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 최윤진 실무관
중앙도서관 최윤진 실무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은 가늘고 앙상해서 유약해 보이지만 앞으로 걸어가는 자세와 움직임의 역동성이 강하게 느껴져 왠지 모르게 슬프고도 아름답다. 뚜렷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길 위에 그저 우뚝 서 있는 고요한 조각상의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무엇을 좇고 있는지에 대한 고뇌와 생각 없이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형상의 조각상. 수양이나 관찰 같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과정 없이도 담담한 삶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 기쁨,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쾌락을 얻는 빈도수를 늘리는 것보다 마음의 평정을 오랫동안 유지할 줄 아는 힘을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나는 그동안 사회가 만든 각본과 관습에 갇혀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와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의미를 부여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이렇게 사회적 관습과 내적 관성에 이끌려 살다 보면 종종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때가 찾아온다. 그리고 통제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의견이나 느낌, 욕망에 더 집착하게 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고통으로 채워진다.

나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끊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의 관성이었다. 모든 고통은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을 때 증폭된다. 현재 처한 현실이나 주변 인물들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특정 대상이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 확대 재생산하는 습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라는 삶의 태도는 상황을 실제보다 심각하게 조작해 인지하는 함정에 빠지기 쉬우며, 욕망하고 기대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좌절과 실패에 대한 증오심도 커진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기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음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원리고,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만족한 상태에 계속 머물 수 없다. 이를 뒤늦게 깨닫고 나면 이제껏 기대하고 욕망해온 만큼 이상의 절망, 그리고 헤어 나오기 힘든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불필요한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감정과 생각의 패턴을 인지하고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가짜 감정과 신념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든지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편향된 사고가 불러일으키는 정신적 기능장애 그리고 두근거림, 울컥함 등의 신체 변화를 수반하는 생화학적 작용의 ‘오류’를 알아차린다면 생각과 감정의 동일화에서 벗어나 현재의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는 상태를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차분하고 정직하게 관조하고 관찰하는 습관은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주변 세계를 향한 눈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진실한 눈을 통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자. 현재 나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과 감정을 직시하고 그것들이 촉발된 이유를 알아차림으로써 제거하자. 그다음 할 일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성심껏 끝내버리는 것, 정성을 다해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허무함과 인간의 무력함을 되뇌며 방황하는 덫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올바로 세워 잘 살아가는 방법이다. 매일 아침 ‘모든 것은 순리대로 제 자리에 돌아간다’는 간명하고 건조한 세계관을 곱씹으며 정갈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의식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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