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의 서울대, 그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다
관악의 서울대, 그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다
  • 김찬수 기자
  • 승인 2019.09.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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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 모양의 정문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오면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는다. 드넓게 펼쳐진 캠퍼스로부터 얻는 애교심보다는 너무 넓어 다니기 불편하다는 학생들의 불편이 더 크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게시된 글 중,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정희성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해 ‘고개 들어’ 학교를 봐야만 할 정도로 학교가 넓고 높아 캠퍼스가 별로라는 생각을 담은 글이 1,000개 이상의 공감을 받기도 했다.

본부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들은 마스터플랜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조언준 씨(지리학과·13)는 “학교를 지금껏 다니며 넓기만 한 캠퍼스로 인해 피곤했다”라면서도 “학교 측에서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기획했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가장 최근에 제작된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 2017-2021」(이하 17-21캠퍼스 마스터플랜)은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않았으며, 그 이전에 공개된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 2012-2016」(이하 12-16캠퍼스 마스터플랜)은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학신문』에서는 마스터플랜에 어떤 약속이 있었으며 어떤 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지 살펴봤다.

◇의도는 순수했고 시작은 창대했다=캠퍼스 관리 및 발전을 위한 계획은 1968년부터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종합화 10개년 계획」(1968~1977)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2007~2011)(2012~2016)에 이르기까지 약 50년간 총 5개의 마스터플랜이 공개돼 있다. 12-16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살펴보면, 단과대별 개별적 토지 활용·개발 지양, 보행자 위주의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조성 등을 원칙으로 중장기적인 캠퍼스 발전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17-21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주관한 최재필 교수(건축학과)는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캠퍼스 정체성 확립을 위한 통합적 공간구조계획과 난개발 방지를 위한 캠퍼스 성장관리”를 기본 철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12-16캠퍼스 마스터플랜은 크게 토지이용 및 건축물계획, 오픈스페이스 계획, 교통계획으로 나뉜다. 건축물계획에서는 관악캠퍼스의 동 번호 체계가 연속성이 없다는 점을 파악해 새로운 동 번호 체계를 제시했다. 캠퍼스를 영역별로 묶어 알파벳을 부여하고, 순환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부터 순차적으로 번호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오픈스페이스 계획의 주요 내용은 녹지 축 형성이다. 캠퍼스 외부와 내부의 녹지공간을 연결하고 오픈스페이스가 되는 공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다. 캠퍼스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율을 줄이고 보행자 위주의 캠퍼스를 만들고자 교통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약대 앞길, 음·미대 내부 도로, 사범대 지역의 차량 진입 제한과 주차 요금 인상을 통한 교통량의 제한이 12-16캠퍼스 마스터플랜의 주요 목표다. 

◇순수하고 창대했으나 지금 학교는=12-16캠퍼스 마스터플랜의 존재가 무색할 정도로 캠퍼스는 여전히 난개발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난개발로 인해 캠퍼스의 경관은 통일성을 잃어버렸다. 서울대에는 기부 건물이 총 78개로 전체 건물 중 약 30%를 차지한다. 하지만 신축되는 건물의 디자인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기부 건물이 지어질 때마다 주변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아 그 주위의 경관을 해치곤 한다. 『대학신문』 ‘컬처 캠퍼스’ 기획에서 학내 구성원 9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관악캠퍼스의 디자인에 만족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이 60.6%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학신문』 2008년 4월 14일 자) 약 10년째 ‘산과 인생’ 강의를 연 김진성 교수(체육교육과)는 “각 건물의 개별적 특성은 뚜렷하지만, 관악산 경관과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최재필 교수는 “80년대 중반 이후 기존 마스터플랜의 조직과 질서가 깨지고 마구잡이로 신축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면서 “개별 건물의 건축 양식도 제각각이고 심지어는 수준 미달의 설계가 자행되면서 관악캠퍼스는 나쁜 건물의 전시장이 돼버렸다”라고 지적했다.

현시점에서 12-16캠퍼스 마스터플랜을 기준으로 관악캠퍼스를 살폈을 때, 계획이 온전히 이행되기는커녕 계획을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플랜에서 말하고 있는 건축물 리노베이션, 녹지 축 형성과 같은 계획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며 이로 인한 피해는 학내 구성원들이 고스란히 받는 중이다. 12-16캠퍼스 마스터플랜 기획에 참여한 바 있는 이유미 교수(환경조경학과)는 “현재로선 관악캠퍼스 마스터플랜이 실행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실천 없는 계획으로 인해 건물 주변의 조경 및 보행 네트워크를 해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17-21캠퍼스 마스터플랜에 참여한 조항만 교수(건축학과)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캠퍼스 마스터플랜대로만 증·개축을 했더라면 현재와 같은 관악캠퍼스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실행력 없는 본부를 비판했다. 2006년 세종시 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도 기획한 조 교수는 “관련 공무원, 사업 시행자, 시공자들까지 플랜을 일종의 형식적인 절차라고만 생각하고 이행 의무를 강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애초에 유능한 사람들에게 마스터플랜 제작을 맡기지도 않으며 설령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캠퍼스 아키텍트 마스터’라는 직책을 신설하는 등의 조직 구조적인 개편안이 통과돼야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질 때 잡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획과 성지화 행정관은 “시간적·공간적 문제와 재정적 어려움으로 제작된 마스터플랜을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했다”라며 “캠퍼스 발전 방향을 이전 마스터플랜에 맞추고 있으며 본부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작된 마스터플랜은 2016년도를 끝으로 지금까지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2015년 17-21캠퍼스 마스터플랜이 기획처 주관으로 열린 공청회에서 공개됐다. 하지만 현재 이에 대한 자료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여정성 기획부총장은 “마스터플랜에서 제안된 내용의 일부가 전임 본부의 의견과 맞지 않아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라며 “지금으로서는 캠퍼스 개발의 기준이 되는 마스터플랜이 없는 상황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플랜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캠퍼스 내 다양한 문제들은 단기적인 보수 공사 및 증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관악캠퍼스에서 수학하고 노동하는 이들을 위한 본부 차원의 최선은 단기적인 미봉책 마련이 아니라 중장기적이고 실현 가능한 계획 수립, 그리고 이에 대한 실천이다. 캠퍼스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성실한 실천을 담보해야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제는 학교 실정에 맞는 마스터플랜을 제대로 만들어 조속히 실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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