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부터 현실이 만들어지는 곳
게임으로부터 현실이 만들어지는 곳
  • 이민주 기자
  • 승인 2019.09.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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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겜브릿지’(GamBridzy)의 임팩트 게임 이야기

‘게임으로 유저와 세상을 잇는다’는 뜻의 ‘겜브릿지’(GamBridzy)는 ‘임팩트 게임’을 만드는 회사다. 임팩트 게임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게임으로, 겜브릿지에서 만들어낸 용어다. 지난 2일, 겜브릿지의 도민석 대표(34)를 만났다. 그는 혼자 게임 제작을 시작했지만 2016년도에 〈애프터데이즈〉를 기획하면서 겜브릿지라는 팀을 결성했다. 현재 겜브릿지에서는 게임 작가와 게임 PD, 그래픽 디자이너를 포함한 10명의 전문가가 모여 임팩트 게임의 방향성을 고민한다. 

 

임팩트 게임이 나오기까지

도민석 대표가 기능성 게임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학부 시절 소프트웨어 관련 창업을 결심하면서부터다. 창업 당시 도 대표는 정신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콘텐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정신적 질환이나 우울감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콘텐츠가 이용자에게 주는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도 대표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대학원에서 기능성 게임을 전공했다”라며 “폴란드나 미국에 기능성 게임이 대중화돼 있는 것을 본 후 한국에도 기능성 게임 시장을 개척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겜브릿지가 제작한 네팔 대지진 배경의 〈애프터데이즈〉, 일본의 전쟁 범죄를 다룬 출시 예정작 〈더 웬즈데이〉는 모두 대표적인 국내 임팩트 게임이다.

겜브릿지에서 출시한 '애프터데이즈'의 플레이 화면이다. 게임 이용자는 주인공 ‘아샤’가 돼 지진 이후의 네팔 마을을 복구한다. (사진 제공: 겜브릿지)
겜브릿지에서 출시한 '애프터데이즈'의 플레이 화면이다. 게임 이용자는 주인공 ‘아샤’가 돼 지진 이후의 네팔 마을을 복구한다. (사진 제공: 겜브릿지)

 

겜브릿지의 게임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재조명한다. 국내 시장에 게임의 가짓수는 다양하지만 아직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듯 서로 비슷하게 제작되는 양산형 게임이 많다. 대부분의 게임이 제작자가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동일한 특징을 지닌 것이다. 도 대표는 “양산형 게임의 증가는 국내 게임 시장의 부정적 결과지만 한편으로는 대중이 양산형 게임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임팩트 게임도 일차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그는 게임의 다양한 흥미 요소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게임이 시청각적 유희 외에도 다양한 층위의 재미를 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겜브릿지의 게임 속 관계 형성, 성취감, 성장 등의 서사는 임팩트 게임이 주는 재미의 일부다. 도 대표는 “이런 요소를 게임 줄거리 안에 적절히 배치하면 이용자는 게임을 즐기면서도 메시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실과 게임 사이 균형을 찾아

겜브릿지는 현실감 있는 줄거리로 사회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한다. 실제 〈애프터데이즈〉나 〈더 웬즈데이〉는 네팔 지진과 일본군 전쟁 범죄와 같은 국내외 사건을 반영해 제작된 게임이다. 그러나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작자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도민석 대표는 “실제 참사를 바탕으로 한 만큼 피해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과장이나 허위 사실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며 “유머 코드가 현실을 가볍게 만들 수 있어서 이를 어디에 넣어야 할지 항상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들은 〈애프터데이즈〉를 만들면서 적절한 줄거리를 구상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해 고증을 거쳤다. 또한 겜브릿지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여러 번의 각색을 거친다. 게임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게임 이용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도 현실을 정확히 게임에 반영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 대표는 “〈애프터데이즈〉의 경우 시나리오를 네팔 현지인에게 검수받으며 각색을 해나갔다”라며 “현지에 있었던 시체나 부상자를 그대로 그래픽으로 만들었다면 게임 이용자의 거부감도 심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겜브릿지는 게임 캐릭터도 신중하게 제작한다. 아직 국내외 게임 제작자는 서양이나 일본의 게임에 영향을 받아 서구식 캐릭터 제작 방식에 익숙하다. 이에 게임 업계에서 흔치 않은 한국계 소녀인 〈더 웬즈데이〉의 주인공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도 대표는 “제작 초기에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의 얼굴을 모델로 해 극 중 캐릭터를 제작하려 했다”라며 “그러나 충분한 참고 자료가 없어서 소녀상과 닮은 얼굴을 잡아내기가 어려웠다”라고 제작 과정을 회상했다. 또한 임팩트 게임에는 단순히 비율이 좋고 대중에게 익숙한 캐릭터보다 메시지 전달에 적합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도 대표는 “〈더 웬즈데이〉에서는 주인공의 눈에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라며 “말끔하지 못한 차림새를 보여주는 동시에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당당함도 드러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게임은 다시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게임의 수익금은 게임의 배경이 된 사회 현실을 복구하는 데 사용될 뿐 아니라 게임 이용자의 무의식적 학습에 도움을 준다. 〈애프터데이즈〉의 수익금은 네팔의 무너진 커피 창고를 재건축하는 데 사용됐다. 도 대표는 “〈애프터데이즈〉를 플레이하고 난 후 위급 상황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집 앞에 구급 키트를 둔 사람도 있었다”라며 “실천으로 옮기지 않아도 사회적 문제나 국내 과거사를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면 임팩트 게임의 가치가 실현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기존 게임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신생 기업인 겜브릿지는 창작물의 방향성을 계속해서 고민한다. 이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의미 전달에 충실한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아직 국내 게임 이용자는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로 진행되는 게임에 익숙하다. 그동안 겜브릿지의 게임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용자에게 직설적으로 보여줬지만 국내 이용자는 이 방식을 낯설어하는 것이다. 도민석 대표는 “서양식 기능성 게임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 비유법을 사용한다”라며 “겜브릿지도 이용자가 게임을 마친 뒤에야 숨은 메시지를 알게 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겜브릿지는 기능성 게임을 제작하는 것에서 나아가 게이미피케이션*에도 관여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와 함께한 청소년 우울증 관련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이 프로젝트 속 피실험자는 연구용 게임의 주인공이 돼 미션을 수행하거나 질문에 답한다. 이후 이들의 대답 속도나 정답률은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는 연구 자료의 기반이 된다. 도 대표는 “연구 프로토콜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연구용 게임 제작도 기존의 게임 제작과 비슷하다”라며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으로 만들었을 때 가치가 생긴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연구용 게임은 연구가 진행될수록 피실험자의 집중력이 떨어져 연구 가치가 희석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 대표는 “해당 프로그램의 경우 기존 시스템보다 8% 정도 피실험자의 집중도가 높았다”라고 설명했다.

겜브릿지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여전히 많다. 이들은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 개발 목표에 부합하는 게임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민석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는 국내 이슈인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 만한 문제”라며 “이처럼 세계적 이슈와 연관된 국내사를 다뤄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겜브릿지는 다양한 주제로 게임 이용자가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시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게임 외의 분야에 대한 지식 전달, 행동 및 관심 유도 혹은 마케팅 등에 게임의 매커니즘이나 사고방식과 등 게임의 요소를 접목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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