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지역화폐, 꺾이지 않을 수 있을까
우후죽순 지역화폐, 꺾이지 않을 수 있을까
  • 박재우 기자
  • 승인 2019.09.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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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지역화폐의 명암(明暗)을 분석하다

최근 들어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목적 아래 지방자치단체(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화폐가 발행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 당선자가 모두 블록체인에 기반한 암호화폐 발행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경기도 내 절대다수의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을 실제 진행하거나 추진 중이다. 서울 노원구는 이미 2월부터 ‘노원(NW)’이라는 이름의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개발해 발행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상품권이나 지폐 형식의 지역화폐가 확산함과 동시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지역화폐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정말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또 블록체인 기술은 정말 지역화폐의 ‘신세계’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 

지역화폐 열풍, 지자체를 휩쓸다

◇지역화폐, 어디까지 왔을까?=지방선거 이후 지역화폐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 기존에 중앙정부가 발행하던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온누리 상품권에 더해, 경기지역화폐(경기도), 인천e음(인천광역시), 시루(경기 시흥시), 심청상품권(전남 곡성군) 등 지자체 중심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야말로 지역화폐 열풍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가 각종 소상공인 지원정책을 발표해 지역사랑상품권의 발행 규모가 2015년 892억 원에서 2018년 3,714억 원으로 늘어난 바 있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에 따르면, 올해 지역화폐를 발행한 광역, 기초단체는 총 177곳으로 작년 66곳에 비해 2.7배가량 증가했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1월 추경 예산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의 발행 규모를 2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때 중앙정부도 발행 비용의 4%를 지원하며, 규모는 800억 원에 달한다. 

과거에는 지역사랑상품권과 같은 지폐 형식의 지역화폐가 주로 발행됐으나 최근에는 디지털과 최신 기술을 활용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 황영순 연구원은 “운영비용이 큰 지폐 형태는 지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라며 “일부 고령자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식으로든 모바일 형태가 주력이 돼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라고 말했다.

◇그 지역화폐랑 이 지역화폐는 다르다?=지역화폐를 거론할 때, 지역화폐가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다양한 범주의 화폐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현대의 지역화폐 운동은 법정화폐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20세기 초까지의 지역화폐가 대안화폐로 인식된 것과 달리, 현대의 지역화폐는 특정 공동체가 발행하는 ‘보완화폐’로 기능한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인원이 지역화폐를 사용한다 해도 법정화폐는 여전히 병용된다. 또한 지역화폐는 가맹 형식의 회원제가 요구되며 이를 위한 운영 비용을 수반한다. 예컨대 지폐 발행 비용, 카드 결제 시스템 구축 비용 등이 있다. 

결국 화폐의 기능을 크게 교환의 매개 수단(지급결제 수단), 가치의 척도,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나눌 때 지역화폐는 교환의 매개 수단에서만 제한적인 기능을 발휘한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조혜경 연구위원은 “지역화폐의 정체성이 보완통화라고 간주할 때, 사회경제적 의미에서 지역화폐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에 따르면 현재 통용되는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의 태환(兌換)이 보장되는 보조화폐, 상호신용화폐 그리고 보조화폐와 상호신용을 결합한 혼합형 화폐의 세 가지로 나뉜다. 세 가지 유형은 화폐 발행 원리의 차이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화폐 발행의 원리란 화폐 가치의 창조와 화폐 공급의 방식을 의미한다. 보조화폐는 일종의 법정화폐 기반 상품권(바우처)으로, 지정된 판매점에서 지역화폐를 구매함으로써 화폐 가치가 창조된다. 화폐의 외형을 갖고 있으나 법정화폐와 연동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역상품권과 사실상 같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지역화폐’의 형태 역시 대부분 보조화폐에 속한다. 반면 상호신용화폐는 개인 간 직거래(P2P)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며, 공동체 구성원 간 거래 자체가 화폐 창조의 원리로 작용한다. 이는 법정화폐와 무관하게 가상의 공동체 화폐를 사용해 회원 간 서비스와 재화를 거래하는 교환제도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지역화폐를 발행하는지에 따라 지역화폐의 유형을 구분 짓기도 한다. 경기연구원 최준규 연구위원은 “지역화폐는 발행 형태와 통용범위에 따라 공동체성과 경제성 두 양극을 기준으로 연속된 스펙트럼의 한 지점에 존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통용범위가 좁을수록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는 축소될지 모르지만, 반대로 공동체적 영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지역화폐가 정말 지역경기를 살릴 수 있는가?

◇지역경기를 살리자, 지역화폐로!=역사적으로도 지역화폐는 거시경제적 불안정성, 예컨대 중앙정부가 주도한 통화금융정책의 실패로 법정화폐 가치가 폭락한 것에 대응해 지역 경제를 보호하는 성격이 강했다. 황영순 연구원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역화폐가 있다면 신뢰가 떨어진 법정화폐를 보완해 지역 경제에 미칠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라며 “실제로 최근 지역 경제가 위기에 처한 군산시나 지진이 발생한 포항시에서 지자체가 지역화폐 발행량을 늘려 위기에 대처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지자체는 지역화폐를 통해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소비자가 내야 하는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최준규 연구위원은 “지역화폐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써 ‘정책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라며 “지역 축제 활성화, 지역 상권 매출 증대 등 일부 목적에 있어 그 효용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본 유출 방지와 지역 상권 활성화에 따른 2차 소비 증대를 기대해 볼 만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역화폐를 통해 공무원 복지포인트, 청년수당을 지급해 지역 내 사용을 장려할 수도 있다. 이는 복지 사업과 연계해 지역 내 공동체 의식을 제고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예컨대 성남시는 조례를 제정해 청년수당을 성남시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있다. 김병조 교수(울산과학대 경영대학원)가 2017년 11월 발표한 「성남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 도입 이후 2016년 성남시 내 돌고래시장, 금호시장의 자영업자 매출은 2015년보다 평균 26.3% 증가했다.

◇정말로 지역화폐로 지역 경기를 살릴 수 있다고?=그러나 지역화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역화폐 사용에 비판적인 측은 지역 내에서만 돈을 돌게 해 지역 경제를 진흥한다는 ‘폐쇄형 공동체’에 기반한 관념이 지역화폐에 숨어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영식 교수(경제학부)는 “화폐 이론 측면에서 지역화폐는 사용범위가 제한돼 있고, 법정화폐보다 유동성이 낮아 본질상 한계가 있는 도구”라고 말했다. 지역화폐가 범용성, 유동성 측면에서 화폐의 거래비용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홍기훈 교수(홍익대 경영학과)는 “돈을 풀면 경제가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지역에서 중앙정부 돈을 빼내 온다는 점에서 ‘제로섬’ 혹은 ‘예산 빼오기’와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일단 여러 지자체는 매출액 증가, 늘어난 가맹점 숫자를 근거로 성공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역화폐가 많이 쓰였다 해도 정말 지역 경기가 살아났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역 경기 활성화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매출액 증대뿐 아니라 지역화폐가 수반하는 여러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지역화폐는 화폐의 발행 비용을 수반한다. 또한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발행액의 3~10%가량을 할인한 채 판매하는데, 모든 할인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소비자들이 ‘할인 혜택’이라 느끼는 비용이 실상 소비자 자신이 납세한 지방세로 충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영식 교수는 “지역화폐로 인한 지역 상품의 가격 인하에서 오는 편익이 다른 지역의 질이 높은 상품 소비를 포기하는 기회비용보다 작다면, 지역화폐에 대한 수요가 늘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홍기훈 교수는 “55만이 사는 노원구에서 발행한 ‘노원’의 회원 수가 지난 4월 기준 7,153명으로 전체 인구의 1.3%에 지나지 않고 전체 발행량은 1억 원을 약간 넘을 정도”라며 “이 정도 성과를 ‘성공’이라 평가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지자체가 제시하는 소상공인, 저소득층 보호라는 목적이 얼마나 구체적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하는 목소리도 있다. 홍기훈 교수는 “설사 효율성 측면에서 다소 떨어지더라도 정책적인 목적에 당위적인 근거가 있다면 지역화폐를 발행해도 좋다”라면서도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대부분의 지역화폐 정책은 ‘지역경제 활성화’, ‘소상공인 보호’와 같은 추상적인 구호로 이를 대체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왜 하필 자신의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예산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해야 하는지, 지역화폐에 쓰일 예산으로 더 효과적인 정책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책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영식 교수 역시 “경제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지역화폐를 발행하는데 사용되는 예산을 직접 소비자 또는 생산자에게 이전했을 때의 소득증가 효과와 지역화폐로 발행했을 때의 효과를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라며 엄밀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블록체인에 지역화폐를 더하면?

◇지역화폐에도 부는 블록체인 바람=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지역화폐 발행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기업이 지자체와 결합해 블록체인 기술 투자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블록체인을 화폐에 활용하는 가장 핵심적인 논리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할 경우 화폐 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정보가 집중되는 중앙처리기관이 없어 운영자의 데이터 처리 비용도 줄어든다. 게다가 사용지역, 업체, 권한, 기간 등의 조건을 설정할 수 있어, 지역화폐가 목적에 따라 잘 사용됐는지 통제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의 완결성, 투명성 역시 지폐의 위조나 변조를 막는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한편 수수료가 적고 지폐보다 사용 편의성이 크기에 소비자에게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각종 할인과 혜택 정보 역시 접하기 쉽다. 

예를 들어 KT는 5G(5세대) 네트워크망에 블록체인을 적용해 카드 수수료를 없앤 지역화폐 플랫폼 ‘착한페이’를 개발했다. 이는 지난 4월 김포시에 이어 8월부터 울산광역시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착한페이는 발전 중인 블록체인 기술을 실제 실험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구미를 돋우고 있다. 착한페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청년배당, 출산축하금, 산후조리비 등 특수한 목적에 화폐가 제대로 사용됐는지 검증한다. 지난해 부산발전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지역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접목」에서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지역화폐가 미진하다고 지적받은 여러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라며 “특히 자원봉사와 같은 사회적 경제나 복지보조금의 부정수급 문제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라고 주장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곤란해=하지만 블록체인을 활용한 지역화폐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은 존재한다. 홍기훈 교수는 “화폐에 은행이라는 중개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자금 조달이나 금융 거래비용이 증가하고 화폐를 유지하는 비용도 증가한다”라며 “블록체인으로 비용 감소가 된다는 논리는 기본적으로 거짓”이라고 말했다. 투명성이나 신뢰성에 관해서도 유사한 지적이 존재한다. 홍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이 지폐의 위조를 방지하기 용이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구태여 돈을 들여 블록체인을 도입해 내가 지방에서 국밥을 사 먹었던 것을 비롯한 모든 거래를 공개해야 할 이유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지역화폐와 블록체인의 결합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정치인과 공무원 사이에 블록체인의 필요성이 정말로 공유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무엇보다 공동체 회복을 핵심 목표로 삼는 지역화폐가 과도하게 관(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조혜경 연구위원은 “영국의 브리스톨 지역화폐처럼 시민주도의 지역화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민-관 협력형태”라며 “정부의 공급 물량 확대로 시민주도의 자생적인 지역화폐 운동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지역화폐는 대개 지자체의 주도로 상품권을 보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화폐에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을 가미해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준규 연구위원은 “지역화폐가 기존 법정화폐보다 불편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역화폐는 화폐라는 외피보다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지역 운동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역화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한 때다.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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