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 인문대 문예창작동아리 ‘창문’ 단편소설 기고

정필근 씨의 사무실은 난곡동의 허름한 건물에 있다. 지은 지 20년이 되어가는 4층짜리 상가 건물의 3층의 반에 세 들어 있는데 사무실에는 둥근 원형 테이블과 창가에 붙은 컴퓨터 세 대가 전부이다. 그중 왼쪽 컴퓨터를 정필근 씨가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 정필근 씨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그는 곧장 두 눈을 쳐다보고 “사람 치료하는 일을 합디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의사시냐고 물으면 정필근 씨는 고개를 젓고 눈썹을 올렸다 내리면서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한 병을 제가 치료하지요.” 한다.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니까 노인회관이나 교회나 가서 여차여차 그들을 치료하고 부은 발이 낫고 곪은 상처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의학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정필근 씨는 자신이 삐뚤어진 이빨을 제자리에 돌아오게 했고 틀어진 얼굴 근육을 잘 맞추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정필근 씨는 사무실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 꼭 붙어 있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아주 빠르게 알아내는 데 온통 빠진 것이다. 인터넷을 배운 이후로 정필근 씨는 드디어 자신의 인생에서 남들보다 앞서나갈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그러려면 정보를 많이 알아야 하고 정보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있으니까 사무실에 오면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서 입술에 침을 바르고 코를 삼키면서 클릭을 하기 일쑤였다. 정필근 씨의 즐겨 찾기에는 블로그, 카페, 커뮤니티 사이트가 수십 개 올라와 있었다. 정필근 씨는 그 사이트들에서 하라는 대로 곧잘 행동에 옮겼다. 초반에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미국의 좐 어쩌고 그룹에서 개발하는 신약에 투자했고, ‘기회의 차이나’에서 하는 대로 칭다오 건설 자재 회사의 주식을 샀다. 그리고 이제는 그 발을 넓힐 수 있는 한 다 넓혔다. 커뮤니티에는 돈을 얼마 벌었는지 하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왔지만 정필근 씨는 별반 성과가 없었다. “내가 응 돈만 많았으면 지금 수십억 벌었을 텐데 응 이거 돈 십만 원 해 봤자 뭐가 되냐. 명규야 이게 답이라니까 여기다 넣으라니까.” 정필근 씨는 술에 취했을 때면 옆 사람 어깨를 붙잡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금요일 오후 일곱시경, 정필근 씨가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꼭 쥐고 있다. 무언가 바쁘게 숫자를 입력하다가 갑자기 한동안 가만히 숨도 쉬지 않더니, 그 다음 순간에는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눈물 섞인 우렁찬 환호였다. 

오른쪽 컴퓨터를 쓰는 김민식이 귀를 막으면서 옆을 돌아보았다. 

“아 뭔디 그려? 사람 놀라게.”

정필근 씨는 아주 울 듯 말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이야— 이야—” 하며 사무실을 뛰쳐 나갔다. 

2억. 그의 핸드폰에는 2억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정필근 씨는 사무실 앞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마누라에게 전화를 할까. 마누라가 또 온 동네방네 아줌마들한테 소문을 내면 곤란하다. 지금 당장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인출을 할까. 그건 또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었다. 정필근 씨는 두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조물조물거리다가 사무실 앞 거리를 한 바퀴 더 돌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근처에 있는 백반 집에 가서 밥이랑 소주를 시켰다. 

소주 한 병이 거의 비워질 즈음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옆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거 아가씨”

“네?”

정필근 씨는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아르바이트생이 소주를 꺼내오자 능글맞게 웃으며 정필근 씨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호기롭게 열었지만 만 원짜리 두 장과 천 원짜리 몇 장이 아무렇게나 접힌 채 끼어있을 뿐이었다. 정필근 씨는 만 원 두 장을 꺼냈다. 꼬깃꼬깃한 거를 펴서 인심 좋은 양반처럼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넸다. 

“네?”

“거 넣어둬.”

“아저씨 너무 취하신 것 같은데.”

“오늘 기분 좋은 일도 있걸랑.”

정필근 씨는 돈을 든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정필근 씨는 소주를 한 잔 꽉 채워 들이키고는 돌아서는 아르바이트생 등을 향해서 말했다

“아가씨.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

“암한테도 안 말할라 그랬는데 아가씨 특별히 말해줄게.”

“자꾸 아가씨 아가씨 하시는데 이거”

정필근 씨는 아랑곳 않고 이빨을 다 보이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늘 2억을 벌었거든.”

“에-”

“이제야 따악 운이 따라줘 그래. 이게 다 앞서나가서 그런 거야. 정보가 중요해 정보가 응 아가씨 정보 많이 알아?”

정필근 씨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툭툭 두드렸다. 

“이거 비밀인데.”

정필근 씨는 바탕화면에 있는 ‘화폐의 미래-가상화폐’ 커뮤니티를 눌렀다.

“비트 코인이라고 들어봤어?”

정필근 씨는 얼굴이 벌개지도록 소주를 마시고 아르바이트생에게 강의인 듯 주정인 듯 한바탕 말을 늘어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정필근 씨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배시시 미소를 띤 채 밤 거리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신호등에 멈춰 서서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문득 정필근 씨의 가슴 한복판에 불안한 기운이 번졌다. 

잠깐 내가 비트코인 매도를 했나? 계산만 하고 말았던가? 와 이거 미친 거 아니야? 그 사이에 시세가 떨어졌으면 어떡한담? 

정필근 씨는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급하게 두드리니 아니나다를까 아직 매도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아직 그래프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언제 떨어질지 몰라, 얼른 팔아버려야지, 일단 집에 들어가야겠어, 정필근 씨는 집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아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점퍼를 벗어서 소파 한 구석에 던져놓고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부팅이 끝나자마자 정필근 씨는 서둘러 즐겨찾기에 저장된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아직까지도 상승세에 있었다. 매도 버튼이 보이자마자 돌이켜 생각하지 않고 클릭했다. ‘지정가 매도 완료’ 파란색 글씨가 떴다. ‘체결 가격’에 긴 숫자가 써 있었다. 

203240000

정필근 씨는 몇 자리 수인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셌다. 이억삼백이십사만 원. 칠 개월 전 비트코인을 처음 샀을 때 투자금이 삼백만 원이었던 게 떠올랐다. 

이억이십사만 원. 이억이십사만 원.

정필근 씨는 눈을 문대고 숫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핸드폰 계산기로 이억삼백이십사만 원에서 삼백만 원을 빼는 계산을 세 번 반복하고 나서야 정필근 씨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힘이 쭉 빠졌다. 

정필근 씨는 한 동안 누렇게 바랜 천장 벽지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입 꼬리가 움찔거리기 시작하더니 스멀스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급기야 입을 헤벌쭉 벌리고 헤헤 웃었다. 정필근 씨는 몸이 부웅 떠오르는 것 같았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하늘로 높게 떠오른 것 같았다. 정필근 씨는 의자를 빙그르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신혼 때 산 유리판이 덮여있는 큰 책상에 큰형님네가 이사가면서 준 모니터가 있고 그 옆에 연필이랑 볼펜이 몇 개 꽂혀있는 쌈장 통이 놓여있다. 등 뒤에는 폭포 사진이 붙어있는 달력과 시계가 못 두 개에 나란히 걸려있다. 저런 건 이제 필요 없지. 다 그대로이지만 이제 모든 게 바뀌었다. 정말, 그의 세상이, 이제, 달라진 것이다. 의자가 바닥에서 몇 센치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정필근 씨는 스윽 웃어 보이고는 뒤통수에 팔깍지를 끼고 꿈을 꾸는 듯 천장을 보았다. 

자 이제 그러면 뭐를 해볼까나. 자 일단은, 자, 생각해보자, 일단은, 그래 그 그거, 그 김우석이랑 심현철이, 맨날 고기 시킬 때 눈치 주던 자식들 한턱 탁 내서 아주 행님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보여주고, 우리 산악회 식구들 소고기 한번 쏘고, 암 그래야지 사람이 인정이 있어야지 베풀어야지 그래, 참 그리고 또 그때 그 정동일이 그 놈 지난번에 이태리인가 어딘가 갔다 왔다는데 나도 함 나가볼까, 뭐 이태리 프랑스 영국 뭐 또 어디야 미국 다 한번 돌고 와. 아이고 그리고 말이야 이제 이 일도 그만해야지, 김민식이 혼자 해도 돼, 그래 이 집도 싹 그냥 좋은 동네 좋은 아파트로다가 이사를 가고, 아 핸드폰이랑 컴퓨터도 말이야 응 최첨단 일을 하는데 정보를 얼른 알아야 하는데 느려 터져가지고 되겄어? 이것도 존 걸로 바꾸고, 참 마누라는, 참나 잔소리만 맨날 해대고 말이야, 내가 믿으라고 몇 번을 말해, 에 그래도 뭐, 그러면 뭐 일단 여편네 빤쓰랑 브라자부터 좀 존 걸로 바꿔줘야겠어, 그 고무줄 늘어난 너덜너덜한 거 참 베기 싫어, 아 그러면 일단 얼마가 남으려나.

하다가 정필근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남기는 무슨 턱도 없이 부족하다. 

안돼, 정필근,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돼, 하고는 정필근 씨는 자세를 곧추하고 바르게 앉아 의자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에이포 한 장을 꺼내 놓고 펜을 쥐었다. 그리고 종이에 똑바른 글씨로 2 하고 0 여덟 개를 적었다. 세 자리마다 한 번씩 쉼표도 넣으면서. 그리고 밑줄을 좍 쳤다. 

제일 중요한 게 뭐야. 이사, 그래 이사를 좀 가야 하나, 아냐 핸드폰을 바꿔? 일을 관둬? 아냐 돈이 필요하긴 하니까, 그럼 말고, 그래 그럼 일단 이사, 핸드폰, 애들 한턱 쏘기. 정필근 씨는 세 단어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펜을 손가락으로 빙 돌렸다. 

동그라미 하나만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정필근 씨는 0 하나를 희미하게 적어 넣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 때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싱크대 물소리, 냉장고 문 열리는 소리, 캬 시원하다, 하는 소리. 

그리고 방 문이 열렸다. 아내다.

“뭣혀.”

“뭣혀냐구.”

“조용히 좀 해봐. 집중하잖아.”

정필근 씨는 펜을 쥐고 종이로 고개를 굽인 채로 말했다. 

“설마 또 그 무슨 비트 코인인가 그거 하는 겨? 아니 우리 지금 원식이가 부쳐준 돈으로 장보고 그러고 있건만 일을 하면 할 것이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않고 그 코인에만 정신이 팔려서 아니 그럼 어쩌자는 겨?” 

정필근 씨는 그 자세 그대로다.

“그 뉴스 안 봤냐 뭐 돈 다 잃고 뭐 뿌시고 불태우고 사람들 난리 났더만. 난 그거 싫어. 나 그거 해서 잘 된 사람 하나 못 봤어.”

볼멘소리에 정필근 씨는 콧방귀를 뀐다. 

“내가 또 확 잘 돼불면… 아니 됐어 얼른 문닫고 나가, 응? 연속극 뭐 그런 거 하잖아.”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리모컨 어디 있어, 궁시렁 거리는 소리 뒤에 왁자지껄한 텔레비전 소리가 들린다. 정필근 씨는 다시 똑바로 앉아서 펜을 두 손가락 사이에 끼고 흔든다. 그러다가 가상화폐 사이트에 다시 접속한다. 비트코인은 그렇고, 리플, 에이다는, 아니면 라이트코인? 정필근 씨는 코를 한번 들이키고 차트를 클릭한다. 2억 중에서 삼백씩만 다시 해봐? 삼백, 삼백, 삼백 해서 구백? 밖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누라, 놀랄 노자네 하게, 아주 깜짝 놀라 코가 납작해지게 해야지, 참나, 아니 우리 남편이 또 능력은 좋아가지고, 금방 또 말 바꿀 거면서 말이야, 신경 박박 긁고 앉았어 정말. 정필근 씨는 다리를 떨며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반복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니터를 보다가 입 주변을 두어 번 긁다가 새로 고침을 눌렀다가, 창을 끄고 컴퓨터를 껐다. 

일단 내일 또 동향 정보를 찾아본 다음에 결정해야지. 정필근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 볼일을 보고 옷을 갈아입고 소파 옆에 서서 텔레비전을 잠깐 보다가 안방에 들어와 이불을 펴고 누웠다. 

눈을 감으니 앞에 상승하는 그래프가 어른거린다. 정필근 씨의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간다. 친구들의 와- 정필근- 진짜 진작에 니 말 들을 걸—, 부러워하는 눈빛이,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이제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 문을 여니 긴 복도와 그 끝에 빛이 들어오는 큰 거실이 펼쳐진다, 이번엔 최고급 성능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아주 좋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그리고, 호호호 하는 웃음소리와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에 둘러 싸여있다. 

정필근 씨는, 또 몸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누운 채로 부웅. 이부자리 채로 부웅. 이대로 계속, 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가볍게 높이, 높이, 그럼 사람들은 다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내게 손을 뻗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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