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얼어붙은 한일관계,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대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지난겨울 이래로 양국의 갈등은 해소될 기미 없이 긴장만을 더해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반도체 핵심 소재를 비롯한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고, 오래지 않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그간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빠르게 확산됐고, 정부는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가 하면 지난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화해를 쉬이 상상할 수도 없는 지금, 우리와 일본은 얼마나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일까. 백 년이 넘도록 이해 못 할 이웃으로 남은 일본의 속내를 살피려 『대학신문』이 8월 초순 도쿄를 방문했다. 일본의 대학생들에게 직접 묻고 전문가에게 해석을 청해 일본 여론의 윤곽을 기사에 그려내고자 했다.

조용한 일본, 방관인가 폭풍 전야인가

기자가 목격한 8월 초순의 도쿄는 잠잠했다. 한창 불매운동이 달아오르고 일본 정부를 향한 집회가 열리는 한국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거리에는 한일관계와 관련한 어떠한 포스터와 선전물도 보이지 않았고 이따금 한국에 보도되는 극우 집회도 없었다. 한국인 유학생 하정연 씨(도쿄대 교양학부)와 이준영 씨(도쿄대 교양학부)는 “이 사안에 대해 일본은 한국만큼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라며 “반한 혹은 혐한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도쿄대 학생식당에서 만난 일본인 학생 A씨(도호쿠대 화학과)도 “대학생 대부분이 한일관계에 무관심해 친구들과 그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은 거의 없다”라며 비슷한 감상을 전했다.

이런 태연한 분위기는 한일관계가 일본인에게 매력적인 이슈가 아니라는 점에 기인했다. 남기정 HK교수(일본연구소)는 “보통의 일본인에게 주된 관심사는 연금, 소비세, 저출산 등의 국내 문제”라며 “게다가 그 밖의 외교 이슈에서도 한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에 비해 경시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역사를 둘러싼 양국 간 잦은 마찰이 일본인의 내성을 길러내기도 했다. 조관자 HK교수(일본연구소)는 “한일관계가 악화된 지 벌써 7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라며 “처음에는 한일관계에 촉각을 세웠던 이들도 이제는 그 주제를 식상하게 여긴다”라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정치와 생활을 분리하는 경향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된다. 석사 과정생 시노하라 슌 씨(게이오대 법학연구과)는 “일본인들은 정치적 사안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대중문화와는 별개로 생각한다”라며 “한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진행되려는 움직임도 없다”라고 알렸다. 이를 증명하듯 한일 갈등에도 한류는 건재했다. 도쿄의 대표적인 한인촌 신오쿠보(新大久保)는 한류를 즐기는 일본인으로 붐볐다. 한국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오는 잡화점에서는 아이돌 굿즈와 한국 브랜드 화장품을 판매해 인기를 끌고 있었고, 한식을 파는 음식점은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손님으로 넘쳐나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생기기도 했다. “일본 대학생 대부분이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친근하게 여긴다”라는 도요모토 게이타로 씨(도쿄대 언어문화학과)의 말마따나 한류의 흔적을 시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인촌 신오쿠보(新大久保)가 한류를 즐기려는 일본인으로 북적이고 있다.
한인촌 신오쿠보(新大久保)가 한류를 즐기려는 일본인으로 북적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지소미아 종료 발표 이후 일본 여론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정환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지소미아 종료 발표를 기점으로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 언론의 태도가 급변해 보도가 크게 늘었다는 점을 지적했고, 조관자 HK교수는 “일본에 한국이 필요 없다는 과격한 주장이 유명 주간지에 실릴 정도”라며 여론이 격화되는 현실을 언급했다. 남기정 HK교수는 “한국의 행동이 일본의 예상을 벗어나 일본이 크게 당황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깊어진 갈등의 골, 그보다 더 깊은 인식 차이

지난 1일(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실시한 설문 결과 일본인 응답자의 70%가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치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실제 도쿄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일본 정부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본 학생들은 대체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제외한 이유가 안보에 있다는 일본 정부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중국에서 유학 중인 고이데 유키노리 씨(북경외대 국제경제무역학과)는 일본 정부의 규제가 정당하다는 근거로 “물자가 한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논했고 다른 학생들도 유사하게 답했다. 이정환 교수는 “한국의 수출 관리가 미흡하다는 일본 정부의 사유는 내적 논리가 부실하고 구체적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라며 “그런데도 일본인들이 수출규제가 보복이 아니라는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적”이라고 비판했다. ‘과거사 문제와 연관이 있지 않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 학생들은 부인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도 일본 정부의 설명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보상 이유가 먼저 거론되는 데는 일본 언론의 보도 경향과 더불어 일본인의 안보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관자 HK교수는 “탈냉전 이후 일본은 중국과 북한으로 인한 안보 위기를 심각히 느껴왔다”라며 일본 정부의 설명이 일본인의 안보 불안감에 효과적으로 들어맞았다고 분석했다.

갈등의 시발점이 된 작년 10월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 학생들은 입을 모아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대법원은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 및 청구권 협정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근거한 피해배상을 포괄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반면 일본 대학생들은 당시 정책당사자들의 의도로 판단하건대 1965년에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이라며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은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노하라 슌 씨는 “1965년의 합의를 수정하게 되면 한국이 아닌 여타 국가와 일본이 맺은 관계도 흔들릴 수 있기에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며 “당시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게 근본적인 인식”이라고 이야기했다. 기미야 다다시 교수(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는 “한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일본 정부의 조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2015년의 위안부 합의를 비롯해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종전의 약속이 어그러진다는 일본인 일반의 불만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누적된 일본인의 피로감이 심각하다는 해석이다. 이정환 교수는 “일본 대중은 과거사와 관련한 논의가 거듭 재론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일본인이 생각하기에 일본이 기금을 조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과거사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는 데 실망감을 느꼈을 수 있다”라고 짐작했다.

미나가와 씨(와세다대 정치학과)는 “일본은 한국에 대한 우호 조치, 경제적 우호 관계 등을 통해 이미 사죄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미야 다다시 교수 또한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일본 내각이 한국에 대해 사과한 것에서 벗어난 발언을 하기에 한국이 일본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이해한다”라면서도 사과의 뜻을 밝힌 내각의 여러 공식 입장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논했다. 이처럼 2019년의 한일관계는 한국이 일본의 전후처리에 불만족하고 일본은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억울해하는, 서로 답답한 상황이다. 그 근본적 원인은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한 인식 차이에 있다. 한국은 식민지가 부당하고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은 그저 부당할 뿐 불법은 아니라 인식한다. 이정환 교수는 “일본 내각이 발표한 담화 중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고 명시한 것은 없다”라며 “합법이었지만 한국에 피해를 끼쳤으니 미안하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동안, 일본에서는 도요모토 씨처럼 “무라야마 담화 같은 이전의 담화 정도면 충분한 사과가 아니냐”라고 반문하곤 하는 것이다.

간극을 좁히고 골을 메워야

기미야 다다시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일이 당시 의도 및 법리적 논리를 두고 다툴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일본에서는 한국이 1965년의 체제를 부정하려는 것처럼 읽힌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기에 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내용에 관해 일본 정부를 설득할 의무가 있다”라며 “더불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일본과 적절한 전후처리를 요구하는 한국, 각 사회의 인식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같은 맥락에서 남기정 HK교수는 “우리에게 과장돼 전달되는 부류의 일본인들이 아니라 실제 일본을 이끌고 가는 주류 일본인들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평화주의 세력과 그 반대의 극우 세력은 한국에 자주 보도될 뿐 일반적인 일본인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현실적 영향력을 쥐는 사람들은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인정하되 불법성은 인지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일본인과 자민당과 같이 역사 수정주의와는 거리를 두는 보수 전략가 세력이다. 남 교수는 그중에서도 전자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일렀다. 예컨대 ‘한국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를 원한다’거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1965년의 협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기정 HK교수는 더 나아가 일본 시민에게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논한다. 남 교수는 간 나오토 담화를 디딤돌로 삼는다면 충분히 이룰 가능성이 있는 목표라고 이야기한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2010년에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남 교수는 “국민 의사에 반했다는 인정이 부당성은 물론 불법성을 주장하는 논거가 될 수 있다”라고 설득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 및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한국이 추가적인 배상을 포기하는 안을 제시한다. 그는 불법성 인정이 선행된다면 과거 일본이 취한 여러 명목의 금전적 조치에 대해 사후적으로 배상의 성격을 인정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위 방안이 양국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한국이 배상 포기와 일본의 사과를 맞바꾸는 안에 대해 묻자 미나가와 씨는 “말에 해당하는 사과 정도는 일본에서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망했지만 도요모토 씨는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사죄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다시 한 번의 사과를 굴욕으로 생각할 것 같다”라고 말하는 등 일본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정환 교수는 “한국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며 “그 결단이 국내 정치에서 수용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이 교수는 결국 국민적인 고민과 합의가 존재해야만 일본과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논했다. 그는 “한국의 미래 구상에서 일본을 어느 위치에 둘 것인지 고민하고, 일본과 외교를 할 때 어느 선까지 양보할 수 있고 무엇만은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둘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지 않아 외교적 계산이 어렵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물론 일본의 속내를 이해한들 한국이 일본을 일방적으로 설득하거나 일본의 요구를 오롯이 수용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의 의중을 파악한다면 외교적 선택지 사이에서 무엇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할지 논할 기회가 생긴다. 원칙으로서 올바른 역사관과 피해자 중심주의는 포기할 수 없지만, 그 원칙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택할지는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문제다. 이제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가운 이성에 기댈 시점이다.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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