이 설치한 급식소에서 고양이가 밥을 먹고 있다. (사진 제공: 관악 길고양이보호협회)

◇길거리 터줏대감들을 향한 시선=관악길보협 회원들은 주민들의 민원과 빈번히 부딪힌다.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나 배변, 위생 문제 등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면 관악길보협은 관악구청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문제 해결에 나선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고양이를 군집 단위로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화단이나 놀이터 등에 배변하는 것을 막으려 배변소도 설치했다. 급식소 사업의 목적 중 하나가 길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헤쳐 놓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급식소를 설치하니 길고양이가 그 지역으로 더 몰려든다는 민원이 구청에 종종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 회장은 “급식소를 설치하면 오히려 길고양이를 일시에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개체 수를 관리하기 용이해진다”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외관상으로나 위생적으로도 급식소를 설치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한편 길고양이가 ‘그냥 싫다’ 식의 민원도 적지 않다. 이에 그는 “고양이는 지역의 터줏대감”이라며 한 구역에 고양이 수가 줄어들면 다른 영역에서 도태되거나 밀려난 고양이들이 유입돼 최종 개체 수가 유지된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길고양이는 절대 사라질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주민과 길고양이가 서로의 불편함을 줄이며 공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대 고양이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회장은 서울대 내 길고양이 돌봄 활동이 주먹구구로 이뤄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캠퍼스 부지가 넓다 보니 여러 주체가 산발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길고양이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중성화 수술이 주기적으로 실시되지만 한 번에 포획하는 고양이 수가 지나치게 적으며 후속 관리도 미흡하다”라고 지적하며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돌보는 학내 단체들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고 쉽게 흐지부지된다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서 회장은 다시 한 번 민·관·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서울대에는 의료기관이 학교 안에 있으니 특히 유리한 점이 많다”라며 학생 단체가 민간단체 역할을 하고 학교 본부가 지자체 기능을 수행하면서 수의대가 의료기관으로서 길고양이를 관리한다면 캠퍼스에서도 민·관·의 돌봄 모델을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개별 주체의 독립적인 활동만으로는 길고양이들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기 어렵다”라고 말하며 학생 단체와 학교 본부, 수의대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관악길보협과 서울대의 인연은 여러 방면으로 이어져 왔다. 상당수의 서울대 교수, 강사, 학생, 직원들이 지금도 관악길보협에 매달 후원금을 보낸다. 관악길보협의 급식소 모형도 서울대 재학생과 관악길보협이 협업해 만든 것이다. 관악길보협이 전국에 다양한 급식소 샘플들을 수집해 장단점을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대 학생이 현재의 모형을 디자인했으며 그를 통해 전국에 유일무이한 형태의 급식소가 탄생했다. 서울대 내에도 두 군데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됐다. 서 대표는 앞으로도 관악길보협이 도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꺼이 서울대와 협업할 용의가 있다며 캠퍼스 길고양이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부탁했다.

*캣맘: 자발적으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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