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몇몇 대학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RC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시흥캠퍼스 조성 당시 의무 RC(Residential College, 기숙형 학부대학)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고, 이는 학내 구성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작년 총장선출 과정에서 관악캠퍼스 RC(관악 RC)는 거의 모든 후보의 주요 공약에 포함됐다. 서울대가 다시 RC를 그리고 있는 지금, 『대학신문』에서는 △RC는 무엇이고 △왜 실시하고자 하며 △RC 시행 이전에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전망하고자 한다.

 

RC가 도대체 뭔가요?

RC의 시작은 수백 년 전 영국 대학의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교육기관 역할을 하던 기숙사들이 연합해 대학이 생겼고 그것이 이어져 지금까지도 각 기숙사가 고유한 학풍과 교육 권한을 갖고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한국의 RC는 기존 학부 교육 방식을 보완하고자 도입됐다. 한국에서 RC는 대부분 대학이 먼저 기숙사를 확보하고, 주로 신입생 전원 기숙사 생활을 전제로 RC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보통 수십 명의 학생, 조교, 전담 지도교수로 구성된 팀에 속해 기숙사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RC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변수연 교수(부산외대 만오교양대학)는 한국 대학이 학생에게 미치는 효과인 대학효과(College Effect)를 기대해 RC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대학효과가 학생에게 더 많이 작용할수록 소속 대학의 독특한 학풍이나 문화, 분위기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교육자들은 이를 위해서 학교가 단순한 강의 제공자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연세대 미래캠퍼스(원주)에서 최초로 RC 교육기관을 설립한 이후로 한동대,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려대 세종캠퍼스, 연세대 국제캠퍼스(송도), POSTECH 등에서 RC를 시행하고 있다.

오세정 총장은 관악 RC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아직 본부는 RC 관련 구체적인 계획안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 다만 기초교육원과 관악학생생활관(관악사)이 함께 비교과 및 교과 교육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협의 중이다. 기초교육원 유재준 원장(물리·천문학부)은 “이르면 다음 학기부터 관악사에서 ‘학생생활관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으며, 관악사 노유선 관장(생명과학부)은 “학문 간 융·복합형, 학생 주도의 실무형, 다양한 구성원을 기반으로 한 언어·문화 튜터링형 등 세 가지 유형의 강좌를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RC, 관악에 필요할까?

 

RC가 서울대에 필요한 이유로는 크게 공감, 소통, 그리고 공동체 의식 함양이 꼽힌다. 오세정 총장은 RC를 도입하면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에 몰입하고, 자율적인 생활을 하며, 학과를 넘어서 다양한 학생들과 소통하고 자아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중앙도서관 김명환 관장(영어영문학과)은 “RC를 제대로 시행한다면 교수와 학생, 생활과 학습, 그리고 놀이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교육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학부 교육에서 소통이나 공동체 의식은 부족한 점으로 지적돼왔다. 기획처와 교육연구소에서 주관한 ‘학생-교수 2018년도 교육수요자 만족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신입생과 재학생 모두 과제부여 및 피드백의 적절성이나 강의실 밖 교수와의 상호작용과 같은 교수와 학생의 상호작용 관련 항목에서 가장 낮은 만족도를 보였고, 평의원회 정책연구 ‘서울대학교 공동체세우기 비전과 전략’에서는 신입생의 소속감, 구성원 간 연대감을 위한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되기도 했다. 한진모 씨(교육학과·17)는 “학교를 다니며 아쉬웠던 점은 전공 교수를 멘토로 삼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라며 “RC가 아니더라도 전공 교수와 소통을 할 수 있는 매개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RC를 시행한 학교들을 살펴보니 RC를 시행했을 때 학생 간 소통은 비교적 개선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RC를 경험한 학생들은 RC를 통해 보다 다양한 학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미서 씨(연세대 국어국문학과·18)는 “과 단위뿐만 아니라 룸메이트나 RC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지며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학부생 A씨(연세대 경영학과·17) 역시 “RC에서 형성된 인간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데에는 같은 곳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RC가 교수와 학생 간 소통 증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RC 시행으로 학생들에게 전담 지도교수가 배정되긴 하지만, RC를 경험한 학생들은 교수와 학생의 소통이 개인의 의지나 성향 등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A씨는 “교수와 학생 간의 소통이 지속될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지도교수의 관심 정도나 스타일에 달려있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송민정 씨(연세대 융합인문사회과학계열·17)는 “교수와의 소통 기회는 RC를 통해 늘었지만, 학생이 그 기회에 참여해야 둘 사이의 소통이 잘 이뤄질 수 있다”라며 소통 개선을 위해 학생들의 참여가 필수임을 역설했다. 나아가 RC를 도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전공 교수와의 소통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RC 지도교수로 전공 교수가 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RC 프로그램은 참여자에게 폭넓은 경험을 제공하며 학생들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도록 돕는다는 의견도 있다.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RC를 시행하는 연세대 미래캠퍼스 학생 서효정 씨(연세대 치위생학과·17)는 “RC 체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전에 접하지 않았던 종류의 운동을 정기적으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권미서 씨는 공동체 의식과 관련해 “RC 생활을 하면서 의견 조율 등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라면서도 “신입생은 송도에 있다 보니 과 내 단결 등 학교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의식은 감소했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RC 시행이 신입생의 대학생활 및 학업 적응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연세대 RC교육원 권재경 직원은 “RC 시행 이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학사경고를 받는 학생은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관악 RC,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관악 RC와 관련해 다뤄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원 기숙사 생활 여부다. 오세정 총장은 “RC를 운영한다면 최소한 1년간 신입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세대 RC 프로그램에서 학생조교로 활동하기도 한 A씨는 “전원 기숙사 생활 없이 RC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고, 송민정 씨 또한 “RC는 모든 1학년 학생들이 참여한다는 데서 나오는 상승 효과가 있었다”라며 의무 기숙사 생활이 없다면 RC의 효과가 감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관악캠퍼스에서 전원 기숙사 생활이 실행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관악사 노유선 관장은 “재건축 이후에도 관악캠퍼스에서 특정 학년의 전원 기숙사 생활을 시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현재 학부 신입생은 3,400여 명 규모인 데 반해 학부생활관 정원은 약 3,100명이며, 기숙사 구관을 재건축하더라도 정원이 1,500명보다 더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편 중앙도서관 김명환 관장은 일부 학년의 전원 기숙사 생활이 효과적인 RC의 형태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명환 관장은 “신입생만 RC에 참여시키는 것은 선배 학년과의 교류를 차단한다”라며 “원하는 학생들을 기숙사에서 전부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환경은 마련돼야 부분적으로라도 RC의 효과가 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전원 기숙사 생활로 인해 학생들이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기숙사 생활의 의무화로 학생들이 공동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나 불편함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수연 교수는 “기숙사 생활을 매우 싫어하는 학생까지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RC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RC에 참여하는 것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된 평의원회 정책연구에서는 학생들이 RC의 의무적 성격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고되기도 했다. 이외에 서울대가 RC를 도입한 다른 학교와 비교해 통학이 가능한 학생이 비교적 많다는 점도 또다른 문제다. 실제로 서효정 씨는 RC 및 전원 기숙사 생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타지에서 온 많은 학생이 신입생 때부터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거나 거주 불안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점”을 꼽았는데, 서울대의 경우 기숙사 생활을 의무화한다면 오히려 학생들이 원치 않는 기숙사비를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RC를 시행하는 데 드는 비용 역시 핵심적인 부분이다. RC의 국내 도입 사례를 연구한 「대학 RC교육의 운영 방안 연구」에 의하면 RC를 시행하는 대학들 주요 지출내역에는 생활관 신축 및 개축, 활동시설 신축 및 개축, 인건비, 장학금, 프로그램 지원비 등이 포함돼 있다. 서울대에서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할 부분은 생활관 재건축 및 환경 개선이다. 관악 RC를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할 관악사 구관 재건축과 관련해서도 예산 등 확정된 계획은 없으며, 기존의 기숙사 시설에도 RC 시행을 위한 공간이 없어 시설 마련이 필요하다. 관악사 전 관장이었던 수의대 조제열 교무부학장은 “관악사에는 RC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없다”라며 “RC를 시행한다면 재건축 시에도 설계단계부터 교육공간, 세미나실, 만남 장소 등을 고려해야 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RC 시행과 관련한 인력 확보 역시 과제다. RC를 시행하게 되면 기존 교원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RC 지도교수제에 대해 연구한 「RC 지도교수제 정착을 위한 교수·학생의 경험과 의미」에서는 RC 지도교수가 학생들을 상담해야 한다는 책무와 요구되는 상담횟수와 운영시간에 대해 심적 부담감을 느낀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또한 조교, 생활지도교수 등 생활 지도 인력이 필요하며, 시설의 운영 시간이 늘어나고, 근로시간 과중, 인건비 증가, 업무 과다 등 인력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연세대의 경우 RC 시행 후 기숙사 관리 직원, 학부생 기숙사 생활지도 조교와 RC 프로그램 지원 조교와 학사지도교수, 학생지도교수 등 비전임·전임 교원을 확충했다.

 

관악 RC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RC의 참여자가 될 학생 사회에서는 정작 RC에 관한 공론화가 이뤄진 적이 없으며, 따라서 RC가 필요한 이유나 학부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 역시 형성돼 있지 않다. 한진모 씨는 “RC 제도의 청사진이나 교육적 명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우선 RC를 도입하기 이전 문제의식 단계에서부터 소통이 필요하다.

또한 RC의 명분이 확실하더라도, RC가 관악캠퍼스 안에 얼마나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관악 RC는 RC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국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더욱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사회 봉사 교과목, 글로벌사회공헌단 활동이나 체육 및 예술 실기 교양 교과목 등과 부분적으로 시행될 관악 RC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어떻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설명하는 것은 학교의 몫으로 남아있다.

서울대에 관악 RC가 정말 필요한지, 또 필요하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RC의 형태는 무엇인지에 대한 각 기관과 학내 구성원의 충분한 고민과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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